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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Apr 26. 2018

07 : 週

ガス費

: 가스비


새벽 다섯 시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서로 싸웠고, 나름 긴 시간과 많은 말로 감정을 푼 듯했지만, 걸리적거릴 정도의 앙금은 아직 남았는지 둘 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루야마 공원에 가자, 갔다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오자.

진짜? 지금?

응.

나가는 길에 우편함에 가득했던 고지서들을 챙겼다.

다 가지고 가게?

응, 나중에 커피 마시면서 읽어보게.

밖에 나온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새벽 맑은 공기에, 마루야마 공원 숲에서 풍기는 피톤치드가 어우러져 마음 속 앙금이고 뭐고 다 씻겨나가 그저 상쾌하기만 했다.  

여자친구랑 희희덕거리며 한산한 새벽 공원을 돌아다녔다.

스타벅스 오픈이 7시였고,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루야마 공원 안 신궁에서 운세를 알아보는 종이도 뽑아 봤는데, 나오기 힘들다던 '大吉(대길)'이 나왔다.

뭔가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그치?

공원 외곽 언덕 마을까지도 가보고 다시 돌아와서 7시가 되자마자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눈에 슬슬 잠이 몰려왔지만, 모처럼만의 모닝커피, 공원을 배경으로 둔 창을 바라보며 한껏 분위기 냈다.

언제 싸웠냐는 듯, 여자친구랑 눈만 마주쳐도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빤 이제 고지서들 좀 봐볼게.

하나는 내 보험료, 또 다른 하나는 여자친구 보험료, 전기세, 그리고 가스비.

응? 일십백천만, 3만 7천엔?

순간 눈에 잠이 아니라 피곤함과 고통이 쏠려왔다.

아, 망했다.

여자친구에게 힘껏 담담하게 닥친 상황을 전해주고, 고지서로 머리를 툭툭 쳤다.

당황한 여자친구 반응에 조절해 보려던 목소리 조임이 풀려 버렸다.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한국말이 주변에 요란스레 퍼지자, 여기저기서 신경 쓰는 눈초리들이 느껴졌다.

한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힘겹게 일어나서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손으로 또 머리를 툭툭 쳤다.

누가 쓰라지라면 진짜 쓰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삿포로, 10월부터 흩날리는 눈을 치우기 위해 밤샘으로 공무원들이 고생하는 세금 높은 동네.

그래, 그런 도시.   




ハローワーク

: 할로워크


본래 아르바이트는 5월부터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삿포로 전기세와 가스비가 상상 이상으로 비쌌고, 더라도 빨리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자리를 알아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일본 지하철역 여기저기 꽂혀 있는 'town work'라는 구인 잡지를 봐보는 거다. (무료다.)

구인광고가 지역별로 업종별로 잘 나누어져 기재되어 있다.

또 한국의 '알바천국'처럼 인터넷으로도 'town work'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앱도 있다.)

다른 방법으로, 절차는 좀 까다롭지만 '할로워크'라는 국가 운영 구인 및 구직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는 거다.

'town work'가 구직자와 구인업체를 직접 연결시켜주는 시스템이라면, '할로워크'는 공무원인 전문 상담사가 구직자에게 맞는 직장을 찾아봐주고 채용될 때까지 서포트해주는 시스템으로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직접 업체에 연락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덜 부담되는 방법이다.

난 우선 '할로워크'에 가보기로 했다.

가서 신상정보 서류를 작성하고 등록하면 바로 상담사와 연결시켜 준다.  

날 상담해주신 분은 야마다 상.

중년 여성으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물어보시고 들어주시고 지적해주시고 챙겨주시는 정말 친절하신 분이다. (내가 어딜 가나 인복은 좀 있는 듯하다.)

두 군데를 추천해 주셨는데, 한 군데는 비즈니스 일본어가 돼야 돼서 이력서를 써보기도 전에 탈락, 다른 한 군데는 한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면세점으로 딱히 일본어를 잘해야 하는 직장은 아니라서 지원해보기로 했다.  


 


家計簿

: 가계부


가계부를 쓴다.

수입금은 안 적고, 지출금만 적는다.

한 주의 평균을 내고, 워킹홀리데이 통 틀어 평균을 낸다.

그리고 한 달 필요한 돈을 계산해 본다.

이번 주에 각종 고지서들이 날아와서 지불하느라 평균값이 많이 높아졌다.

'0엔 데이', 여자친구와 나 사이에 어느샌가 생긴 은어다.

돈을 안 쓰는 날이다.

이번 주에 '0엔 데이'를 많이 만들었어야 했는데, 마리아네 가족과 '시로이 고이비토 파크'에 놀러 가는 바람에 기회를 또 하루 놓쳤다.

게다가 지난번에 마리아 집에 초대받아서 많이 얻어먹었기 때문에, 이번엔 우리가 점심 한 턱 쐈다.

아끼더라도 낼 건 내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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