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졸잼

by 남은

꽃거지가 이슈가 되는 이유는 잘생긴 사람이 거지가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느 플리마켓 행사에서 초청 남자 모델을 본 적이 있다.

남자에게 한눈 팔려 쳐다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얼마나 넋 놓고 봤는지, 남자인 내가 팬인 줄 알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매너까지.

그날 플리마켓에 같이 간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정성스레 왁스와 스프레이로 떡지게 매만진 내 머리가 저기 저 먼 안드로메다의 의지 없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그렇게 타고난 사람들도 어느 마니아층만 알고 있는 그저 그런 모델이었다.


타고난다는 것.


명문고의 학생으로서, 그 학교를 다니며 좌절했던 순간 중 하나가 아이큐 테스트 결과를 받았을 때였다.

내 결과가 비참해서가 아니라 성적으로 전교 10등 안에서 다툼하는 애들이 전부 나보다 아이큐가 20씩은 높아서였다.

학교에 꼴등으로 입학한 친구는 졸업할 때 의대를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큐를 140 넘게 찍었었다.

그들 사이에 어떻게든 끼여보겠다고 아등바등 우러러봤던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난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고, 느껴졌던 사실.


타고난다는 것.


그런 타고난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면 그들의 위치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풀숲을 헤집고 새로 내디딘 길은, 그저 등불도 없는, 앞에 보이는 거라곤 장애물 뿐인, 그다음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곳이었다.


그래도 아직 젊은가 보다.

난 또 풀숲을 헤집고 있고, 길을 막은 것이 몇백 년 자란 나무인 줄 알면서도 베어내려 하고 있다.

어찌 말하면 언제 걸음을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타고난다는 것.


내가 타고 난 건, 또 헤치고, 또 베어낼 그 무언가.

어떻게 말하면 허영심.


난 오늘도 지금 이 글을 쓰는 두 평 남짓 방이 모차르트 하우스가 되길 바라며, 내 여자 친구가 백석의 자야가 되길 바라며, 나의 고독이 고흐의 자화상이 되길 바란다.


타고난다는 것.


난 오늘도 드라마 청춘시대를 몰아 보면서 또 느낀다.

졸잼.

작가는 천재다.

감탄.

감탄.

감탄.

반면, 타고났다면 몰랐을 감성.

물론, 그걸 표현하는 배우들 또한 타고난 사람들이지만, 그 표현이 거침없던 것에 다시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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