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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May 09. 2022

Take it sleazy!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서평

(*) 스포주의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시한부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다만 그 카운트다운 시계의 설정값을 알 수 없을 뿐.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이었나, 어쩌다 내가 '죽음'이라는 개념을 처음 맞닥뜨리게 되었는지 그 계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밤 중에 혼자 침대에 누워 꽤나 끔찍한 상상들을 했던 것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지금 부엌으로 나가 칼로 내 가슴을 찌르면 어떻게 될까?' 초등학생이 하기엔 무척이나 섬뜩한 그 상상으로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었다. 내가 죽으면 이 모든 세계도 끝나는 것이 아닐까? 죽음 이후의 세상이 너무도 궁금해 한번 죽어봐야겠다는 무시무시한 결심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 결심은 금세 잊혔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혹은 호기심은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와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요즘도 종종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선 한참을 괴로워하다 애써 그것을 외면하며 다른 생각으로 나의 관심을 옮겨놓곤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 책의 저자인 폴은 신경외과 의사로서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본인의 죽음은 예상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1부에서의 그는 내내 (다른 사람의) 죽음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싸움 대신 오히려 그것을 담대하게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폴은 마지막까지도 왜 그렇게 본인의 몸을 혹사시켰을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왜 그는 수술실로 향했을까. 나는 그가 쉬기를 바랐다. 조금 더 본인의 몸을 돌보기 바랐다. 그랬더라면 혹시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심지어 환자에게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직접 수술을 감행했을 땐 그에게 경멸에 가까운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다만 몇 년의 시간이 남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가족과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그간 하지 못했던 일을 하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폴은 달랐다. 그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것이고,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다 말했다. 그리고 폴은 아스러져 가는 몸을 붙잡고 꾸역꾸역 수술실로 향했다.


책 전반에서 폴은 꾸준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면 죽음이 낫다.'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언어적 능력을 상실한 환자를 꽤 자세하게 묘사했는데, 더 이상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세상과 고립되어 버린 환자를 보면서 나 역시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정신이 불구가 되는 것과 몸이 불구가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끔찍한 일일까? 이것의 경중을 따지는 것조차 비도덕적으로 느껴지지만, 아마도 폴은 정신이 불구가 되는 것을 더 끔찍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폴에게 있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의사로서의 사명'과 '계속하여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정신적 의지'였다. 폴은 단 하루를 살아도 의사로서, 그것도 아주 치열한 의사로서 살기를 원했다. 그의 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과 마주한 채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지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처럼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택하였다. 그것이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본인이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Take it sleazy!


나의 인생 드라마인 <굿 플레이스>의 마지막 대사이자 드라마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다. 비에 머리를 흠뻑 적신다거나, 마주오는 사람과 계속 같은 방향으로 피하다 멋쩍은 미소를 짓는 일 등 아주 사소하고 인간적인(?) 일상을 즐겨보는 것이 꿈이었던 천상계의 '악마'가 마침내 인간이 된 후 이 대사를 던진다. 인간이 된 악마가 'take it easy'의 발음을 실수한 것이든 '천하게 지내라'는 뜻이든 이 대사는 폴의 치열한 인생과는 정반대 되는 대사인데, 어쩐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이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문학과 철학, 과학 등 많은 분야에서 뛰어났고, 또 의사로서의 능력치도 완벽에 가까웠던 그는 척추암을 진단받은 후에도 본인의 고통을 이겨내며 수술실에 들어가는 초인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에 경외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그도 그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신처럼' 매일 다른 사람의 죽음을 관장했던 그도 막상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거나 그것을 대비해 본 적은 없었다. 죽음 앞에 그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남은 가족을 걱정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나약해졌고, 때론 무너졌다. 


모두가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아니 '그 누구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죽음의 시기를 예상하거나 계획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폴의 삶은 완벽했나? 글쎄. 그는 계획한 것들을 하나도 이루지 못했고,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는커녕 레지던트 과정조차 정상적으로 마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시계가 멈추는 순간, 지나온 날들을 뼈저리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글을 썼고, 사명감을 가진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었다. 


우리는 폴을 보며 대단하다 멋지다 칭송하지만, 폴에게는 그저 그것이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모두가 폴이 될 수도, 폴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을, 자신의 기준에 맞는 아름다운 삶을 묵묵히 살아내면 그만이다. 언제 느닷없이 시계가 멈출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척추암 판정을 받은 폴이나 지금의 우리나 다를 바 없다. 우리 모두 '알 수 없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동안'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마치 시한부가 된 것처럼 죽음을 한쪽 가슴에 품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4개의 시즌으로 이루어진 <굿 플레이스>의 마지막 시즌은 지옥과 현생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후 결국 천국으로 가게 된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천국의 모습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곳에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갖추어져 있었으나, 모두가 생기 없이 지루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의 문제는 다름 아닌 '끝없이 무한한' 삶이었고, 영생의 삶은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까웠다. 그것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이윽고 하나 둘 스스로 '소멸'을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나치게 높은 도덕적 기준과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단 '조금은 천박하게, 조금은 모자라게 살아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며 살아야 할까? 여전히 나는 죽음과 끝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무섭다. 하지만 죽음이 있어 우리의 유한한 삶이 더욱 가치 있고, 끝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폴의 '끝'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위대한 과학자라거나 헌신적인 의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본인이 생각한 인간다운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었긴 때문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천국'이 아니라 '완벽한 끝'일지도 모른다.

 

I can't go on, I'll go on



2022년 5월 9일, 세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LYK

1. 우리가 이 책에서 주로 언급되는 질병인 암 진단 혹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황이라고 가정했을 때, 인생의 어떤 부분에 후회가 남는지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2. 글쓴이는 의사라는 본업 이외에도 작가, 과학자, 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싶어 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부캐' 측면에서 각자 '부캐'로 가져가고 싶은 직업이나 활동들을 이야기해 보자.


3. 주인공은 암 투병 중에 아내 루시와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한다. 만약 우리 각자가 글쓴이의 상황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생각해 보자.


4. 글쓴이는 오랜 기간 의사로 일했고 많은 환자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인이 투병을 시작하고 물리치료를 하면서 겪어보니 의사로 환자들을 이해했을 때보다 환자들의 심정을 훨씬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살면서 내가 "저 사람은 이럴 거야~" 어림잡아 생각하던 것들을 실제로 겪고 그 전과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자.


5. 폴은 여러 가지 치료 끝에 결국 소생 치료 거부 의사(DNR)를 밝혔다. 만약 우리가 폴의 상황이라면 연명을 위해 공격적인 치료라도 기꺼이 받을지 거부할지 이야기해 보자.


6.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세상과 주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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