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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맘 Jan 11. 2024

임신과 출산, 육아 그리고 군대의 공통점 및 차이점

알라는 딸일까 아들일까?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부상하는 가운데, 각 국가에서 저마다의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 남녀갈등의 핵심에는 군 징병제 및 가산점 제도, 그리고 임신과 출산, 육아 및 워킹맘과 육아휴직이라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자리해 있다.

나는 군 징병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군 가산점 제도를 적극 지지하고, 여성가족부의 무능력함과 국방부 예산 확충을 응원하는 한 사람이다.

이제 곧 서방님이 될 예비남편의 동생, 즉 시동생은 육사 출신의 소령이고 예비남편과 우리 아빠 역시 최전방 육군 현역 출신, 시아버님과 내 남동생 역시 현역 출신이다. (물론 내 남동생은 상근...이었지만 국방부에서 상근 통보를 받았을 때 우리 아빠는 국방부에 전화해 '저희 아들이 상근을 배정받았는데 해병대나 더 힘든 데로 재배치받을 수 없냐'라고 물었던 집안이다.)

나 역시 한 때 고무신...이었고 일말상꺽의 위기를 넘어 말년병장까지 의리를 지켰던 나름 자부심 있는 고무신 출신이고 소개팅 나가면 출신 대학보다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군대 어디 나오셨어요? 였을 정도.

꽃다운 청춘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이 시대의 국군 장병들 덕분에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여자가 군대 안 가는 이유에 대해 '여자는 애 낳잖아!'라고 하지만 평균 출산율이 0.7도 나오지 않는 요즘 시대에 해당 논리는 조금 억지 같다.

물론 우리는 생리를 한다. 한 달에 한 번.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여자들만 하는 건 아니다.


갈라파고스에서 영어-스페인어 통역 및 가이드로 여행경비 벌던 시절, 에이전시 사장님들과.

23살에 중남미 배낭여행을 하고 또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접한 세계 여행자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스라엘 출신 여자들이었다.

보통 여자 혼자서는 배낭여행을 잘 가지 않는다. 여성으로 혼자 위험한 중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이고, 여성 여행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남성 여행자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비야 여행기를 읽고 자란 세대이기에 여자 혼자서 왜 안 돼?를 외치며 당돌하게 떠났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 여성들은 혼자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여자들은 달랐다. 2년간의 군생활을 마친 그들은 정말 강인했다.


나는 중학교 때 교과서나 문제집마다 *강한 여자*를 써두고 친구들 사이에서 외국 연예인으로 닉네임 짓기가 한창 유행할 때 남들은 올리비아 핫세니 오드리 헵번이니 여성스럽고 지고지순한 여성성을 꿈꾸었지만, 당시 내 우상은 마돈나였고, 내 아이디는 마돈나킴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스라엘 여자들은 강함을 넘어서 강인했고, 또 정말 건강했다.

근육질에 다부진 체격의 그녀들은 혼자서 군장과 군화를 챙기던 짬밥으로 민간인인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고, 가끔 술 먹다 시비가 붙을 때면 살인병기 같은 포스로 아무 남자도 건들지 못할, 소위 말해 '간지'가 났다.


내가 학창 시절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는 바로 이 책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최근 유퀴즈에서도 방영되었기에 자세한 설명은 거두절미하고, 나도 한 때 미군 입대를 알아보았을 정도로 멋있는 여성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군에 대한 또 한 권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책에 대한 설명은 하기 나무위키로 대체한다.

우리나라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흔히들 여군에 대해 좋지 않은 모습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극남초인 군대사회에서 소수의 여성들을 위한 화장실, 휴게소 및 남성들 눈에는 땡보직으로 모이는 여군들이 상대적 혜택을 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리라.

일반 병사로 강제 징병된 일반 남성들 눈에는 부사관부터 시작하는 여군이 좋지 않게 비칠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타고난 신체적 구조와 특성상, 여자는 결코 남자를 이길 수 없고 그들보다 강해지기가 매우 매우 매우 어렵다.


나는 마라톤을 좋아하는데, 달리기는 현존하는 운동 중 거의 유일무이하게 내가 열심히 노오력만 하면 남자들과 대등한 실력을 겨뤄볼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어학연수 당시, 미국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며 무거워진 몸과 피폐해진 정신 상태를 다잡는 데는 러닝만 한 게 없었고, 당시 내 러닝메이트는 부사관 출신,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 기태였다.

나는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과 같이 달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되면 혼자 달릴 때보다 내 페이스도 더 잘 나오고 훨씬 더 오래 달릴 수 있으며, 무엇보다 러닝메이트와 비슷하게 달렸을 때의 성취감이 미친듯한 아드레날린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Tayminator, 터미네이터 같다고 붙었던 당시 별명...

웨이트 역시 오빠들이랑 같이 하는 걸 좋아하는데, 비싼 돈 주고 피티를 받기보다는 오빠들 따라서 무게를 치고 자세를 서로 봐주면 운동 효율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내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나는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다.

나는 10월 말 경, 다니던 금융회사를 퇴사하고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계 투자증권사에 세 번의 화상면접을 거쳐 입사 제안을 받았지만 이제는 제발 시집가고 정착하고 애 낳는 "평범한 삶"을 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포기했고, 비슷한 시기 진행된 모 인테리어 업체의 IR 포지션에서 실무면접 합격 이후 최종 면접에서 탈락, 골프 앱 회사에서 해외사업 포지션에 실무면접 합격 이후 회장 면접에서 탈락을 겪었다.


나는 취준생일 때도 대면 면접에 가서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이 바로바로 커리어를 이어나갔었기에 처음 겪어보는 좌절감이었다. 심지어 위의 두 포지션의 경우, 첫 번째는 헤드헌터로부터의 이직제안, 두 번째는 해당기업 인사담당자가 내 오픈 이력서를 보고 면접제안을 한 것이었기에 더 어이가 없었다.


내 나이는 33, 한국 나이로는 34이었으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잠재적 가임기 여성이었기 때문일까?

이후 난 이직 전략을 변경해 셀프 인사 청탁 모드로 진행했다. 과거에 같이 일했던 상무님, 전무님들은 어느덧 코스닥 상장사, 증권사, 등의 부사장 혹은 CFO 정도 위치에 올라 계셨고 나랑 같이 일했기에 나를 가장 잘 아는 그분들에게 내 이력서를 보냈다.


판교에 위치한 모 뷰티의료기기 회사는 내가 2년 반 전, 스노를 퇴사하고 나와 회장님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은 회사였고, 해당 회사의 부사장님은 나와 친한, 라오스 시절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낸 분이었기에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오너 기업인 해당 회사의 사장님은 회장님의 아드님이셨고, 난 사장 면접을 보고 확신을 얻었다.

나 합격했구나.


또래에 비해 높은 연봉이었지만 해외법인 관리, 해외영업, 국내 마케팅, 해외 IR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리 같았다.

나는 대기업의 부품처럼 일하는 것보다는 중소-중견기업에서 이것저것 다 하는 멀티맨 역할이 더 적합한 사람이었고, 그 회사는 마침 태국법인 설립 이후 동남아 시장 확장에 박차를 가하려던 참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핏이 잘 맞았다.

사장님은 면접 보고 나오는 내게, 인사팀 통해서 처우조건 및 제안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그날 난, 샴페인을 마셨다.


너무 일찍 축배를 들었던 것일까? 면접 이틀 후, 난 임테기에서 두 줄을 확인했고... (면접은 21일이었다.)

회사에 알려야 하나, 숨기고 일단 입사해서 수습 통과 후 오픈해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일단 입사를 하라고 했다. 오빠는 굳이 또 무리해야 하냐는 입장이었다. 나는, 욕심이 났다.

일도 하고, 출산 전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은 최소한으로만 쓰고 현업에 복귀해서 계속 일을 하면 안 될까?

마리사 메이어도 애 낳고 2주 만에 복귀했고, 쌍둥이 임신했을 때도 육아휴직 필요 없다 해서 욕먹었지만... 육아 휴직을 쓸 권리가 보장된 나라에서 육아 휴직을 쓰지 않을 자유도 주어진 것 아닌가? 우리나라 자유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남들보다 직장 스트레스를 배 이상 받는 스타일이다. 일과 삶의 분리가 잘 되지 않고 직장 내에서의 성과나 성취가 내 삶의 만족도의 바로미터가 되는 전형적인 일벌레 st...

난 딱히 취미도 없고 관심사도 없으며 덕질하는 대상도 없고, 내 유일한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내 연봉을 더 올리지? 어떻게 하면 내 몸값을 높이지? 어떻게 하면 최연소 여성 CXX타이틀을 달 수 있을까? 에 초점이 맞춰진 사람이었기에...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유리천장이 곤고한 이곳에서는... 특히나 보수적인 금융업계에서는......


무튼, 난 결국 부사장님께 전화해 임신 사실을 알렸다.

그게 그에 대한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고, 회사야... 나중에 어디든 또 인연이 되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면 되고, 정 안되면 내가 하나 차리면 되고, 하지만 임신은... 시기가 있기에.

하늘에서 내려준 소중한 선물은, 안정이 가장 필요한 초기 임산부로서 새롭게 입사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그냥 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실업자가 되었다.


생각보다 길이 길어져 이 얘기는 2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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