나는 왜 자꾸 LUSH를 사는 걸까?
화장품에 돈을 잘 안쓰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꼭 구매해야 하는 제품들이 있다.
스킨로션은 안 쓸 수가 없어서, 한 번에 해결이 가능한 우르오스, 셰이빙폼은 가장 무난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질레트, 매일 수영을 하니까 몸이 건조해져서 바디로션은 가성비 좋고 무난한 쿤달...
뭐 그 외에는 정기적으로 사는 게 별로 없었다. 샴푸는 집에 있는 제품을 내키는 대로 썼고, 폼클렌징도 집에 있는 제품을 쓰거나, 어디서 샘플로 얻은 제품들을 대충 쓰고는 했다.
그런데, 최근 LUSH 때문에 변화가 생겼다. 굳이 꼭 필요한 건 아닌데, 러쉬에서 꽤 많은 아이템을 구입했다. 시작은 서점 옆에 있는 러쉬 매장에 들렀다가, 호기심에 구입한 입욕제였다.
그리고 입욕제에서, 샴푸, 샴푸바, 페이셜클렌저, 스크럽, 바디로션, 페이셜솝, 페이셜크림...
좀 비싸긴 한데, 이상하게 종류 별로 사서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브랜드다.
사실, 러쉬 제품들을 쓰면서 느낀 건,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제품들에 비해 크게 기능이 뛰어난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전에 사용한 경험이 있는 비오템이나 크리니크, 키엘 제품에 비해서 약간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다만 러쉬 제품에는 그런 제품들이 대체할 수 없는, 뭐랄까 러쉬만의 아이덴티티나 느낌 같은 게 있는 거 같다. 어쩌면 나는 그 느낌에 혹해서 계속 지갑을 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러쉬의 마케팅이긴 하겠지만, 일단 내가 그런 느낌을 갖게 된 이유를 정리해보면...
1.코스메틱 제품을 음식처럼 보이게 해서 파는 것
러쉬 매장은 언뜻 보기에 코스메틱 샵이라기 보다는 빵집에 가깝게 보인다. 갓 구워낸 빵을 매대에 올려 놓은 것처럼, 매대에는 색색의 입욕제들이 올려져 있고, 한쪽에선 홀 케이크 모양의 비누를 조각으로 잘라서 판다. 그렇게 러쉬는 코스메틱 제품을 음식처럼 보이게 해서 판다. 그것이 의도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러쉬의 제품을 신선하고 안전한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아마도 나를 비롯한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러쉬의 이런 마케팅을 통해 러쉬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2.유니크한 향
강한 향을 가진 제품은 많지만, 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향을 가진 제품은 드물다. 사실, 러쉬 창업자가 이런 향을 배합해 내는 데 일가견이 있고, 초기에 그 분야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러쉬도 다른 화장품과 제품 베이스는 같고, 저 향으로 차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러쉬야 말로 마케팅의 귀재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유니크 하다는 건, 무엇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보다 어떤 포인트, 그러니까 디테일의 차이가 아닐까? 러쉬는 그 차이를 잘 파고드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3.BX 디자인의 심플함과 통일성
러쉬 하면 제품 포장의 그 독특한 서체와 블랙 바탕의 흰색 글자를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TV에서 유럽 시장의 과일 가게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가게의 가격표가 다 러쉬의 서체와 컬러를 그대로 따서 만든 것이었다. 마치 우아한 형제들이 서체를 통해 BX 디자인을 만들어 나간 것처럼, 러쉬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디테일
러쉬를 쓰게 되는 포인트 중에 하나가 디테일이다. 나는 특히 저 생산자 일러스트가 들어간 스티커를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제품을 농산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접근인 것 같다. 농산물을 사면 박스에 생산자 정보가 있는 것처럼, 코스메틱 제품에 생산 담당자 정보가 들어있는 것이 참신했다. 뭐랄까,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유기농 제품이나 지역 특산물을 구매할 때 같은 심리적 경험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이런 디테일이 내가 계속 러쉬를 사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내가 써 본 러쉬 제품 Top3를 뽑자면
1위 대디오 - 아저씨라서 그런 건 아니다...
2위 콜 페이스 - 향은 약한데, 세안 기능은 제일 낫다.
3위 angels on bare skin - 세안 후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