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서평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들 하지만, 이 책은 내게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되었다. 사실 초반부엔 1편에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과한 설정과 디즈니 만화스럽게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다소 유치하다 느껴졌다.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겠다 싶어 그냥 2편은 읽지 말고 1편에서 끝낼까 살짝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또 어느새 페니와 달러구트가 살고 있는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들어 꿈을 꾸듯 허우적대고 있더라.
1편에서는 이 책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특징을 파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2편에서는 이미 이 책의 세계관이 어느 정도 정립이 되어 있는 상태라 좀 더 개별적인 에피소드에 집중하기가 쉬웠다. 작가가 세계관을 꽤나 촘촘하고 디테일하게 짜둔 탓에 1편을 읽을 때는 중간중간 앞부분의 내용을 뒤적이느라 멈칫거린 적이 많았으나 2편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언뜻 유치하고 뻔한 듯 하지만 그래도 늘 반가운 엄마의 손길처럼,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악역은 없다. 현실에 지쳐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라 여기게 된 사람들, 장애가 있어 꿈에서나마 달리고 싶어 하는 꿈 제작자, 꿈마저 빼앗기게 될까 봐 잠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각장애인, 우울에 잠식돼 하루 종일 우두커니 잠만 자느라 현실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애쓰는 제작자들과 달러구트 백화점 직원들이 있을 뿐이다.
꿈을 꾸는 사람들이 대가로 지불하는 다양한 '감정', 그 감정마다 매겨지는 시세와 쓰임, 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기자기한 재료들, 낮잠에 빠진 사람을 깨워주는 '확 넘어가는 무게중심', 30가지 감정을 넣은 눈송이 아이스크림, 죄책감을 주는 포춘쿠키, 주마등(망자들의 추억 결정), 우울한 사람들이 쉬어가는 녹틸루카 세탁소, 그리고 그 세탁소 동굴을 환히 비춰주는 추억 결정들의 빛.
''꿈'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쩜 이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어쩜 이런 귀여운 상상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자주 했다.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법한 사소한 호기심들과 평범한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를 이렇게 맛깔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힐링 동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오늘만큼은 기분 좋은 꿈을 꿀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꿈에서 깬 현실은 비록 동화 같지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때때로 동화 같은 위로가 필요하다.
# 꿈도 기억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날의 기억이 많아질수록 꿈에서도 볼 수 없게 된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에 예외가 있길 바랐다.
# 나는 언제든지 해안가로 돌아갈 수 있는 범고래였다. 원래 내가 있어야 할 세상에서 이렇게나 열심히 헤엄치고 있다는 걸 그리운 해안가의 사람들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지난 20년 동안 나의 세상은 깊고 넓어졌고, 나는 밤마다 돌아갈 수 있는 너른 해변을 가지고 있었다.
# 그는 자신을 껐다 켜는 것처럼 잠들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잠드는 건 쉽고, 일어나는 데는 의지가 필요했다. 무기력은 어느새 그의 힘만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남자는 우울에 잠식될까 두려워 우울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 숲에 이유 없이 겨울이 찾아오듯 때로는 내 잘못이 아니어도 고통은 오고 가지요. 첫겨울에는 누구도 모를 수밖에요. 그러니 다들 이곳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을 너무 안타까워 마십시오.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평안에 다다를 겁니다.
# 언제나 인생은 99.9%의 일상과 0.1%의 낯선 순간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기대되는 일이 없다고 슬퍼하기엔 99.9%의 일상이 너무도 소중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도, 매일 먹는 끼니와 매일 보는 얼굴도.
# 어떤 기억도 추억이 되고 나니 사소한 기쁨과 슬픔 따위는 경계가 흐릿해지고,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 지금의 행복에 충실하기 위해 현재를 살고, 아직 만나지 못한 행복을 위해 미래를 기대해야 하며,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행복을 위해 과거를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단다. 세 제자가 세 명의 각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시절에 따라 변하는 사람의 세 가지 모습이 아닐까 하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내 시간이 오롯이 존재하기에 시간의 신은 나 자신이다'라고 생각하면 내가 나인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니?
# 손님들도 우리도 전부 마찬가지야.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갈 때도 있고, 과거에 연연하게 될 때가 있고, 앞만 보며 달려 나갈 때도 있지. 다들 그런 때가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기다려야 한단다. 사람들이 지금 꿈을 꾸러 오지 않더라도, 살다 보면 꿈이 필요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거든.
# 추억을 만든 것은 과거의 손님 '본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꿈의 제작자는 손님이지요. 우리는 모두 그 어떤 제작자보다 훌륭한 꿈 제작자예요. 제작하는 사람도 판매하는 사람도 매일을 살아가는 당신 없이는 훌륭한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