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놀랐던 사실 중 하나, 아이들은 사과를 참 잘한다. 어른들에게는 사과가 참 어려운 것이라, 책과 강의에서 사과하는 법과 적절한 사과 시기에 대해서 알려줌에도.. 못한다. 반면, 아이들은 앞뒤 재지 않고 바로 사과한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어른들은 계산하는 게 너무 많고,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큰일이 닥칠 것처럼 행동하지만, 아이들은 사과로 인해 기대되는 반사 효과나 역효과까지 계산할 수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잘못했으니 사과하는 거고, 그뿐이다.
엄마 : 수아야, 엄마 숙제 못 했어, 어떡하지.
수아 : 엄마가 잘못했어? 그럼 미안해, 죄송해요, 하면 되잖아 ~
수아 : 수아가 국 안 먹어서 미안해 엄마, 장난쳐서 미안해
마음이 찡.. 이 때는 요리도 안 하던 때인데 밥 차려주면 안 먹는 게 화가 났었다. 퇴근하고 와서 해 주면 빨리 먹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나도 쉴 텐데,라는 생각에, 내가 미안해.
아이를 키우면서 두 번째로 놀랐던 사실, 사과를 하면 바로 받아준다. '어, 괜찮아.' 까지 3초가 안 걸린다. So cooool. 사과하기 전까지 나 혼자 고민하던 시간이 무안할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용서해 준다. 하지만, 아이가 내게 사과할 때, 이미 엉겨버린 내 마음은 그 사과를 받아주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수아 : 엄마, 미안해~
엄마 : …
수아 : 죄송해 ~
수아 : 수아가 미안해했잖아, ‘응, 괜찮아’ 해봐.
대답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던 것 같다. ‘죄송해’가 존댓말인 줄 알고 말한 게 귀여워서 엉겁결에 마무리되었던 사과. 아이가 미안하다고 했을 때, 나도 바로 괜찮다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아가 던진 책에 맞음 ㅡ_ㅡ )
수아 : (한참있다가) 미안해, 미안해
엄마 : 알았어.
수아 : '괜찮아' 해봐
중등 단계 - 나도 발전해서 무응답 대신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으나, 끝까지 괜찮다는 대답을 유도하는 아이..
수아 : 엄마, 미안해~
엄마 : (밥 먹는 중) 엄마 사과받을 준비가 안 됐어.
수아 : 그럼 밥 다 먹으면 받을래?
고등 단계 - 이 정도면 나도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잘 대답해 준 것 같은데, 밥 다 먹으면 받아야 하나 ㅋㅋ 내가 노력할수록 아이는 더 앞서 나간다. ;
수아 : 미안하다고 했잖아 ! (이제 사과를 미끼로 화내는 단계)
엄마 : 예쁘게 말해야지
수아 : 미안하다고 했잖~아~ (ㅋㅋ 어감을 살려서 육성으로 읽어보세요 !)
엄마 : (퇴근 후 과일 사 오기로 했는데 까먹음) 아, 맞다 ! 어떡해. 미안해. 엄마가 깜박했네.
수아 : 안 사 왔어? 괜찮아, 안 미안해해도 돼
너의 마음은 어쩜 이리 넓은 거니..
고맙다. 나이만 어른인 내게 항상 먼저 다가와서 사과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