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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Apr 07. 2018

04 : 週

名残惜しい

: 아쉬운


5년 전, 삿포로에 온 건 무모했다.

일본어는 거의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지인은 아무도 없었다.

무모했던 만큼 행동은 빨랐다.

토요일에 도착했고, 일요일 아침, 기숙사 관리인에게 혹시 주변에 교회가 있는지 물었다.

きょうかい(교회)란 단어를 이용해서 물어보다가, 못 알아듣는 거 같아서(물론 내가 발음도 안 좋고, 문법에도 안 맞는 일본어를 썼기 때문), church라고 바꿔 물었던 기억이 난다.

교회는 기숙사에서 걸어 1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한국에서 대형교회만 다녀 본 나에겐 작고 아담하게만 보이는 교회였다.

우물쭈물 교회 앞에 다가서자, 문을 열고 날 맞이해주신 분이 바로 사모님인 카오루상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해서 한국인이라는 설명도 못했고, 서명을 한자로 하자, 카오루상은 처음에 내가 중국인 줄 알았다 했다.

낯선 땅,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 정신 못 차리는 나에게 카오루상은 밝은 얼굴로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마치 보호자처럼 일일이 챙겨주셨고, 교회 청년 후지이상을 소개해 주시고, 따님인 마리아를 소개해 주시고, 예배 후 모임에서도 내 옆에 앉으셔서 느린 일본어로 이런저런 것들을 알려주시고 설명해주셨다.

첫 예배 후 모임 때, 카레를 얻어먹고 나서, 그 음식들이 공짜인 줄로 알고, 매주 아무렇지 않게 차려진 음식을 접시에 담아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카오루상이 내 몫의 회비를 내주셨던 거였다.  

나도 모르게, 또는 알면서도 목사님과 카오루상에게 신세 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목사님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아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었고, 목사님은 날 데리고 삿포로 주변 여행도 시켜주셨다.

카오루상과는 같이 도쿄 여행도 갔었는데, 그때 비행기 값을 도쿄에 사시는 카오루상의 친정아버님이 내주셨다.

묵은 곳도 카오루상 친정아버님 집이어서, 여행하는 동안 내 돈은 거의 한 푼도 안 들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 카오루상은 내 생일을 잊지 않으시고 페이스북으로 축하 인사를 해주셨는데,  메시지를 나중에서야 보고 늦게 답장해 드렸더니, 언젠가부터는 마리아를 통해서 카톡으로 생일 축하 연락을 해주셨다.

물질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목사님과 카오루상은 내가 평생 감사해야 할 은인이다.   

5년 전, 언젠가 꼭 다시 삿포로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가, 이렇게 다시 삿포로에 오게 됐는데, 아쉽게도 이번엔 목사님과 카오루상이 삿포로를 떠나게 됐다.

고토니 교회에서 임기를 다 채우신 목사님이 도쿄 쪽 교회로 부임 가시게 된 거다.

목사님의 송별회.

한 명씩 돌아가며, 목사님과 카오루상에게 송별사를 했다.

"제가 다시 삿포로에 온 건, 목사님과 교회 분들이 저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건강하세요. 꼭 도쿄에 찾아뵈러 가겠습니다."

어느 교인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서, 훌쩍이는 소리가 회장 안에 가득했다. 결국 카오루상도 눈물을 보이셨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 딸 마리아의 가족을 이곳에 두고 갑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삿포로에 찾아온 남상과 그의 여자친구도 잘 부탁드립니다."




念な

: 아쉬운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가자고 먼저 제의한 건 여자친구였지만, 삿포로로 가자고 한 건 나였다.

삿포로는 나에게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다.

5년 전 생활했던 기간이 단 6개월뿐이긴 했지만,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본 게 처음이라서 그랬을까, 감정적으로 정이 많이 가는 곳이다.

또 한편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5년 전에는 가지고 있는 돈이 별로 없어서, 맘 놓고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지 못해서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마루야마공원이나 홋카이도대학 같은 곳도 못 가봤고, 입장료 있는 미술관, 동물원은 갈 생각조차 안 해봤다.

언젠가 여유로울 때, 삿포로를 맘껏 즐기고 싶었다.

교통비 아까워 먼 거리 걸어 다니던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고, 이번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련다.

물론 이번에도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이라면 살짝 가기 망설여지긴 하지만(오랜 궁핍한 생활로 인한 습관 때문에), 여자친구도 데리고 왔고, 5년 전의 아쉬움을 좀 씻어내 보려 한다.  

이번 주만 해도, 마루야마 동물원, 삿포로 맥주공장 공원에 다녀왔다.




惜しい

: 아쉬운


택배 올 것도, 등기 올 것도 없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잠결에 들어보니 'NHK' 뭐시기라고 하는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건물 문을 열어주었다.

찾아온 사람은 방송사 'NHK'에서 파견된 TV수신료 수금원이었다.

잠결이라 그랬는지, 한참 멍 때리면서 생각했다.

분명 집 계약할 때, 매달 지불해야 하는 돈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지만, TV수신료 같은 건 없었다.

모르는 사안이라 의심해 봐야 했다.

수금원은 안경을 썼고, 뭔가 행동이 어수선하고, 조잡했다.

신참 필이 난다.

연민이 간다고나 할까.

그래도 의심해 봐야 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안이라 알아보고 서명을 하겠다고 하니, 그럼 오후 3시에 다시 찾아오겠다 했다.

그렇게 수금원을 보내고, 골치가 아팠다.

아, 뭐야, 이건.

수금원이 준 팸플릿을 봤는데, 뭔, TV 수신료가 한 달에 2200엔.

한국에서는 몇 천원도 안 하는 건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우선 부동산 회사에 전화해 봤다.

부동산 회사 사람도 대충은 알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잘 알아보고, 무조건 서명하지 말라는 충고를 해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지인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그 사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NHK, 수신료.

아니나 다를까, 나와 같은 사안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한국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TV를 보지 않더라도, 집에 TV나 노트북, DMB가 되는 핸드폰이 있다면, 무조건 수신료를 내야 하는데, 요령 있게 TV도 없다, 노트북도 핸드폰도 없다고 하거나, 아니면 막무가내로 수금원이 집에 오며 돌아가라고 문을 안 열어주면, 수신료를 안 낼 수 있다는 거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수금원과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는 것.

아씨, 미리 알았더라면.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도 TV가 없다고 거짓말 치고, 수신료를 안 내고 있다고 한다.

아, 정말 내기 싫어졌다.

그래, 3시 넘어서 안 오면 문 안 열어줘야지, 그래, 넉넉잡아 3시 반까지 봐줄게, 수금원아.

그리고 또다시 네이버 블로그를 뒤졌다.

NHK 수신료 대처 요령을 적은 한 블로거가 글 마지막에 대충 이런 말을 남겼다.  

수신료 안내는 방법을 이렇게 가르쳐 주지만, 이 나라의 일원으로 들어온 이상, 지켜야 하는 건 지키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러면서 자신은 수신료를 낸다고 했다.

하.

3시 넘기고, 20분, 인터폰이 울리고, 난 문을 열어줬다.

이제 격월로 5000엔씩 날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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