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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Feb 15. 2019

31 : 週

試験

: 시험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타국의 카페에서 공인중개사 교재를 펴고 있는 사람은 정말 나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서 또 알바나 하기에는 이제 여러 눈치가 보여 준비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공부하다 보면 되겠지 싶었지만, 그동안 꾸준히 하기도 힘들었고, 늦게서야 하루 열 시간씩은 공부하고 있어도,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더 합격할 가망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포기할까도 싶지만, 지금까지 한 게 있어서 그러지는 못하겠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몸을 더 지치게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건 여자친구에 대한 미안함이다.

모처럼 온 워킹홀리데이의 기간의 반 이상을 가망 없는 시험 준비에 지쳐가는 나와 함께 보내야 하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다.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여러 번 싸우기도 했다.

날씨 좋다고 놀러 가고 싶다는 여자친구의 문자 하나에 나도 모르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 적도 있었다.

죄스런 마음으로 보담아 주어야 할 여자친구의 서툰 투정에 난 역정으로 답해 버린 적이 많았다.

오늘도 창가를 바라보는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등 뒤의 여자친구는 침대에서 몇 시간 넘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就職

: 취업


일본 CF 중에 공감이 가서 마음에 들었던 게 있다.

어느 취준생의 이야기가 그 CF의 소재였다.

취준생은 부정적인 상황 중에도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아 다시 힘내서 취업 활동을 해보지만 결국 또 불합격 통지를 받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CF를 처음 본 게 5년여 전은 되는 것 같다.

5년여 전만에도 분명 그 CF처럼 일본은 취업하기가 어려웠었다.

그 시기 삿포로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단적인 예로 술을 즐기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친목을 다지기 보단 개인 역량을 키우는데 보다 치중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때 흔히 들었던 말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술을 잘 못 마신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 당시 고주망태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중년 아저씨들이었다.

그런데 그 뒤 5년여 지난 지금의 삿포로는 그때와 분위기가 좀 다르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홋카이도 대학교 학생들 중 일하면서 숙취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그런 학생들에게 장래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

파일럿이 목표인 어느 학생은 주변에 요즘 자신처럼 확실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한다.

졸업만 하면 어느 정도 취업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기에 젊은 현재의 자신을 충분히 즐기는 분위기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현재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은 오히려 고용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다.




現実

: 현실


한참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는 중에 몇 주 전 다카츠상에게서 들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내가 스토리를 짜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술 취한 중에 흘리듯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당시 내 가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그래, 어차피 가망 없어 보이는 공인중개사 따위 때려치워 버릴까.

정말 다카츠상의 제안이 현실이 된다면.

머릿속에 가득한 지난 오래 시간 수없이 꾸몄던 이야기들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래, 당장 다카츠상을 만나보자!

정말 다카츠상의 제안대로 진행된다면, 과감하게 공인중개사 시험 따윈 때려치우자.

몇 번 고민 끝에 다카츠상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다카츠상은 몸이 좋지 않았다.

만나 줄 수 없다는 거였다.

머릿속에서 보글보글 곧 넘쳐흐를 듯 난리법석이었던 이야기들에 찬물을 끼얹은 듯 들뜬 감정이 촥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공인중개사 교재를 펴고, 펜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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