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 그러나 실마리의 시작.
나는 내 불안한 재정상태, 불안, 분노 등에 대해 친구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이상한 것같아."
친구가 제안했다.
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기까지는 그로 부터도 한 달은 더 걸렸는데, 직업상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는 모습을 학부모가 보면 어떡하지? 그게 소문이라도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생각이 나를 마구 괴롭혔다. 하지만, 다시 또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배달음식을 토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병원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들켜서 민원이 들어온다면, 그건 그 때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구 간다고 받아주는 게 아니더라.
초진은 반드시 전화해서 예약했어야했고, 그것도 정해진날 선착순으로 예약해서 받아들여져야 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시골에도 아픈 사람들은 많아서 병원은 붐볐다. 나는 병원을 예약하고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으로 첫 진료를 기다렸다.
검사를 여러가지 진행하고 선생님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나에게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약을 처방해주셨는데, 한동안은 그약을 먹고 많이 어지러웠고 메스꺼웠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약을 먹고 나니 화가 나지 않았다.
우울증 약을 먹고 난 후에 모든 감정이 거세된 것 같이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아서 너무 행복했다. 감정과잉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약이 너무 감사했다. 화가 나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조금 더 평온하게 대할 수 있었고, 일을 좀 더 한 발짝 물러서서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동치던 감정이 줄어들고 나니 집중력이 매우 좋아졌는데, 나는 취직하고나서부터는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동안 내가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했는데, 약을 먹고 나서야 다시 활자가 읽히는 것을 보고나서야 인정했다. '아, 나 진짜 아팠던게 맞구나.'
또 의외의 과정은 약을 먹기 이전의 불안정한 나와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의 나를 마주해나가면서 다시 성격을 조정해나가는 과정이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감정이 조정되니 기본적인 사람의 태도가 바뀌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별 충동이 다들고 귀찮고 힘들고, 그랬는데 이제는 무언가의 의욕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약 봉투를 앞에 두고 생각했다.
이 일을 가족에게 이야기해야하는가.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무너지는 그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차마 없었다. 자책할 것이 분명해서 그냥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좀 나아지고 단약을 하게되는 때가 오면, 그런날이 있었노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기로.
그러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