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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푼젤 Jan 15. 2022

회계사라고? 그래서 얼마나 벌어?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그것, 회계사의 연봉


회계법인 재직 당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당연하게도 '연봉'이었다. 우리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 '자기만족'과 '자아실현' 등 수많은 이유를 갖다 붙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직업 만족도를 결정하는 부차적인 요소들일뿐, '돈'을 빼놓고 어떤 직업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네이버에서 회계사를 검색하면 '회계사 연봉'이 두 번째로 뜬다.


처음 내가 이 시험을 준비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전문직이라니 꽤나 안정적일 것 같고, 연봉도 높을 것 같고, 또 '돈'을 다루는 직업이니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것 같았다. 일찍부터 다양한 알바와 사회경험을 해왔기에 세상을 조금 빨리 알았던(?) 나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같은 것도, '직업'에 대한 로망도 애당초 없었다. 적성이야 만들면 되고, 어차피 직업으로 가지면 좋았던 일도 싫어지기 마련이니까.


해보고 싶은 것이 원체 많았다. 과외는 물론이거니와 학원에서의 첨삭 알바, 대학 진로 상담 알바, 호텔 알바, 판촉행사 알바, 쇼핑몰 관리, 액세서리 피팅모델, 텔레마케팅 등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연극도 했고,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5개의 동아리와 셀 수 없이 많은 대외활동과 봉사활동을 했다. 크게 싫은 일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 내 일이다'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 신문 귀퉁이에서 우연히 본 <직업별 연봉 순위표>가 내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다. 그 연봉 순위표에서, '회계사'는 무려 3위에 올라있었다. 사실 범주와 기준에 따라 연봉 순위라는 것 자체가 늘 뒤죽박죽이지만, 회계사가 10위 권 안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흔하진 않은데... 내가 본 그 연봉 순위표는 대체 무슨 기준이었던 건지, 하필(?) 3위에 올라있었던 거다. 이걸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입사 후 첫 월급명세서를 받고 나는 큰 실망을 했다. 이것저것 다 떼고 나니 세후로 280만 원 정도 됐다.(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고, 아래 서술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가장 바쁜 시기인 12월에 입사하여 가혹한 야근과 출장을 견디고, 모든 주말을 반납한 후 받은 명세서다 보니 배신감은 더 컸다. 동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할 정도였다.


전문직의 자부심은 연봉에서 나온다.


2년 차쯤이었나, 선임 회계사님이 해주신 말이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보람 있어도 업무량과 스트레스, 내가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합당하지 않다면, 그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전문적인 일' 자체가 주는 자부심도 있지만, 결국 전문직의 어깨를 활짝 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높은 연봉이다. 합당한 보상이 없다면, 전문직이라는 타이틀도 결국 허울 좋은 껍데기일 수밖에 없다.


시즌이 끝나면 많은 동기들이 법인에 불만을 품은 채 퇴사를 하고, 이직을 했다. 나 역시 회계법인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었으나 연봉에 대한 불만은 늘 있었다. 증권사나 은행,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을래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S전자, H자동차에 다니는 친구들의 화려한 PS(성과 인센티브) 소식을 들으면, 회계사 괜히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전문직이라 돈 많이 버니 밥 사라고 성화인데, 허세 가득한 어린 마음에 내 연봉을 솔직하게 까는 건 왠지 싫었다.


다행히도 내가 5년 차쯤부터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법인 핵심인력인 3~5년 차의 높은 퇴사율로 인해 4대 법인들이 점차 연봉을 높여나갔다. 퇴사 시점(7년 차) 기준으로 성과급(우리 부서는 성과급이 다른 부서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과 각종 수당들을 영끌하면, 연봉이 1억 쯤 됐다. 그 당시 내 나이가 29살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연봉이었다.


참고로 회계사들은 1년에 한 번 성과급을 받는다. 조직 내에서 실시한 성과평가를 통해 등급이 나뉘고, 그 등급에 따라 성과급이 결정된다. 평균적으로는 월급의 2~400% 정도가 성과급으로 책정이 되는데, 부서나 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성과급이 예상보다 적게 나오면 퇴사 러시가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6년 차 때 딱 한번 부서 내 1명에게만 주는 최고 등급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월급여의 600% 정도 되는 성과급을 한 번에 받았다. 여러 가지로 고생을 많이 했던 해였는데, 정말 회계사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금융 치료가 최고야...

13년도쯤이었나..? 삼*회계법인에서 성과급을 일괄 100만 원으로 책정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 성과급만 바라보며 가혹한 시즌을 견뎌낸 사람들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처사. 많은 퇴사자가 나왔고, 당시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퇴사한 이후에는 일부 지정감사제를 포함한 외감법 개정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회계사의 연봉 수준과 워라밸이 더 개선됐다. 법인마다 팀마다 차이가 있지만, 4대 회계법인 기준 현재 초봉은 성과급 포함 6~7천 정도(기본급 5천 중후반), 3년 차에 보통 8천 ~ 1억(법인/팀 별 성과급 차이가 꽤 크다), 5년 차엔 1억 ~ 1억 2천, 6년 차엔 1억 2천 ~ 1억 3천 정도가 된다고 알고 있다. 

회계사의 몸값이 가장 높은 시즌에는 단기계약직도 많이 쓴다. 4~5년 차 정도면 단기계약으로 월 1,000만 원 이상 받기도 하니, 감사기간 3-4개월만 빡세게 일하면 웬만한 직장인의 1년 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일도 정말 1년 치를 해야 하지만...) 나도 회계법인을 그만둔 후 회계법인에서 알바를 몇 번 했었는데, 보통 업무 강도에 따라 하루 50만 원 ~ 100만 원 정도의 일당을 받는다.

2022년 9월의 업데이트: 이사 직급은 요새 대략 기본급은 1.2억, 성과급은 2-4천 정도라고 함(법인/부서 별로 차이 있음)

 

물론 지금의 연봉도 일부 금융사나 성과급이 높은 몇몇 대기업들과 비교하면 크게 높지 않은 연봉일 수 있고, 가혹한 업무강도로 인해 회계법인의 연봉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회계사들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내가 적은 것은 4대 회계법인에 다니는 저 연차 회계사들의 연봉일 뿐 결국 중요한 것은 회계법인에 남든, 회계법인을 떠나든 5~7년 차 이후의 삶과 연봉이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전문직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10년 차가 된 지금 동기들이나 선후배 회계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가 1년 차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만큼 다양한 연봉을 받으며, 다양한 길을 걷고 있다. 법인에 남아 파트너 진급을 노리고 있는 동기들도 있고, 개업을 해서 아주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잘 나가는 대형 PE나 글로벌 컨설팅 펌 등으로 이직해 3억 + α의 연봉을 받는 동기들도 있고, 스타트업의 상장을 성공시켜 스톡옵션으로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번 회계사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파트너의 기본급은 2억 + α로 알려져 있다. 이직 후 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내 눈엔 대형 회계법인의 파트너가 회계사가 갈 수 있는 길 중 가장 간지(?)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는 길이 너무도 험난하고 그 문이 좁지만... 파트너가 돼도 지분율 등에 따라 보수가 천차만별인데, 참고로 국내 최대 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대표이사는 지난해 21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국내 최대 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22년 6월 말 기준 사업보고서에 공개된 파트너 연봉. 226명의 파트너 중 연봉이 5억 이상인 파트너는 총 57명이다. *2021년앤 36명이었음
22년 3월말 사업보고서 기준 삼정회계법인의 연봉 5억 이상 임원은 51명이다.


그에 반해 큰 욕심 없이 작은 회계사무소를 열어 나름의 워라밸을 지키며 사는 동기들도 있고(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영업이 잘 안 돼서 그렇게 된 경우 포함), 일반 기업의 회계팀이나 사업전략팀, 내부감사팀 등으로 이직해 보통의 직장인과 비슷한 삶을 사는 동기들도 많다. 일찍이 공기업 입사를 준비해 그쪽으로 방향을 튼 이들도 있고,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의 삶을 살거나 회계사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회계사는 직업 특성상 부서 이동과 이직이 매우 활발하다. 감사부서 기준으로 동기가 총 30명이었는데, 그중 지금 감사부서엔 4명이 남아있다. 회계법인의 생활이 고돼서 이직률이 높은 것도 맞지만, 그만큼 회계사들이 갈 곳이 참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삶이 더 낫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뻔한 이야기지만, 높은 연봉이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무조건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성공적인 이직 후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다 건강 상의 이유로 퇴사하는 사람들도 많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으로 이직을 했다가 자신과는 맞지 않다며 다시 회계법인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조차도 회계사로서 사는 긴 인생의 한 단면을 잘라서 본 것뿐, 5년 뒤엔 어떤 모습일지 10년 뒤의 상황이 어떨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회계사의 가장 큰 강점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스펙트럼이 다른 직업들에 비해 굉장히 넓다는 것, 본인의 노력으로 그 선택지를 더 넓힐 수도 좁힐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든 회계법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 4년 전 회계법인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 '회계사'라는 자격증이 내게 준 가장 큰 가치는 높은 연봉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다양성'이었다. 법인을 떠난 후 나는 여전히 여러 가지 삶을 기웃거리며 방황하고 있는 중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많은 선택지가 있음에 늘 감사하다.


꼭 자격증이 나오는 전문직이 아니더라도 본인만이 가지는 전문 기술, 전문적인 능력이 있다면,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를 떠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보다 든든한 무기는 없을 것이다. 회계사라는 자격은 단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제가 회계사니까 (제 자부심을 위해) 좋은 말도 많이 쓴 것 같아요. 이 글이 회계사 시험을 준비해 볼까? 고민하고 있거나, 이미 공부하고 있는, 혹은 시험공부가 힘들어 포기를 고민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회시생 여러분들 파이팅!!


추가로, 제가 현업에 있지 않다 보니 현재의 연봉 정보는 모두 법인에 있는 지인들/ 친한 전무님 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기초해서 썼습니다. 혹 현업에 계신 분들이 보시기에, 실제와 다르다 여겨지는 내용이 있으면, 욕하지 마시고 댓글 등으로 제게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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