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행지를 사다리 타기로 결정했다.
먼저 일본의 여덟 지방 중에 뽑힌 곳이 간사이 지방.
두 번째 단계, 간사이 지방 안의 부현 중 뽑힌 곳이 효고현.
효고현의 관할 구역이 아홉으로 나뉘는데 그중 뽑힌 곳이 니시하리마라는 지역이다.
마지막 단계, 니시하리마 지역 중 뽑힌 도시가 아코(赤穂)시다.
02. 아코(赤穂)까지는 우선 고베를 거쳐가야 한다.
도쿄에서 고베까지는 하네다 공항발 비행기를 타고 간다.
그리고 고베부터 전철로 히메지를 거쳐 아코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03. 여자친구는 아코(赤穂)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여행지가 어딘지 몰랐다.
MBTI분류로 따지면 난 P다.
여자친구가 J다.
여자친구는 보통 여행 가기 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여행 일주일 전쯤 되면 여행지 날씨를 체크하며, 호텔을 취소할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을 고민한다.
이번 아코 여행은 내 스타일로 가기로 한 여행이라, 당일까지 스트레스를 확실히 덜 받았다.
내가 비행기랑 호텔 다 예약했다.
여행 첫날이 되어서야 비행기 티켓 예약번호나 호텔 가격 등을 다시 확인했다.
04. 아코(赤穂)시에 대해 알아보니, 관광할 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다.
숙박은 좋은 데서 하자는 생각으로, 호텔을 오션뷰의 나름 비싼 곳으로 예약했다.
석식과 조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텔 석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어서, 괜찮을지 걱정이었는데, 대만족이었다.
2박하는 동안 같은 메뉴가 나오면 어쩌나 싶어, 둘째 날은 코스 등급을 높여볼까 고민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코스가 같은 등급이어도 날마다 나오는 메뉴가 달랐다.
05. 딱 10년 전 여름, 일본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
그때 우연히 들른 신사의 모습이 특이해서 잠시 머물다 간 적이 있다.
각종 무기를 든 수십의 동상들이 신사 대문 앞에 줄지어 있었는데, 그때는 이 마을을 지켜낸 전쟁 영웅들일까, 근거 없이 상상했다.
그때 그곳이 아코(赤穂)시의 아오이신사(大石神社)였다.
동상들은 에도시대 때 일어난 "아코사건"의 주인공들인 47 로닌(낭인)들이었다.
47 로닌, 예전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일본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아코사건"이 영화의 모티브다.
47 로닌은 자신들이 모시던 아코의 영주가 억울하게 죽게 되자, 그 복수를 위해 치밀한 계획하에 도쿄에서 학살극을 벌이고, 그 죄로 결국 각자 할복하게 되는 자들이다.
가부키로도 만들어져서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이야기 인듯하다.
06. 9월 중순인데도 너무 덥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날씨가 시원해질 줄 알았다.
시원한 가을 날씨에 휴가를 쓰고 싶었던 건데, 실패다.
07. 히메지 성, 10년 전에 왔을 때는 보수 중이었다.
성 외곽에 컨테이너 박스처럼 벽을 쳐 뒀었다.
딱 10년 만에 다시 왔다.
그때는 입장료 낼 돈도 없어서, 주변을 서성이다가만 갔었는데, 이번에는 성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보고 간다.
08. 비자를 갱신했다.
난 5년, 여자친구는 3년.
09. 사귄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여자친구의 아버님과 만났다.
아버님이 사업차 도쿄에 1박 일정으로 왔다 가셨다.
나름 일본 생활도 안정되어 가고, 이젠 인사드려도 되겠다 싶었을까.
큰 관문 하나 넘어섰다.
10. 퇴근길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길에 떨어뜨린 것 같은데, 비 오는 밤이라 찾기 힘들었다.
경찰서에 분실물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해 두면 찾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은 가지지 않았다.
카드도 재발급 신청하고, 갱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재류카드는 어떻게 받을 수 있나, 알아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유심히 출근길을 둘러보면서 가는데, 횡단보도 뒤편 화단에 밤새 비 맞아 딱 봐도 눅눅해져 보이는 지갑이 떡하니 있었다.
안에 돈이나 카드 등 그대로였다.
누가 화단에 툭 던져 놓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