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머리

by 남은

며칠 전, 머리를 잘랐다.

최악이다.


지금까지 잘랐던 머리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머리를 보면 짜증이, 짜증이,

싸게 자른 것도 아니었다.

27,500원.

그 미용실에 찾아간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전에 다니던 미용실에서도 크게 한번 망해서, 옮긴 미용실이었는데, 처음 잘랐을 때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자른 머리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커트 비용치고 비싼 걸 감수하고서도 또 그 미용실을 찾은 거였다.

저번 머리가 참 마음에 들었다고 말해주니, 직원들은 원장이 커트는 정말 잘 하신다고 아부를 떨었다.

물론 아부라고 생각한 건 원장이 이런 머리로 만들어 버린 이후다.

그리 실력 좋으신 원장이 내 머리를 이리 망친 데에는 내가 처음 잘랐을 때처럼 이렇게 저렇게 잘라달라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은 탓이 컸다.

물론 한번 잘라봤다고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자른 원장 탓도 있겠다.


이마가 넓어서 유독 앞머리를 신경 쓰는 편인데, 앞머리 숱을 너무 많이 치고 말았다.

정작 미용실에서 나오기 전까지도 이리 잘린 줄 모르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매만져 보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리 해보고, 저리 해봐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우울해지고 하루 종일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이 머리가 괜찮아 보일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 머리에 손대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거울에 비춰본다.

어,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 한번 더 고개를 돌렸을 때, 다시 못나 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자기 합리화하면서 괜찮다, 괜찮다,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되새겨 보지만, 나아 보인들 그게 몇 초에 불과했다.


가끔 우울한 일생에 약이 되어주는 자기합리화도 지금과 같은 머리에는 통하지 않았다.

자기합리화도 어느 정도 바탕은 있어야 된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바였다.

그리 생각해 보니, 좁은 자취방에 홀로 밤을 지새우면서 막 나간 인생에 대해 수없이 되뇌었던 자기합리화들이 아직까지 어느 정도 약발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아예 바탕 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아무튼 이번 머리는 파마라도 해서 해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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