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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ug 11. 2019

손정의는 왜 맥도날드 창업자를 존경하는 사업가로 뽑았나

레이 크록 영화와 자서전을 보고 느낀 점

얼마 전, 외식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곱창집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맥도날드 창업자인(엄밀히 말해 창업자는 따로 있지만) 레이 크록 이야기가 나왔다. 지인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지인의 회사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레이 크록'을 자주 언급하는데, 특히 직영점 매니저들에게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초기에 직원을 채용하고 발탁한 사례를 자주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지인의 회사 대표는 성과를 낸 직원에 대한 파격적인 발탁과 보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했다.

레이 크록과 맥도날드에 관한 영화, 나름 재밌게 봤다.

지인의 회사 대표가 언급한 사례는 아마도 '프레드 터너'에 관한 일화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맥도날드 초창기 시절, 23세의 나이로 입사한 프레드 터너는 종업원으로 출발해서, 맥도날드의 2대 회장이 되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레이 크록의 전기에도 꽤 비중 있게 소개되고 있는 인물인데, 소개되는 일화를 살펴보면 가령 이런 내용들이다.

맥도날드의 열정을 품은 사람 앞에서 밀가루와 이스트가 섞인 이 둥그스름한 덩어리는 진지한 분석의 가치를 지닌 오브제가 된다. 프레드 터너는 햄버거 빵에 이런 방식으로 집중했다. 중서부 지역의 매장은 루이스 커츠리스가 운영하는 메리앤베이커리에서 빵을 구매했다. 처음에는 빵이 4~6개가 붙어 있는 큰 덩어리 형태였고 칼집은 부분적으로만 나 있었다. 프레드는 빵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모두 떨어져 있는 형태이고 반으로 완벽하게 칼질이 되어 있다면 조리가 훨씬 쉽고 빠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주문량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빵 공급업체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업을 한다는 것 / 레이 크록 지음, 센시오>

어쨌든, 그렇게 지인과 서로 맥도날드와 레이 크록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나누다가,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생각이 났다. 근데, 손정의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사업가로 뽑는 인물이 레이 크록인 거 알아? 그렇게, 대화의 화제가 자연스럽게 손정의 회장과 레이 크록 이야기로 넘어갔다.

올해 국내에 출간된 레이 크록 자서전.. 정작 표지에 레이 크록이 안보인다..

52세의 나이에 시작한 사업,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성장할 수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52세였다. 맥도날드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레이 크록은 밀크셰이크 제조용 멀티 믹서기를 파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리고 당시 맥도날드는 레이 크록이 파는 멀티 믹서기를 구매했던 시골의 작은 햄버거 가게에 불과했다. 레이 크록은 멀티 믹서기를 한꺼번에 6대나 구매한 가게로 날아가서 가게를 살펴보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맥도날드라는 이름에 걸어 보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맥도날드의 전설 그대로다.


사실, 레이 크록을 다루는 영화나 기사에서 레이 크록의 세일즈맨 경력을 두고, 맥도날드 창업과는 결이 다른 일종의 개인적 흑역사로 다루는 듯한 뉘앙스가 있는 것 같다. 마치 52세가 될 때까지 세일즈맨으로 힘들게 생활하다가, 맥도날드를 창업하고 대박이 난 것처럼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선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일단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 창업은 그가 쌓아온 세일즈맨으로서의 커리어와 밀접하게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세일즈맨 경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맥도날드 창업 자체가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창업을 했다고 해도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레이 크록이 자신의 세일즈맨 커리어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판매했던 아이템은 멀티 믹서가 아닌 종이컵이었다. 지금에야 종이컵이 아주 흔하고 평범한 아이템이지만, 레이 크록이 세일즈맨으로 활동했던 1920년대만 해도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1922년 릴리컵 샘플 상자를 들고 처음 거리에 나섰을 때만 해도 종이컵 파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이민자들이 주인으로 있는 식당에 물건을 팔아보려고 접근하면 고개를 저으면서 어설픈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아냐, 아냐. 나 유리컵 있어. 그게 더 싸."
<사업을 한다는 것 / 레이 크록 지음, 센시오>

당시만 해도 종이컵은 익숙하지 않은 신문물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전혀 새로운 개념의 상품은 시장에 진입할 때, 과거의 관습을 깨뜨리기 위해 일종의 진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물론 진통 뒤에 찾아올 엄청난 성장을 미리 볼 수 있는 사람들만이 끝까지 남아 과실을 챙기기 마련이다. 레이 크록은 당시 종이컵이라는 아이템에서 그런 성장의 가능성을 본 것 같다. 레이 크록은 실제로 20여 년 동안 종이컵 세일즈맨으로서 매우 훌륭한 실적을 남긴다.


레이 크록이 종이컵 다음으로 주목했던 아이템이 바로 맥도날드에 납품했던 멀티 믹서기였다. 레이 크록은 자신이 종이컵을 대량으로 납품하던 가게에서 새롭게 발명한 밀크셰이크 믹서기를 보고 거기에 꽂힌다. 그리고 회사에 이야기해서 그 물건을 팔아보기로 한다.

히트를 친 아이디어는 바로 밀크셰이크를 만들 때 얼린 우유를 이용해서 유지방을 줄이는 것이었다. 랠프는 일반 우유에 안정제, 설탕, 옥수수 전분, 바닐라 향료 약간을 넣고 이것을 얼렸다. 셰이크를 만들 때는 먼저 우유 4온스를 용기에 넣고 위의 얼린 우유 네 스쿠프를 추가한 뒤 믹서를 돌려 마무리했다.
<사업을 한다는 것 / 레이 크록 지음, 센시오>

 멀티 믹서기를 납품했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 가서, 당시 맥도날드의 패스트푸드 시스템에 꽂힌 것처럼, 레이 크록은 종이컵을 납품했던 상점에 가서 당시로서는 검증이 전혀 안 된 멀티 믹서기라는 아이템에 꽂혔다. 결국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 창업은 종이컵 - 멀티 믹서 - 패스트푸드라는 고리로 묘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레이 크록의 세일즈맨 커리어는 그런 의미에서 맥도날드 창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그가 늘 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새롭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레이 쥔 샤오미 회장이 한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바일이 태풍이 될 것을 직감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꺼낸 말이 바로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 바꿔 말하면, 사람들이 몰리는 길목을 선점하면 무슨 사업을 하든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문제는 무엇이 태풍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예측한다고 해도 행동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레이 크록 역시 끊임없이 태풍의 길목에 서고자 했다. 종이컵이나 멀티 믹서를 팔기로 선택했던 것도, 그 아이템들이 장차 태풍이 될 것이란 직감에서였다. 맥도날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에서 미국 사회에 태풍이 될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레이 크록은 52세의 나이에 창업을 마음먹었고, 곧바로 행동했다.


이쯤에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 것 같다. 손정의 회장 역시 레이 크록처럼 끊임없이 태풍의 길목을 찾아 나서고 행동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가 창업 후 걸어온 길을 보면 당시로서는 무모하다 싶을 만큼 파격적인 선택이 태풍의 길목을 선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손정의 회장이 과거 국내에 방문했을 때, DJ에게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라고 언급한 부분이나, 최근에도 문 대통령에게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언급한 부 등은 모두 태풍의 길목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손정의 회장이 일본 맥도날드 설립자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손 회장이 고등학교 시절, 일본에 맥도날드를 들여와 성공을 거둔 후지타 덴의 책을 읽고 직접 연락을 취해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손정의 : 16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갔다가 여름방학을 맞아 일본에 돌아왔는데, 후지타 씨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겁니다. 집에서 후지타 씨의 비서에게 매일 전화를 걸었어요.
사회자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손정의 : 비서에게 말했죠. 제 말 그대로 메모를 해서 후지타 씨에게 전해달라고. 그 메모를 보고도 후지타 씨가 '그럴 시간이 없다'라고 하면 돌아가겠다고요. 단, 비서님이 판단하지는 말아달라고요.
사회자 : 그래서 만났더니 컴퓨터 공부를 하라고 하셨죠?
손정의 : 네. "앞으로는 컴퓨터 비즈니스의 시대다. 내가 자네 나이였다면 컴퓨터 사업을 할 거다"라고 하시더군요.

<사업을 한다는 것 / 레이 크록 지음, 센시오>


16살에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손정의도 대단하지만, 16살의 학생에게 "컴퓨터 비즈니스의 시대다"라고 말해 준 후지타 덴의 조언도 인상 깊다. 사실 레이 크록도, 후지타 덴도 사실 외식 업계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맥도날드의 가능성을 보고, 맥도날드라는 태풍을 만들고 그 길목을 완전히 장악한 인물들이었다.

밀크셰이크용 믹서를 팔던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맥도날드 형제의 햄버거 레스토랑을 발견합니다. 그곳의 효율성, 표준화된 작업 등에 감탄하여 맥도날드를 전국적 체인으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되죠. 당시 그는 요식업계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맥도날드의 가능성을 간파했습니다. 외부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사업의 장래성을 알아본 겁니다. <사업을 한다는 것 / 레이 크록 지음, 센시오>
일본에 맥도날드를 들여온 후지타 씨도 업계 밖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원래 핸드백과 다이아몬드를 수입하던 사람인데 레이 크록을 만나서 요식업에 뛰어들었어요. 그 업계에 이미 몸담고 있었더라면 벤처기업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사업을 한다는 것 / 레이 크록 지음, 센시오>

인상 깊은 대목이다. 인용한 대목을 읽으며, 손정의 회장이 레이 크록을 존경하는 사업가로 뽑은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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