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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Jun 08. 2022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이 예술

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서평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미알못'이지만, 우연히 '그림'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면서 화실을 다닌 지 어언 7년이 넘었다. 오랜 시간 화실을 다니며 꽤 많은 그림을 그렸고, 전시회에 참여한 적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미술사와 관련된 책을 읽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대보자면 지식이 워낙 없어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도 몰랐고,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로 이 책이 선정되었을 때, 너무도 반가우면서 또 한편으론 걱정이 앞섰다. 독서 모임을 만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편식 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자 함이었으나, 막상 책이 선정되고 보니 이 어려운 책을 내가 수월하고 재밌게 완독 할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사실 나의 회화 취향은 르네상스보다는 인상주의와 팝아트 쪽에 가까워 내가 아는 르네상스 작가들은 기껏 해봐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마사초, 보티첼리, 베르메르 정도가 전부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 첫 장에 등장한 '도나텔로'는 역시나, 내게 너무도 낯선 작가였다.


사실 르네상스 미술이 내 취향이 아닌 이유는 단순했다. 그림이 너무 어둡고 어렵다는 것. 파스텔톤과 형광색을 좋아하는 내게 르네상스 회화들의 색채는 어둡고 탁하고, 또 어딘가 무겁게 느껴졌다. 게다가 대부분 종교적 메시지와 상징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인지라 성경 한번 읽어본 적 없는 내겐 해석 역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反르네상스파(?)인 나는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 작품 전반에 깔린 '인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에 대한 공감이 가능해졌고, 르네상스 작품들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흔히들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인간성의 회복', '인간 정신의 회복'이라는 정의를 빼먹지 않는다.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살면서 무수히 많이 접하고 들어왔지만, 이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다의 시선을 따라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차례로 감상하다 보면, 제 아무리 미알못일지라도 그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가 얼마나 신중하게 13가지의 주제를 선정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세심하게 작품을 배치하였는지가 느껴진다. 그것은 그녀가 복원사이기 이전에 문화해설사이자 르네상스 미술의 '찐팬'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녀가 소개하는 르네상스 작품들에는 여전히 '신'이 등장한다. 그리고 여전히 '신'은 원근법의 중심부에 서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에는 신과 함께 '인간'이 존재한다.


벗겨진 머리를 한 거리의 이웃들이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감히 신(천사)이 인간(마리아)을 향해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춘다. 신에 대한 경건함이 아닌, 새 생명이 한 가정에 주는 '기쁨' 그 자체가 그림의 주제가 되어 빛나고, 소박한 가정의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작품 속에서 넘실댄다. 이전 시대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억압에서 벗어난 자신감 넘치는 '여성'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처절함'도 갖가지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신이 아닌 '인간'에게로 향하는 따뜻한 시선들이 작품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작품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어차피 그림은 감상하기 나름이니, 그림에 대한 배경 지식보다는 내가 느끼는 느낌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고심 끝에 한 작품을 완성해내는지 보게 되었고, 단순히 '어렵다'고만 치부했던 르네상스 작품들에 대한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여태껏 대충 봤던 작품들에서 완벽한 대칭과 중심을 찾게 되었고, 철저하게 계산된 원근법을 보며 혀를 내둘르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한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또 그려내기 위해서는 종교적 배경지식뿐 아니라 천문학, 기하학, 인문학, 해부학, 철학 등 다방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함도 깨달았다.


이러한 르네상스 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책에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예술가이자, 르네상스 시대의 전인적인 인간상을 보여준 인물 그 자체였다. <최후의 만찬>에서 별자리 순서대로 제자를 앉혔다는 것과 벽화를 그릴 때 밑칠층의 색깔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했다는 것을 읽으면서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에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느리지만 섬세하게, 또 주어진 모든 환경을 계산했던 그는 철학자이자, 식물학자, 과학자, 건축가, 디자이너, 수학자, 의학자, 동물학자, 식물학자, 기획자, 기술자, 기계공학자, 음악가... 거기다 요리사이기까지 했다. 타고난 천재성에 인간에 대한 관심과 변태적(?) 집착이 더해져 그는 이토록 오래도록 칭송받는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처음엔 그저 르네상스 시대의 기법도, 설명도 너무 어려워 한 장 한 장 힘겹게 책장을 넘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책에 푹 빠져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소 시간이 부족하여 급하게 읽은 감이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反르네상스 파였던 나를 이 정도로 르네상스 작품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만들었으니, 이 책의 서술자인 '이다'는 꽤나 성공한 '르네상스 전도사'라 할만하다. 복원사라는 직업은 르네상스 작품을 사랑하는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으리라.



2022년 6월 8일, 네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MBK

1. 인간 특성을 주제로 13개의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거나 공감되었던 인간 특성과 작품은 무엇이며,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인간 특성 13개 : 지성, 사랑, 영혼, 행복, 이성, 여성, 인문학, 자연, 권력, 심리, 아름다움, 불안, 감각)

2. 작가는 “우리 인생도 하나의 작품”이어서, 이해하고 수정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자신만의 삶의 주제가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본인의 30여 년 동안의 삶의 주제는 무엇이었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주제는 무엇이 되었으면 하나요? (작가가 표현한 13개 또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해주세요.)


3.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이라는 하나의 작품(p.173)을 두고 수많은 학자들이 해석했습니다. 가장 공감되는 해석 또는 나만의 해석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4. 레오넬로 공작의 초상화는 ‘사자’처럼 보이고 싶어 뒷머리를 부풀렸고, 몬테펠트로 공작의 초상화는 ‘독수리’ 부리처럼 매부리코로 그려졌습니다. 그 시대 군주들은 초상화로 자신을 브랜딩 했습니다(p.286). 우리도 “초상화 마케팅”을 하게 된다면, 나만의 상징을 무엇으로 그려 넣고 싶나요?


5. 예술은 인간에게 공감을 주며, 이것이 예술의 역할일 것입니다. 각자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6. 이다 작가는 34살에 떠난 낯선 나라에서 14년 유학의 길을 걸었고, 가이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며, 미술 작품들을 통해 힘든 삶을 버텨왔습니다. 우리도 작가처럼 질퍽한 현실에서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유학을 떠날 수 있을까요? 떠날 수 있다면 어떤 공부를 하고 싶으며, 그 삶을 버티기 위한 나만의 행복은 무엇일지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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