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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Oct 23. 2024

우리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개드 사드 <소비 본능> 서평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처음으로 돌아가 표지를 확인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소비본능'이 맞나? e-book이다 보니 오류로 인해 책장의 다른 책이 열렸거나, 혹시 실수로 이름이 비슷한 다른 책을 결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내가 이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 받은 인상과 책의 실제내용 사이의 괴리감이 컸다. 소비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마케팅 서적이라거나 인간의 과소비에 대한 과학적 통찰이 담긴 책일 줄 알았지. 진화론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저자는 첫 장부터 '진화론'이 받는 오해와 비판을 조목조목 따진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행위('소비'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사실상 모든 행위)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설명한다. 입덧을 하는 이유라거나 우리가 뷔페에 가면 과식하는 이유, 남자들이 도박에 더 쉽게 중독되는 이유 등 평소에 아리송했지만 그 '근원적'인 원인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던 다양한 사례들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그중에는 흥미롭고 재밌는 사례들도 물론 많았다. 덕분에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인간 군상에서 조금 벗어나있는 탓일까. 솔직히 나는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근 남자 주인공들을 이 문학 장르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전통적인 주인공들보다 더 ‘섬세한’ 성격으로 묘사한 새로운 소설들을 출간했다. 결론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했다. 이 시장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점잖고 섬세한’ 남성상에 관심이 없다. 이는 남자 주인공에 관한 여성들의 진화에 기초한 짝짓기 선호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왜 여성들이 포르쉐나 페라리, 애스턴 마틴을 몰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남성들이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발레 타이츠를 신고 걸어 다니는 문화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까.
여성들은 하이힐을 모을 수는 있지만, 고급 자동차 수집에 돈을 ‘낭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컨대 이 문장들을 보자.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보편적인' 여자들은 양육 부담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높고 건강한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린다. 그래서 남자는 부양 능력을 뽐내기 위해 값비싼 수트를 입고 빨간색 페라리를 탄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최근의 K-드라마들을 보면 남자 주인공들의 외모도 성격도 정말 '섬세하다'. 10년 전, 20년 전과는 유행하는 성형 스타일도 인기 있는 아이돌의 외모 스타일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불과 20년 사이에 인간의 본능이 또 다른 양상으로 진화라도 한 것일까? 진화론적 변화라기보다는 문화와 삶의 양식의 변화로 인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게다가 요즘 능력 있는 여자들은 하이힐보다 고급 자동차 수집에 더 많은 돈을 '낭비(?)'하곤 한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의 SNS가 그 방증이다.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발레 타이츠를 신고 걸어 다니는 남자들은 없지만 넓은 어깨와 멋진 외모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남자들은 도처에 널려있다. 여성들이 고급 자동차가 아닌 하이힐을 수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들이 남성만큼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회적 분위기와 고정관념 때문에 남자들도 아름답고 싶은 욕망과 본능을 아주 오랫동안 억압해 온 것처럼.


한국어, 아랍어 등 일부 언어에는 이모와 고모, 삼촌과 외삼촌을 구분해서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여기서도 부성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외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가장 많이 투자하고, 친할아버지가 가장 적게 투자하며, 남은 두 조부모가 그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예상은 몇몇 연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른 모든 조건은 같다고 가정할 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신분이 남성의 생식 편차를 더 강화하는 요인이므로) 양육 투자는 아들에게 치우칠 것이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딸에게 치우칠 것으로 본다.
최근 연구에서 엘리사 Z. 캐머런과 프레드리크 데일럼 교수는 남성 억만장자들이 전체 인구 집단에서 예상되는 것보다 아들을 훨씬 더 많이 낳은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트리버스-윌러드 가설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다. 게다가 억만장자들의 아들들은 일반적으로 딸들보다 부자였는데, 이는 부모가 아들들에게 더 많은 양육 자원을 할당하는 데서 일부 비롯됨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삼촌/외삼촌 등의 용어는 부성 불확실성이 아니라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생겨난 용어이다. 그런데 저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 자체도 우리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본능에 따른 진화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집의 경우 친할아버지가 외할머니나 친할머니보다도 훨씬 더 지우를 아끼고 사랑하신다. 또 요즘 많은 집들은 - 부자라 할지라도 - 아들보다 딸을 낳기를 더 소망한다. 이것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Y염색체(남성)가 포도당이 풍부한 환경에서 번성할 확률이 높으므로 임신 전에 더 풍부한 음식을 섭취한 여성들은 아들을 낳을 확률이 더 높았다.


수많은 '딸을 낳기 위한' 혹은 '아들을 낳기 위한' 속설들이 존재한다. 전자파에 많이 노출되면 딸을 낳는다거나 남편이 피곤하면 딸을 낳는다거나. 하지만 직접 낳아보기 전에는(아니, 초음파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인간의 삶에서 그 변수들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그러한 속설들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게 내가 이 책과 저자의 주장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간의 행동과 삶의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동인은 무수히 많고, '본능이 그러하다'는 한 문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또한 너무도 많지 않은가.

오늘 조리원 동기 모임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존경/존중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주장이 등장했다. 여기서 재밌는 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진짜 그런 것 같다며 저 속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오늘 모임원 10명 중 아들을 가진 엄마는 단 1명뿐이었다.


여러 연구 결과 실제로 긍정적인 기분과 부정적인 기분 모두 사람의 식욕을 돋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자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과 가장 유사한 문장이다. 인간은 긍정적인 기분일 때도 부정적인 기분일 때에도 식욕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이는 우울할 때 식욕이 아예 없어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밥통을 끌어안고 폭식하기도 한다. 100명이 있다면 100명 모두의 입맛과 선호하는 음식이 다를 수 있다.


우리의 본능은 브로콜리보다 햄버거를 더 맛있게 느끼도록 진화했다지만, 내 주변에는 브로콜리를 더 맛있게 느끼는 돌연변이(?)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0.68 ~ 0.72 사이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WHR)'과 대칭적인 얼굴이 보편적인 미의 기준이라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럴까. 슬렌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풍만한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남자가 타고 온 차보다 외모와 성격에 관심을 쏟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누구나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지만, 모두가 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보편성'이라는 방패를 들고 와 내가 드는 사례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겠지만, 현대의 인간은 분명 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보편적'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너무도 폭력적으로 느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르기도 하고.


 태아기와 출산 후 각각 양수와 모유 수유를 통해 이뤄지는 식품에 대한 노출이 생후 아이의 식품 선호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14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타고난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내내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러니 인간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음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나는 차라리 모든 것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내가 어떤 짓을 하건 차라리 이 아이의 성격과 성향과 인생의 기반이 되는 많은 것들이 이미 결정된 것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 내가 하는 작은 말 한마디가 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불안하고 설레고 또 불안하다.


때때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이전에 받아들였던 이론은 거부되고, 낡은 패러다임의 벽이 무너지면 단호하게 거부하던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진다. 궁극적으로 과학은 완벽하고 정확한 지식 기반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자동 교정 과정이다.


생물학과 진화론, 자연선택에서 분명히 배워야 할 점들도 이 있을 것이다. 특히 진화심리학은 그 역사가 길지 않기에 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암을 연구하는 것은 암을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암을 이겨내기 위해서인 것처럼, 진화심리학 역시 인간에게 있어 더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동물과 가장 다른 은 '본능대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포인트이기도 하다. 마치 이 책이 남자들 입장에서 쓰인 '본능설명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네들 본능이 그런 건 알겠고,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라고 외치고 싶었다. 간은 한 본능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참고 이겨내고 또 배우고 사랑한다. 본능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되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가는 인간들만이 진정 아름다운 삶을 꾸려낼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10월 23일, 서른두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SJY

1. 작가는 인간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채택되어 온 기준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우리의 소비행위에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 여러분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분야는 무엇이며, 소비를 결정할 때 어떠한 기준과 패턴을 가지고 있나요?
 - 이러한 소비성향은 진화론적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개인의 개별적 특성에 의한 것인가요?  



2. 자신이 소비하는 특정 브랜드나 제품이 사회적 신호로 사용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여러분이 소비한 물건이나 브랜드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인식되었을지, 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3. '남성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포르쉐를 모는 등의 과시적 소비를 할 때 현저하게 증가한다', '청혼을 위한 다이아몬드 반지는 남성이 여성에게 주는 것이 일반적이며, 평균적으로 연봉의 25%가 소요된다. 이것이 구애자의 헌신과 자질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남성의 소비는 남성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선택된다는 개념으로 보입니다. 유사한 맥락에서 <사상검증 구역: 더 커뮤니티>의 토론주제가 떠올랐는데요, "데이트비용을 더 내는 남자가 섹시한 것은 자연스럽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4. 책은 진화론적으로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육아에 덜 몰입하는 이유는 '부성 불확실성(아이가 내 아이일 거라는 확신이 여성보다 덜하다는 개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이론이 부성애가 모성애보다 상대적으로 덜 강력한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한, 요즘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성 대신 남성이 육아휴직을 선택하여 아이 양육을 전담하는 케이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성 불확실성은 유효한 개념일까요?  



5. 광고/마케터 입장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진화심리학이 꽤나 유용한 이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광고 중에서 이러한 심리를 잘 공략한 사례가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6. 소비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본인의 경험에서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준 경우, 반대로 불만족을 준 케이스는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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