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다르게 살고 싶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판단에 단순한 법칙이 있다면 그거였다.
맥도날드 매장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신 메뉴를 광고하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대학 동기를 발견했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한참 열심히 대학 생활할 때는 여러 번 술자리도 같이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부터 잠깐 몇 초, 고민했다.
아는 척을 할까, 말까.
아는 척 하자니, 맥도날드 쓰레기통이나 치우고 있는 모습을 내보이기 부끄럽고, 그냥 지나치기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었다.
결국 난 그 친구를 그냥 지나쳐가기로 결정했다.
그 친구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루트로 손님들은 볼 수 없는 안 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하.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땐 그런 결정을 한 것이 당시 내 모습을 스스로 부정한 것만 같아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나이 삼십에 알바나 하고 있는 현실과 내가 겪어 온 일련의 과정들을 더욱 부정하고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아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편 이상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비록 당시에 후회를 했을지언정, 그 후회가 내 판단하에 겪어 온 삶을 부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 난 그냥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거다.
자기합리화 같은 게 아니다.
몇 년 전, 같이 술 마시고, 내방에서 잔 다음날, 반차를 쓰던 그 친구의 번듯한 직업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평범 또는 취업이란 걸 위한 노력은 정말 하기 싫어서 삭제해버렸고,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뿐, 어떤 결과물이 나올 때야 비로소 인정받을 노력은 난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 난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다.
비록 꽉 찬 쓰레기봉투를 든 모습을, 대학 동기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몸을 피했을 지라도.
그 친구의 최근 소식은 얼마 전 대학 동기 마당발인 형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 번듯한 직업을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기 위해 홍대 어디에선가 알바를 하고 있다는.
그래.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전 날의 부끄럼이 긁은 상처에 약이 된 것도 맞고, 묘한 안도감을 얻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다시 한번.
난 이렇게 살고 싶어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