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국면을 보고 느낀 점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동료들이 면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면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 같다. 가장 많이 찾는 면 음식점은 일본 라멘 전문점인 것 같고, 다음으로 칼국수집, 중식집,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순서로 방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패턴에 변화가 생겼다. 날이 더워져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어볼까 처음 들렀던 '풍국면'이라는 국수 전문점을 꽤 자주 찾고 있다.
사실, 풍국면이라는 브랜드는 국수전문점이 아니라, 코스트코에서 파는 소면 상품 브랜드로 먼저 알고 있었다. 코스트코에 가면 가끔 사 오곤 했는데, 식감과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국수 브랜드였는데, 어느 날 보니 회사 근처에 '풍국면'이라는 국수전문점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꽤 긴 대기줄을 감수하고 직접 먹은 국수 요리는 나름 괜찮았다. 공간과 인테리어 역시 인상에 남는 부분이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살펴보니, 풍국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 회사였다. 1933년에 생겼으니까, 백 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회사였다. 인상 깊은 것은 회사 이름이 '(주)풍국면'이라는 부분. 백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회사라면 처음엔 풍국면으로 시작했어도 지금쯤은 못해도 풍국식품 정도의 회사명을 욕망할 법한데, 회사 이름 자체가 여전히 풍국면이었다. 대기업 중심의 사업 확장 및 수직계열화가 일반적이었던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케이스로 생각된다. 과연 국수 하나만 가지고, 크고 작은 식품기업 사이에서 백 년 가까이 회사를 경영해 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풍국면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궁금해져서 살펴보니, 역시 풍국면도 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1970년대 연매출 30억 원을 기록하며, 국내 건면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갔던 풍국면은 80년대 들어서 위기를 맞는다.
1985년 식품 대기업이 국수 시장에 뛰어들면서 풍국면은 위기를 맞았다. 이때 풍국면 구하기에 나선 사람이 최 대표다. 최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 MBA(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증권회사에서 전환사채 업무를 담당하던 증권맨이었다. 최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은 1993년 회사 부채는 13억 원으로 매출(12억 원) 보다 더 많았다. 최 대표는 “회사를 맡고 2년이 지나서야 직업이 바뀐 걸 실감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며 “1t 트럭을 몰고 동네 구멍가게까지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재건했다”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84년 한우물 대구 풍국면 '100년 국수 기업' 꿈꾼다>
기사를 보면서, 궁금함이 생겼던 내용은 "1t 트럭을 몰고 동네 구멍가게까지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재건했다"라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1t 트럭으로 동네 구멍가게까지 찾아가서 영업을 한다고 해도, 과연 유통망까지 자체적으로 다 갖춘 대기업과 경쟁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생겨서 기사를 더 살펴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다.
유통망은 그가 앞장서서 개척했다. 우선 대구 인근 양산 빵 업체들을 돌며 풍국면 국수의 위탁판매를 맡겼다. 당시 양산 빵의 유통기간은 3~4일가량으로 이들 대리점 직원들은 거의 매일 소매점을 방문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중앙일보 <정년 없는 직원들 … 1인당 국수 2억 5853만 원어치 뽑네요>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특히 연고가 있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유통기한이 짧은 빵 업체의 영업 공급망에 위탁 판매 형식으로 자사 유통망을 개척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지역에 대한 기반과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었다. 풍국면이 위기를 극복한 과정 중에 흥미로웠던 또 한 가지 내용은 대형마트 쪽으로 판로를 개척한 부분이었다.
유학 시절 경험한 월마트를 보고 당시 국내에도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마트 공략에 승부수를 띄웠다. 대형마트와 거래를 트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형마트 본사 인근 찜질방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최 대표가 생각한 것은 대형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이었다. 1995년 말 풍국면은 이마트에 PB제품을 제안해 납품권을 따냈다. 최 대표는 “사실상 이마트 PB 1호였고 이때부터 회생의 발판이 마련됐다”라고 했다. 코스트코에도 납품이 이어지고 2013년 CJ의 제일제면소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까지 따내면서 2014년 매출이 106억 원까지 올라갔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지난해 말 생산라인 증설을 시작했다. 84년 만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84년 한우물 대구 풍국면 '100년 국수 기업' 꿈꾼다>
일단, 풍국면은 운도 좋았던 것 같다. 이마트,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가 시장에 진입하던 초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형마트로 진입할 수 있는 틈새가 많았다. 물론 그렇게 운도 따랐지만, 시장의 흐름을 먼저 읽고 과감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생각된다.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결심이 선 그는 거침이 없었다. 이마트와 거래를 트기 위해 반년 가까이 대구 풍국면 공장과 이마트 서울 본사를 오갔다. 국수를 담은 가방을 들고 편도 7시간의 거리를 오가며 당시로선 개념조차 생소한 PB(대형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을 제안했다. 찜질방에 자면서 미팅 시간을 맞춘 것도 수 차례. 이런 노력 끝에 95년 말 이마트에 PB제품 납품권을 획득했다.
-중앙일보 <정년 없는 직원들 … 1인당 국수 2억 5853만 원어치 뽑네요>
국수전문점 사업은 백 년 가까운 시간을 국수 제조에 집중했던 풍국면에서 신규 사업으로 선택한 아이템 같았다. 살펴보니, 풍국면 외식사업은 진담이라는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아마도 풍국면 자회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국수 제조사에서 국수 전문점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게 크게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풍국면 같은 회사에서 당연히 고려해 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패턴이 한국에서 일반적인 패턴은 아닌 것 같다. 신규 아이템을 고려할 때, 회사가 가장 잘 아는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가장 돈이 될 것 같은 아이템을 선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건설 회사가 앞다투어 바이오 분야로 신규 사업 진출을 한다던지,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갑자기 핀테크 분야로 신규 사업 진출을 하는 등의 사례가 그렇다.
풍국면의 국수 전문점 사업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고급화 컨셉이다. 일반적으로 국수의 경우 저가 음식의 이미지가 강한데, 풍국면 국수전문점의 경우 프리미엄 국수 음식의 컨셉을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수의 경우 원가 자체가 저렴하고,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프리미엄 전략보다는 가성비 중심의 저가 전략이 일반적일 텐데, 풍국면의 경우 다양한 국수 요리 및 메뉴 개발을 통해 고급화 전략을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 년 가까이 국수를 만들어온 브랜드가 만약 빠른 회전과 가성비 중심의 저가 전략으로 외식 사업에 접근했다면, 상당히 아쉬웠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노포처럼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풍국면 같은 브랜드들이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이 알려지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