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전원

by 남은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곧 누나와 결혼할 매형과 함께 누나와 나의 어린 시절, 또는 아빠와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봤다.

아빠는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 비디오 때문에 항상 비디오 플레이어의 전원을 넣어둔다고 한다.

오랫동안 전원이 안 들어온 전자제품은 부품이 식어 고장이 난다나.


매형은 수줍음 많은 어린 시절의 누나를 보며 놀리고, 엄마는 막춤 추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며 크게 웃었다.

나는 귀엽게 깔깔대는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핸드폰으로 찍어 여자 친구에게 보내주며,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음을 자랑했다.

아빠는 저 시대 때 비디오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다며, 사위될 사람에게 으스댔고, 그 힘든 시절이 떠오른 엄마는 울다가, 어린 시절의 내가 자기 머리만 한 족발을 뜯자, 다시 웃었다.


비디오를 보며 마시던 술이 동날 때쯤, 아빠는 많이 취해서 방으로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하나만 더 보자며, 서랍장에서 새로 꺼내 온 비디오를 재생시켰다.


그건 아빠가 찍은 비디오가 아니었다.

사진관을 하시던 큰 이모부가 찍은 비디오였다.

외할머니의 환갑잔치였고, 89년, 난 막 돌을 넘긴 아가로 출현했다.

좁은 방에서 열린 잔치에는 외가 쪽 어른 6남매가 모두 모여 있었다.

지금은 다들 5, 60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2, 30대 청년들로서.


아직 옹알이만 할 뿐인 나를 제외한 손자, 손녀들이 노래 한 곡씩 부르고, 다음으로 어른들도 노래 한 자락씩 부르기 시작했다.

6남매뿐만 아니라, 며느리 사위도 예외 없이, 분위기에 맞춘 순서가 오면, 노래 한 자락씩.

음치였던 아빠도 노래방 18번을, 이모들은 화음을 넣어 가요를, 아직 수줍은 새댁 작은 외숙모는 찬송가를 불렀다.

누구 하나 미소 짓지 않은 사람 없이 서로의 노래에 웃고, 떠들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제 그 비디오에 새겨진 시절로부터 28년이 지났다.

큰 외숙부는 화음을 넣어 노래 부르던 이모들과 전화 한 통화도 하지 않는다.

수줍은 새댁 작은 외숙모는 엄마를 포함 이모들 사이에서 매번 욕을 먹는다.

작은 외숙부는 편찮으신 외할머니를 돌보기보다 교회 일에 더 매진하고 계신다.

그렇게 서로의 노래에 웃고, 떠들고, 박수를 치던 2,30대의 6남매는 이제 서로의 주장이 얄미운 5, 60대가 되어버렸다.


이제 또 새로운 28년이 지나갈 것이다.

마침 비디오 속 6남매의 나이가 딱 지금 누나와 나의 나이다.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곧 누나와 결혼할 매형, 나, 나의 졸귀 어린 시절 사진을 핸드폰으로 전송받은 여자 친구.

우리는 다음 28년 후에도 여전히 따뜻하게 전원이 들어와 있는 비디오 플레이어로 누나와 나의 어린 시절, 또는 아빠와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며 웃고, 울고, 놀리고, 자랑하고, 으스대고 있을까.


지금 어른들을 보면 그리 쉽진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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