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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드라마 녹음스텝이 되다.

by 녹음노동자

*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드라마 붐맨 면접>

경주에서 나는 가장 내가 잘하고 돈벌이가 되는 일을 찾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드라마 녹음기사님과 면접을 보기로 했다. 드라마 녹음기사님은 이번에 들어가는 추리드라마의 붐맨을 구하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는 날, 우리는 여의도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나는 먼저 도착을 해서 녹음기사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동안 영화스텝으로 일을 해 왔는데 내가 드라마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절박했다. 곧 녹음기사님도 도착했다. 기사님을 야구공 기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야구공기사님은 키도 훤칠하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마주 앉은 야구공기사님과 나는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면접으로 사람에 대해서 대충 알 수는 있어도 내가 마이크를 드는 실력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일단 우리는 같이 일을 하기로 하고 드라마 티저 촬영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곧 드라마의 티저 촬영날이 다가왔다. 야구공기사님은 내가 약속을 지키고 촬영현장에 잘 도착할 지부터가 걱정인 듯 이른 시간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항상 촬영현장에 일찍 다닌다. 곧 도착한다고 야구공 기사님을 안심시켰다. 우리는 촬영현장에서 다시 만나 천천히 동료로서 합을 맞추었다. 나는 침착하게 드라마 현장의 리듬을 따라갔다. 항상 들어왔던 마이크지만 평소보다 긴장이 되었다. 일이 시작되자 재미가 붙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야구공 기사님도 마이크를 들기 전까지 나의 모든 것이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야구공기사님이 좋은 녹음기사님인지 확인 중이었다. 서로에 대한 의문점들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야구공 기사님은 티저 촬영을 마치고 안심을 했다고 했다. 나도 야구공 기사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에 안심했다. 우리는 곧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조명팀의 텃세>

우리는 곧 추리드라마를 시작했다. 팀이라고 하면 나는 녹음팀이지만 결국은 드라마팀에 속한 것이다. 드라마를 위해 모인 스텝들이 조화롭게 촬영을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 조명팀의 텃세가 심했다. 왜냐하면... 형들에게 나는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입이기 때문이다. 형들은 나를 아랫사람을 대하듯 깔보면서 은근한 기싸움을 부렸다. 나는 조명팀으로 일해 본 것이 형들을 상대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자존심이 강하고 보수적인 형들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했다. 나는 형들에게 양보를 하면서도 물러서면 안 되는 부분에서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조명팀 형들이랑 절대 숫적으로도 힘으로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만만한 상대로 여겨지면 모든 부분에서 힘으로 누르려 들것이다. 나는 “뭐 이런 놈이 있어?” 말을 들을 정도로 형들의 속을 긁어놓기도 하고 그 이상의 불쾌감은 주지 않을 정도의 선을 유지했다. 우리는 며칠 같이 일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형들은 자신의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거친 행동을 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모두 좋은 사람이다. 드라마는 일자체로도 너무 힘들어서 형들하고 피곤하게 지낼 여유 같은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편하게 지냈다. 처음부터 우리가 나쁘게 지낼 이유 같은 건 없다. 우리 모두 어려운 환경을 같이 하며 드라마를 만드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붐맨의 어려움>

추운 겨울날, 우리는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촬영을 진행 중이었다. 촬영현장은 너무 추워서 스텝들은 발을 동동 굴리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 했다. 몇몇 팀은 의상, 분장 장소로 섭외된 카페에서 나오기를 꺼려했다. 밤을 지나 새벽이 되면서 추위는 더 강해지고 내 체력도 거의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다. 배우들은 입이 얼어서 몇 번이고 대사를 버벅거렸다. 나는 내 실수로 배우들이 다시 컷을 가는 일이 없도록 촬영에 집중했다. 바다 바람이 거칠어서 마이크를 그냥 들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촬영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손에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배우의 머리에 마이크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컷!!” 소리가 나자 “수고하셨습니다” 소리와 함께 스텝들과 배우들은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다들 옆에 대기시켜 놓은 차로 들어가고 시동이 걸리기 무섭게 촬영현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마이크를 내리고 굳어서 감각이 없는 손을 녹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잘 펴지지도 않았다. 나는 서둘러 카페 화장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손을 녹였다. 손은 따끔거렸다. 다행히 금방 상태는 좋아져서 다시 장비를 정리하러 나갔다. 이건 다른 스텝들은 잘 모르는 붐맨의 어려움이다.


<근로시간>

내가 드라마 붐맨으로 일을 할 때는 근로시간에 대한 규정이 제대로 시행이 되고 않고 있었다. 아침이면 A4용지 세로로 긴 촬영계획표가 나왔다. 가로는 씬이 10개 안 밖이지만 세로로 만들면 20개를 넘기기도 한다. 아침에 일찍 모인 스텝들은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촬영으로 밤을 새운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운이 좋으면 차가 끊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방송국 옆에 마련된 사무실 들어가서 쪽잠을 자고 아침에 다시 촬영을 나가야 했다. 잠을 자려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이미 기절해서 잠을 자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씻고 남는 침대에 들어가 조용히 잠을 청했다. 당시에 뉴스에서는 과로사를 한 방송스텝에 대한 이야기를 몇몇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들이다. 아침에는 다들 피곤한 얼굴로 모여서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모여있으면 감독님들은 스텝들을 대기시키고 필요한 회의를 한다. 너무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방법이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스텝들의 대기시키는 것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부족한 잠은 이동하는 버스에서 보충했다. 버스도 시간을 아끼려고 빠르고 위험하게 달렸다. 모두 것은 돈에 연관이 되어있었다. 강한 업무에 스텝들이 사망을 한 소식, 버스 사고 소식은 안타까운 뉴스이지만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텝들에게는 당장에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일하고 쉬기 바쁜 스텝들이 사회문제에 의문을 가질 여유도 잘 없다. 제작사에 솔직하게 불평불만을 하면 미운털이 박혀서 다음 촬영에는 만나기 힘들다. 이게 현실이다. 힘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팀장스텝들은 혹시나 미운털이 박힐까 두려워하고 조수들은 말을 하고 싶어도 아무런 힘이 없었다. 슬프게도 다들 순응하고 길들여진다. 당시 나는 너무 힘들고 가난한 생활을 막 지나고 있어서 그런 상황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애써 고개를 돌리고 모르고 외면하며 지냈다. 나도 결국에는 끔찍한 근로환경을 긍정한 것이다. 나도 죄인이다.


<성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 했다. 이것은 장점이지만 반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포기도 빠르다. 나는 촬영을 하는 동안 웬만하면 다른 스텝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 대본을 열심히 보았다. 대본의 대사량이 많기도 하고 나의 실수로 배우들과 스텝들이 다시 컷을 가게 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너무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야구공 녹음기사는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우고 마이크를 움직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개인적인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카메라에 무빙이 있는 컷인데 나는 테스트와 똑같이 마이크를 움직였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부지런히 화면을 확인했는데 “컷! 마이크 나왔습니다” 말이 나왔다. 나는 스스로 뭐가 잘 못 된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바로 촬영감독은 “미안 내가 실수한 거야" 말해 주었다. 콧대 높은 촬영감독님들이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잘 없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나는 더 이상 붐맨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간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가 정상이구나" 마이크를 든 지 10년이 가까워지고 너무 많은 촬영장을 경험했다. 붐맨의 일이 편안하게 느껴졌고 나는 편안함을 오래 견뎌하지 못했다. 이런 평온함은 곧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헤어짐>

드라마 현장은 힘들었지만 나에게 붐맨의 일은 익숙하고 편안했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이 오히려 나에게 많은 실수를 하게 만들었다. 리허설에 잘 집중도 하지 않고 움직임도 게을러졌다. 한 번은 경찰서에서 촬영을 할 때, 하루에 큰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오전에는 마이크를 들가다 뒤에 있는 화분을 못 보고 깬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리허설이 지루해서 계단 난간에서 놀다가 난간을 부숴버렸다.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았다. 제작피디님이 와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실수를 잘하지 않는 나로서도 엄청 당황스러웠다. 제작피디는 계단 옆에서 끙끙대며 내가 부숴놓은 난간을 고치고 있었다. 나는 테스트를 하거나 촬영이 쉬는 시간이면 계속 밖으로 나가서 계단을 고치고 있는 제작피디형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이 형은 "몬스터피디"라 부르는 게 좋겠다. 자꾸 쉴 때마다 오는 나를 보고 몬스터 피디형은 그래도 착한 아이구나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야구공 기사님과는 여러 작품을 같이 작업하였다. 우리 녹음팀에서 같이 팀으로 움직이고 있는 라인맨 동생이 있었다. 동생은 오랜 기간 조수로 일을 했지만 내가 위에 새로 오는 바람에 붐맨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되는 붐맨 일에 편안함을 느끼고 성장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우리 팀은 갈림길에 서 있었고 나도 고민이 되었다. 다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 나는 먼저 팀에서 나가겠다는 결심을 야구공기사님에게 알렸다. 나는 내가 쓰던 밥그릇을 동생에게 주었다. 그 밥그릇은 내가 빌린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동시녹음기사가 되어보기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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