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멍청

by 남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단 게 땡겨서 과자 코너에 가보니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일본의 빼빼로인 포키였다.

일본 생활 중에 많이 먹었던 과자다.

뭐랄까, 빼빼로랑 비교하자면 좀 더 고소하다.

그 고소함과 초콜릿의 달콤함이 어울러지면 짭짤 매콤한 한식을 먹은 다음 입가심으로 딱이다.

그런데 포키를 마주하고 있던 그 마트엔 주말이라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무척 북적였다.

최근 아베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이은 한국 국민들의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의 분위기를 알고 있던 터라 포키를 집기에 영 눈치가 보였다.

물론 한국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과자를 두고 애국심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그야말로 자존심이다.

결국 포키를 집는 걸 포기하고 그 아래 진열되어 있는 빼빼로를 집으려고 하다 보니, 이런.

빼빼로가 롯데 제품이란 걸 그때서야 알았다.

롯데도 엄연히 일본 상품 불매 운동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회사였다.

결국 빼빼로까지도 포기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일본 사이타마현 출신 짱구가 자주 먹던 초코비가 보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냥 과자 코너에서 벗어났다.

식후 입가심을 위한 과자 하나 이렇게 맘 편히 못 사는 시대라니.


그 순간, 내가 한 때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일까, 문득 안중근 의사가 떠올랐다.

뜬금없지만 정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그보다도 내가 정말 안중근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놓지 않았던 신념 때문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단순히 일본 제국의 리더라 하여 죽인 게 아니라, 그의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당시 일본 제국의 지배층은 서양 제국들의 방식을 따라 식민지 확장에 열의를 뿜고 있었고, 그 결과 얻은 우월감의 달콤함이 마약과도 같이 온몸과 정신을 지배해, 거침없이(또는 무자비하게)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게 쉬운가, 당연히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지.

자신들의 월등함에 순순히 따르는 이들도 있지만, 당연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것이 바로 한 민족의 또는 한 국가의, 한 지역의, 한 가정의, 한 개인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그 자존심을 부드럽게 풀어내기 위해 찌질한 거짓말을 했다.

동북아가 모두 힘을 합쳐야 서양 열강의 힘에 대항할 수 있다고, 그러니 너희 열등한 개돼지들이 어떤 수모와 불평등 업신여김을 당하더라도 나의 계획을 따라 함께 하다 보면, 그 괴로운 자격지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단순히 숭고한 자존심을 열등감으로 둔갑시키기 위한 감언이설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안중근은 그 거짓말을 간파했다.

안중근은 우월감이란 마약에 취해 폭주하는 일제의 혹세무민 행태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 폭주에 수많은 민초들이 희생되어 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안중근이 생각하는 그 수많은 민초들에는 조선의 백성뿐만 아니라 일본의 백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중근은 자신의 동지들을 죽인 일본군 포로들을 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이라 여겨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었고, 죄수의 신분 중에는 자신을 모욕 주고 감시하는 일제의 충실한 교도관에게 미래의 평화로운 교류를 약속하며 감화시켰다.

안중근은 당시 대결구도를 단순히 조선대 일본으로 보지 않았다.

무자비한 권력 대 무고한 민중들로 본 것이다.

그는 죽기 전까지 이토 히로부미의 찌질한 거짓말을 비판하며, 또 그 대안책으로 마련해 두었던 생각들을 풀어내는 데 정해진 생의 마지막 시간을 다 보내었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인물을 역사 속에 기록해 두고도 또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말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머리라도 굴렸지, 멍청한 아베 때문에, 이렇게 무고한 민중 속 내가 먹고 싶은 과자 하나 맘 놓고 못 사 먹게 되다니.

진짜 욕 밖에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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