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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Jan 01. 2019

27 : 週

台湾

: 대만


면세점 점장님이 그만두는 이유가 새로운 알바를 구해서냐고 나에게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답했다.

개인적인 일이 바빠지기도 했고, 여자친구가 그만두길 바란다는 이유를 댔다.

번역 일을 맡게 되면서 개인적인 일이 바빠진 것도 맞고, 매번 면세점에서 스트레스받는 내가 안쓰러워 여자친구가 그만두길 바랐던 것도 사실이지만, 엄연히 따지면 새로운 알바를 구해서 그만둔다는 말을 하기 힘들어 핑계를 댄 것이다.

면세점이 가장 바쁜 시기인 여름휴가철에 그만두는 게 미안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고 자기 합리화해볼 수 있지만 스스로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냥 다른 일을 구해서 그만두는 게 쪼잔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사실대로 말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거짓말을 하고 나서 잘했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쪼잔해 보이고 싶진 않았고, 나름 선방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짓말로 인한 누수는 항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면세점에서 같이 일했던 대만인 동료를 만났다.

같이 일했을 때 서로 이름도 정확히 외우지 못할 정도로 친하지 않았었다.

그냥 인사만 하고 말려다가 가는 방향이 같아서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아직은 일본어가 어눌한 대만인 동료는 머릿속에서 해야 할 말을 정리해 보려는 듯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대답을 해냈다.

새로운 일을 구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렌터카라고 했다.

렌터카? 어디 렌터카냐고 물었더니.

이름은 잊어버렸다면서 구글 지도로 보여주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일하고 있던 렌터카였다.

아씨, 이런.

아직도 면세점에서 일하냐고 내가 다시 물었다.

대만인 동료는 그렇다고 했다.

아씨, 나만한 쪼잔한 새끼가 또 있을까.




朝鮮

: 조선


일하고 있는 렌터카에 나랑 여자친구 말고도 한국인이 몇 명 더 있다.

그중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 A가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딱히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건 없다.

오히려 나에겐 깍듯하게 하는 편이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건 A의 한 없는 가벼움이다.

중국인 여직원에게 처음 만나자마자 이쁘다고 직접적으로 말한다거나, 고등학생 여직원이 귀엽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보고 싶다고 한다거나, 일본에선 실례인 혼인 유무를 여기저기 묻고 다닌다거나, 등.

뭐, 여기까지는 사교성이 좋다고 보면 그만이지만, 앞에서 말한 A의 가벼움이란 것에는 또 다른 분야가 있다.

약간 분노 조절에도 문제가 있다.

내가 보기엔 A는 자기 뜻대로 일이 잘 안 풀리면, 그 불만을 잘 숨기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내 귀에 거슬리는 건, 그 대상이 앞에 있음에도 못 알아들을 걸 알고 불만 가득히 뱉어내는 한국말들이다.

그런 일들이 여러 번 쌓이다 보니 당연스럽게도 일본인 직원들과 몇 번 트러블이 있었는데, 결국 큰 사건이 터졌다.

평소에도 무뚝뚝한 일본인 직원 B가 자신의 인사를 무시했다며, A가 크게 화를 내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 없어서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말인지만 A가 B에게 따질 길 자기가 ‘조센징이라서 무시하는 거냐’고 그랬단다.

하. 그냥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A의 멘트가 나를 자꾸 불편하게 만든다.




日本

: 일본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기보다, 한국인과 같이 일했던 면세점과 일본인과 같이 일하는 렌터카를 비교해보면, 다른 점이 있다.

면세점에서는 일을 못하거나 실수하면, 그 일에 대한 잔소리 플러스 몇 마디 말을 더 들어야 했다.

그 몇 마디 말의 예를 들면, ‘쟤 어쩌면 좋니’, ‘군대를 제대로 안 갔다 와서 그런가’, ‘나는 그 나이 때 안 그랬는데’ 등이다.

한편 렌터카에서는 일을 못하거나 실수하면, 그 일에 대한 잔소리를 듣는 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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