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아들들에게 보내는 못난 아비의 편지

4. 어른이 된다 것

by 배용현

4-2 더불어 서기


앞서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덕목으로 주체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주체성과 독립심이 강할 경우 자칫하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으로 비칠 수 있으며,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을 수도 있다. 그와 반대로 주체성이 부족하면 자존감이 낮아 항상 남의 눈치를 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철부지가 되기 마련이다.

너희가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에는 무언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울 떼쓰기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들었다. 한 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너희 엄마나 내가 아무리 달래고 설명을 해줘도 소용이 없었는데 이것은 너희 성격이 특별히 사납거나 고집이 세서가 아니라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나 자세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릴 적이야 부모의 품이 세상의 전부지만 더 자라고 성인이 되면 사회 또는 공동체라고 하는 더 큰 세상에 놓이게 되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행동을 계속한다면 안하무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주체성에는 반드시 책임감이 따르며, 항상 귀를 활짝 열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어른으로서 갖추어야 할 두 번째 덕목은 관용과 포용이다.

관용과 포용은 타인을 배려하고 품어주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장미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장미의 가시마저 존중해야 한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관용과 포용의 대상에는 피아의 구분이 있을 수 없기에 내가 싫어하거나 배타적인 상대도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품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의견 대립 정도의 사안이라면 토론과 숙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만약 경제적 이익이나 한발 더 나아가 명분이나 신념에 관한 사안이라면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서구적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 결과 6.25전쟁 직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는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개인주의의 팽배와 사회적 갈등이다.

농경 중심의 전근대 사회는 개인과 개인 그리고 집단과 집단 간의 상부상조 역량에 따라 농업 생산량이 좌우되었으며, 절대왕권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계급사회를 정당화한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해 왔기에 우리 전통 사회는 수천 년간 집단주의적 성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분업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근대적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개인의 능력과 가치 그리고 이익이 우선시 되는 개인주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Image by Fajar Arif from Pixabay

이와 함께 개인의 자유와 행복 실현을 기본 가치로 내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견인했는데 이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외면했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사회적 갈등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갈등은 부의 분배를 둘러싼 계층 갈등, 노년과 청년 사이의 세대 갈등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의 젠더 갈등,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갈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의 공통점은 경제적, 사회적 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피해의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으며, 자신은 정당화하고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극단적인 대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온라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자극적인 콘텐츠로 가공되어 무차별적으로 공유되는가 하면, 상업적 이용이나 개인의 명성(또는 이익)을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개개인의 삶이나 행동,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며, 이는 어쩌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도덕적으로 진화해 온 인간이기에 옳고 그름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었으며, 극단적 대립을 넘어 관용과 포용을 통해 갈등을 조율하고 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등과 대립을 경험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너희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당당히 맞서기를 바란다. 다만, 나만이 옳다는 자만을 버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열린 마음으로 설득하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태도임을 잊지 말거라.

『논어』 옹야편에는 知者樂水(지자요수)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유연하고 막힘이 없어, 사물의 이치에 밝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이니 항상 관용과 포용의 덕을 갖춘 지혜롭고 아량이 넓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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