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서점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서평

by 책 읽는 라푼젤


골프장에 갈 때나, 퇴근 시간 즈음 약속에 가야 할 땐 차에서 1시간 이상 꽤 긴 시간을 운전하며 보내곤 한다. 보통은 가볍게 라디오를 듣거나 음악을 듣지만,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나는 가끔 그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 유튜브에서 영어문장을 듣거나 어플을 통해 듣기 연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전도 싫은데 영어 듣기 연습까지 하면 운전하는 시간이 더욱 지루하게 느껴져, 보람차면서도 운전하는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이었다.


그때 만난 것이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이다. 사실 보통의 독서 시간에는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 게 훨씬 집중도 잘 되고, 이해도도 높고, 속도도 빠르기에 오디오북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운전을 할 때는 눈과 손발이 묶여 있으니, 자유로운 것은 두 귀뿐이 아닌가.


내가 첫 오디오북으로 선택한 책은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였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철학적인 책이나, 한 문장도 놓쳐서는 안 되는 추리소설 류는 운전 중 위험할 수 있기에, 최대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다. 단거리 운전 때는 어플을 켜고 세팅하는 것도 이래저래 번거로워 30~40분 이상의 거리를 운전해야 할 때만 듣기로 했고, 평소 유튜브를 보거나 강의를 들을 때도 2배속이 기본 값인지라 오디오북도 1.6~1.8배속으로 맞췄다. 총 10시간 분량이었고, 매일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다 읽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서평이라고 해놓고 오디오북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구구절절한 것 같지만, 장시간 운전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오디오북은 꽤 추천할 만한 서비스인 것 같다. 9월에는 어떤 책을 들어볼지 고민 중이다.


이 책은 오디오북으로 듣기에 아주 적합한 책이다. 심오하지도 어렵지도 않고, 잔잔하고 따뜻하다. 예상 가능한 전개대로 굴곡 없이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묘하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묘하게 영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박한 세상에 상처를 받아 방황하는 인물들이지만, 따뜻하고 (어쩌면 지나치게) 용감하다. 일만 미친 듯이 하며 승승장구하다 돌연 삶의 의욕을 잃고 이혼 후 책방을 연 카페 사장 영주. 명문대를 나왔지만 계속해서 취업이 되지 않아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한 후 운둔 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민준. 사는 게 재미없어 방황하다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 고등학생 민철. 계약직으로 뼈 빠지게 일했지만, 결국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퇴사 후 휴남동 서점에서 하루 종일 명상과 뜨개질을 하고 있는 정서.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요즘의 힐링 도서, 힐링 드라마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다. 팍팍한 현실에 비해 밝고 용감하고 또 무모한 인물들. 게다가 서점 주인 영주는 경제관념이 전혀 없는 사장이다. 그녀는 주 5일 근무를 위해 사람들이 책방을 가장 많이 찾는 요일인 '일요일'에 과감하게 서점 문을 닫아버리고, 2년 동안 서점을 운영한 후에는 힐링을 하겠다며 돌연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가게 영업을 맡기고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떠난다. 오픈하자마자 뽑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월급은 보장하겠다며 시급 12,000원을 제시하는데, 심지어 그 아르바이트생은 전문 바리스타도 아니고 서점 일은 돕지 않고 오직 커피만 내리는 것이 그의 업무이다.


나는 이 소설을 듣는 내내 '저건 지나치게 이상적이야. 저건 말이 안 돼.'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모든 가게들이 휴남동 서점처럼 따뜻한 공간이길, 그리고 내 주변에도 저 책의 등장인물들처럼 진실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상적'이라는 단어는 '현실적'이라는 단어의 반의어이기 이전에, 우리가 꿈꾸고 추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휴남동 서점의 이야기가 이상적이지만은 않은 그런 세상을 나도 작가도, 사실 우리 모두 꿈꾸고 있으리라. 어쩌면 작가는 본인이 살고 싶은 삶, 본인이 꿈꾸는 따뜻한 세상을 이 소설에 투영시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삶이 너무 각박하다 보니 책도, 드라마도 '슬로 콘텐츠'가 유행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휴남동 서점>,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같이 알록달록 예쁜 표지의 엇비슷한 책들이 많이 눈에 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일관되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째서 자꾸 이런 책들을 골라 읽고 있는 걸까? 가끔은 깊은 생각 없이 가볍게 책장을 넘기는 자체가 힐링이 되곤 한다. 이 책 역시 강변북로 위의 고단한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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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며, 가끔 좋은 구절이 들리면 음성 메모를 남겨뒀다. 듣고 기억나는 대로 음성 메모를 쓴 거라 정확한 문장은 아닐 수 있지만, 인상 깊었던 구절을 몇 개 소개하려고 한다.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게 바로 이거잖아!!'를 외쳤던 구절들이다.


# 기억에 집착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몸에 남는다. 혹은 기억 너머에 남는다. 기억 너머에 남아 있던 책에 대한 기억이 후에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도움을 준다.


# 책을 읽으면 성공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고 더 강해진다. 하지만 때로는 더 괴로워지기도 한다. 책을 통해 경험해보지 못했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며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 이것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더 나은 세상이 된다고 믿는 이유이다. 책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빨리 좋아질 것이다


# 말을 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편한 사람이 좋다.


# 처음 사는 삶이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그래서 앞날이 걱정되고 불안한 거야.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지, 잘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지 우선 무엇이든 시작해보고 결정해.


#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다른 무언가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다. 승우는 5년간 좋아하는 일을 했지만 매일 야근으로 피폐해져 갔고, 좋아하지 않는 일로 부서 이동을 신청한 후에는 여유 시간 동안 취미생활 개발을 통해 더욱 행복해졌다. 어떤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잃어간다고 느낀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소중한 삶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이리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삶은 미묘하고도 복합적이다. 작은 경험들을 계속 정성스럽게 쌓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쓴 글이 제대로 잘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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