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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Jan 11. 2019

28 : 週

地震

: 지진


새벽에 꽤 큰 지진이 났다.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자고 있던 여자친구는 놀라서 깨고, 공부하고 있던 나도 무서워 여자친구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진은 몇 번 경험해봤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강도가 달랐다.

바로 TV를 켰다.

지진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지진에 익숙한 일본 사람들도 놀랐는지, 새벽인데도 라인 단톡창에 계속 글이 올라왔다.

큰 문제는 정전이 나면서부터였다.

단톡창에 자신의 집이 정전됐다며 다른 집은 어떠냐고 묻는 글들이 올라왔다.

이쪽 마을은 괜찮네 하고 있던 중에 결국 우리 집도 정전되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지진 때문에 홋카이도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고, 그 발전소가 멈추면 다른 발전소들이 과부하에 걸릴 수도 있어서, 나머지 발전소도 활동을 중지시켜 버렸다고 한다.

인구 200만의 삿포로가 블랙아웃, 그야말로 암흑도시가 되어버렸다.

다시 전기가 들어온 건 삼일은 지나서였다.

그 사이 겪어야 했던 전기를 이용할 수 없는 밤은 진짜 어둠 그 자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로의 신호등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차와 사람들이 알아서 양보하며 길을 건너야 했다.

대부분 편의점과 식당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마트에서는 비상식량 정도만 팔았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연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 오는데 한 시간 정도 줄 서서 들어가야 했다.

공항도 마비됐고, 전철과 지하철도 운행하지 않았다.

삿포로역은 갈 곳을 잃은 여행객들로 노숙촌이 되었다.

진원지와 가까운 곳에서는 산사태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그저 신기한 경험을 해본 거라고 넘기기에는 사태가 심각했다.




ロマンチック

:로맨틱


지진 다다음날, 여전히 여진이 이어지고 도시 중심지역 일부를 제외하곤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여자친구는 출근을 해야 했다.

렌터카가 평소와 같이 영업을 한 것이다.

지진 나고 마을을 벗어나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자친구 혼자 보내기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중교통도 아직 운행하고 있지 않아, 걸어서 출근해야 했다.

난 쉬는 날이었지만 같이 렌터카까지 가주기로 했다.

여자친구가 걱정되는 이유도 있었지만, 삿포로역 주변에 가서 식료품도 사고, 다른 지역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분주한 느낌이었다.

주유소에는 언제 끊길지 모를 기름을 넣으려는 차들로 붐볐다.

일부 영업하고 있는 편의점의 식료품은 거의 거덜 나 있었다.

반면 음식점이나 카페는 전부 문을 닫았고, 이외 다른 가게들도 대부분 영업하고 있지 않았다.

렌터카에 도착해보니, 발전기를 돌려서 컴퓨터나 청소기 같은 걸 겨우 사용하고 있었다.

출근 기록기도 사용하지 못해서 수기로 작성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내 것도 적으려고 하기에 난 출근 아니라고 여자친구 데려다 주려 온 거라고 하자, 모두 나한테 로맨틱하단다.

뭐가 로맨틱.

오히려 이 와중에 너무나 느긋하게 또는 태연하게 시스템을 돌려보려고 하는 자네들이 신기하구먼.




心配

: 걱정


지진이 나자마자 걱정하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이후로 정전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다치거나 한 건 아니라서 특별히 가족 외에겐 연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몇 사람은 내가 걱정되는지 먼저 연락해 왔다.

한국에서도 홋카이도 지진 관련해서 꽤 큰 뉴스로 다룬 듯했다.

그러면서 문득 C에게서도 연락이 올까 궁금해졌다.

말 그대로 궁금, 기다려진다는 게 아니다.

한 때, 일 년 중 가장 크게 웃은 순간을 함께했고, 서로의 고민에 대해서 많이 의지했었고, 나로 인해 이곳 삿포로에서 생활도 했었던,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같이 밥 한 끼 먹자는 제안에도 응답하지 않고, 내가 삿포로에 가는 걸 또는 삿포로에 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한 번도 연락해오지 않는 C에게서 연락이 올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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