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는 라푼젤 Oct 18. 2022

모든 완전한 것은 위태롭다.

정유정 <완전한 행복> 서평

(*) 스포주의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이 책은 결함 없이 완벽한 행복을 추구하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고 견고하게 유지해낼 수 있으리라는 오만에 차 있는 주인공 유나. 하지만 세상 모든 존재는 무결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기에 그녀가 추구하는 '완전한' 행복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은 작은 틈에 불어 든 여린 바람에도 언제고 무너져버릴 모래성과 같아서, 유나는 아마 늘 불안했을 것이고, 단 한순간도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나는 본인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덜어내 버리면 그만, 거슬리는 것은 깨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덜어내고 빼내버린 후 그녀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그녀는 스스로를 굉장히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이라 착각한 것 같지만, 글쎄.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좇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사실 책 자체로만 놓고 보자면 <완전한 행복>은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흡입력이 좋은 책이었다. 술술 읽히는 편한 문체와 뒷 내용이 궁금해 안달 나게 만드는 쫀득한 전개 덕에 새벽녘까지 잠 못 들고 이틀 만에 책을 다 읽어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는 2년 전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유정'이라는 인물이 떠올라 너무도 불편했다. 작가는 단순히 고유정 사건이 이 소설을 태동하게 만든 '배아' 역할이었을 뿐이라 말했지만, 고유정과 유나는 성격부터 가족관계까지 너무도 많이 닮아있었다.


1. 고유정과 유나는 두 번의 결혼을 했고, 본인의 친자식 1명과 의붓아들 1명이 있었다.

2. 이혼 후 전 남편(준영)에게 오랫동안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고, 아이와의 여행을 핑계로 전남편을 유인하여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살해 방식과 시체 처리방법, 그리고 그 끔찍한 살해 현장에 아이가 있었다는 점 마저 동일하다.

3. 의붓아들(노아)이 잠을 자던 도중 자신의 친 아버지(고유정의 두 번째 남편인 은호)에게 깔려 질식사하였다. 은호의 머리카락에서는 수면유도제가 검출되었다. 

4. 고유정(유나)의 아이는 친정에서, 의붓아들은 친가에서 각자 조부모가 돌봐왔고, 의붓아들이 살해되기 전 두 아이를 모두 데려와 함께 키우기로 했었다. 고유정(유나)은 친 자식의 성씨 문제(개명)에 매우 집착해왔다.

5. 고유정(유나)은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었고, 재직 도중 재정적 문제를 일으켰었다.


대략적으로 생각나는 것만 적었는데도 이 정도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고유정이 대학시절 만났던 남자 친구가 실종되었다는 루머(실제로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음)까지 이 소설에서는 진짜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극화된 허구의 내용인지 알 수 없어 나무위키와 각종 기사들을 계속 뒤적거려야 했다. 솔직히 지금도 실제 사건의 내용과 소설의 내용이 뒤엉켜 무엇이 소설 속 내용이었는지 헷갈릴 정도다. 이 책이 또 다른 루머를 양산하거나 그로 인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고유정의 살인 방식은 너무도 끔찍해 세세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톱을 비롯한 각종 흉기를 구입하였다는 점, 감자탕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는 점, 배에서 시체를 유기한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매우 엽기적인 방식으로 시체를 손괴하고 유기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전적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였던지라 극 초반 유나가 되강오리 먹이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구역질이 나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물론 실제로 고유정은 되강오리를 키우지 않았고, 그런 먹이를 만든 적도 없다. 작가가 굳이 되강오리의 먹이를 만드는 법을 힘주어 설명한 것은 아마도 후에 나오는 시체 처리 방식을 암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스릴러 소설에서 잔인한 묘사가 나오는 것이 뭐가 문제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유가족이 읽는다면? 과연 이 부분을 읽어낼 수 있을까. 


지유는 죄가 없다. 그리고 현실에도 지유가 있다. 지유가 본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재인으로 자랄지 결국 유나가 되어버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녀)가,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고통받고 있을 유가족과 고유정의 가족들이 이 책을 접하며 자책하거나 다시금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특히 많은 이들에게 읽힐만한 베스트셀러를 쓰는 작가에게는 응당 그에 따른 책임감이 필요하다. 특히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나 영화는 실제 사건으로 인해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을 수 있기에, 피해자들을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일이기에 내용을 다루는 데 있어 더욱 세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작가가 이 글을 쓸 때 어떠한 고민을 했을지가 궁금했다. 작가에게 고유정 사건은 작가의 상상력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소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까? 작가는 또 다른 피해자인 고유정의 두 번째 남편이 자신의 소설 속 차은호처럼  제주도로 내려가 정신병을 앓으며 죽어가길 바라는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거나 한낱 흥밋거리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2022년 10월 19일, 여덟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MBK

(1)  주인공 신유나는 ‘행복’을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뺄셈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근래 느꼈던 소소한 행복 or 감사한 순간을 하나씩 이야기 해봐요.


(2)  가장 인상 깊거나, 소름 돋았던 장면이 있었으면 말씀해주세요.


(3)  나르시스트인 주인공 신유나가 타인의 행복과 삶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 희생되고 파괴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삶에서 경험해봤던 가스라이팅이 있었는지, 혹은 그러한 것을 피하거나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 해봐요.


(4) 책 표지에 그려진 3명의 사람은 모자로 얼굴이 가려져 있고 남자는 검정장화, 아이는 노란 장화, 여자는 파란 장화를 신고 있다. 스토리에서도 색을 표현하는 구절들이 많았다. 특히 주인공 신유나는 파란색으로 표현되었다. 이렇게 파란색으로 신유나를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 해봐요.
(Ex)
- p.120 찻잔 세 개, 어머니에게는 노란 컵 차은호는 빨간 컵, 아내는 파란 컵
- p.157 유나의 시골집 방에 있은 파란 지붕 옷장
- p.204 신유나가 신고 있는 파란 장화
- p.261 신유나를 찾아온 경찰 -> 파란 재킷
- p.284 식탁에 장미 세 송이가 꽂힌 파란 꽃병
- p.304 아버지의 환갑기념 사진에 파란 풍선을 쥔 신유나


(5) 누구나 삶에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언니 신재인은 아버지에게 착한 딸이 되기 위해 꽃노래에서 벗어나지 못 했었고, 딸 지유는 엄마한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주인공 신유나는 믿었던 할아버지한테 배신감을 느끼고 자신을 버려지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한다. 우리도 버려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경험이 있었는지, 있다면 이야기 해주세요.


(6)  이 책은 우리가 아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그 사건과 관련하여 가해자든 피해자든 다 살아있기에 누군가에게는 정말 읽기 힘든 소설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플롯/인물/배경 등 다른 요소는 소설적 허구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불호가 확실한 책일 것이다. 여러분은 이 책을 지인들에게 추천 또는 비추천 할지? 그에 대한 이유와 함께 이야기 해봐요.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에겐 일상, 누군가에겐 이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