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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Apr 24. 2018

06 : 週

適応

: 적응    


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일까.

경우에 따라 다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지금 연락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은 한 명도 없고, 그나마 자주 연락하는 친구는 대학 동기 두 명뿐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말은 그때그때는 나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반장도 여러 번 했었고, 사춘기가 와서 비교적 수줍었던 고등학생 때도 생일이면 기숙사 룸메이트들과 며칠은 먹고도 남을 과자와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었다.

대학 때는 나름 학회장직도 맡았었고, 과 행사 때는 내가 사회를 봤다.

군대 때도 가장 친한 전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내 이름이 가장 많이 적혔었다. (인사과장이 따로 말해줬다.)

어른들이 많은 행사에 참여하면 그들 중 꼭 하나는 나를 사위 삼고 싶다고 했었다.

아르바이트할 때도 가장 추억에 남은 건 일 끝나고 동료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고 놀았던 기억들이다.

난 나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때그때 사람들과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들에게 마음을 못 열기 때문일까.

언제나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바라보는 오만함 때문일까.

아니면 이렇게 좁혀져 가는 인간관계에 조바심 같은 걸 느끼지 않는 성격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그렇다.)

사실 더라도 좁힐 수 있다면, 더라도 좁히고 싶다.

그냥 지금 내 뒤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여자친구, 날 영원히 응원해줄게 틀림없는 가족들하고만 소소하게 웃으며 살고 싶다.

어쩌면 난 인간관계에 만족 못하는 이유를 한국이라는 환경 때문이라고 착각해서 일본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선 내가 인간관계를 유지하길 바랄 수도 있다고 착각했는지 모른다.

이 곳에 온 지 한 달여 넘고 보니, 난 또 새롭게 만들어져 가는 이 삿포로에서의 관계를 단지 여자친구와 나를 위해 넓혀 갈 뿐, 언제든 다시 오므려 좁힐 수 있도록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격주로 월요일마다 시티 오아시스라는 카페에 한국어 대화 모임에 나간다.

가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과 일본에 지인들을 만들고 싶은 한국인들이 모여 서로의 언어를 교환하면 대화를 나눈다.

보통 일본인들이 많은데, 최근에 갔을 때, 한국인이 일본인들보다 배로 넘게 참석했다.

그중 한국인 한 명이, 만나자마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명함이라며, 그 명함에 자신의 이름을 자필로 적어서 나에게 주었다.

말이 많은 편이었고, 나보다도 유창한 일본어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대화 중간에 끼어보지만 내 말은 끊기기 일수였다.

음, 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네.

한참 말을 않고 있으니, 나에게 묻는다.

저기, 어디 불편한 거 있으세요.

속으로, 응, 니가 준 명함, 켈리그라피를 할 줄 안다며 오글거리는 멘트를 사람들에게 적어주는 너의 오버, 내가 말만 하면 다 끊어 먹는 너의 토크, 그리고 서슴없이 불편한 거 있냐고 묻는 그 태도.

아, 또 습관 나왔다.

사람을 좋게 못 보는 습관.

난 사람이 싫다 싶으면, 오히려 더 띄워주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일본어는 어떻게 공부하신 거예요? 엄청 잘 하시네요.

아, 혼자서 공부했어요, 학원 같은데도 안 다녔어요.

재수 없어.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여자친구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랑 떨어져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본어를 잘하는 한국인에게, 말을 자꾸 해봐야 잘하게 된다면서, 이말 저말 해보라는 잔소리를 듣고 왔단다. (물론 선의로 한 것이겠지만, 여자친구 입장에선 잔소리다.)

아, 한국이 나랑 안 맞는 게, 착각이 아닐 수도 있을까.

아니면 단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거처럼 넓혀져 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거부감일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




銭函

: 제니바코


5년 전, 어학연수를 삿포로에서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영화 러브레터 때문이었다.

삿포로 가까운 도시, 오타루가 러브레터의 촬영지였다.

당시 가난한 유학생이어서, 촬영지 여기저기 다 돌아다녀 보진 못했지만, 그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배경이기도 했던,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 집에는 꼭 가봐야겠다 싶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찾아갔을 때, 그 집은 이미 화재로 소실되어 없었고, 그 터와 영화 속에서 봤던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

거기서 집의 한 조각이었던 벽돌을 챙겨 왔는데, 아직도 귀중하게 보관 중이다.

날씨가 좀 풀리자마자 바로 여자 친구와 다녀왔다.

다녀온 곳은 고즈넉하다는 단어가 잘 어울리고 바닷가와 작은 동산이 함께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제니바코라는 작은 도시다.


    


自転車

: 자전거


일본 교통비는 한국에 비해 비싸다.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삿포로가 더 비싸다고 들었다.

걸어서 30분 걸릴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다녀오면 400~500엔이다.

여자친구가 일본어 학원에 다니는데, 걸어서 딱 30분 정도 걸린다.

삿포로 중심지인 오도리 근처나 삿포로역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지인들과 약속이 있으면 주로 오도리 근처에서 본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500엔씩 버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사기로 결정했다.

바로 중고 거래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괜찮아 보이는 자전거를 골라 연락을 해봤다.

가격은 6000엔, 판매자와 JR 고토니 역에서 저녁 6시 45분에 만나기로 했다.

고토니 역까지 가는데도 교통비가 아까워서 걸어서 갔다.

보슬비가 내렸다.

좀 늦을 거 같아서, 판매자한테 전화를 해봤더니, 받지 않았다.

두 번 더 해봤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분명 약속을 어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속 장소까지는 가보기로 했다.

약속시간보다 10분은 넘기고 고토니 역에 도착했다.

만나기로 한 빵집 앞에 자전거를 옆에 두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서있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아저씨도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나를 보고 맞다 싶었는지, 계속 눈을 마주쳤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왜 늦었냐, 늦을 거 같아서 전화했는데 받지 않으시던데, 집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

(중고 거래하면서 핸드폰을 놓고 오면 어떡하자는 거야.)

자전거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은빛에 녹슨 곳도 별로 없고, 바구니도 튼튼하고, 타이어도 거의 마모되지 않았다.  

인계받고 나서도 비가 계속 내렸다.

이제 난 돈을 아껴서 좋고, 여자친구는 라랄랄라 라랄라라 포카리스웨트 분위기 낼 수 있어서 좋고.

자전거 이름을 지어줘야지.

비 내리는 날 받았으니까 아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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