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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Jun 07. 2020

유치할 줄 알았는데 사랑스러워

<빨강 머리 앤>

어릴 때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주제가를 들으며 빨강 머리 앤을 봤었다. 작가의 그림체인 것 같지만 얼굴에 그림자가 있는 모습이 빨강머리 앤을 더욱 수척하게 해 보였던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지인이 <빨강 머리 앤>을 강추하면서 빌려주셨을 때 반신반의했다. '그냥 친구들이랑 노는 씩씩한 아이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재미있을까. 빨강머리 앤이 캐나다의 작은 섬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실수투성이지만 활기차고, 하는 말은 장황하지만 사랑스러웠다. 


빨강머리 앤은 주변의 사물과 순간들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감동한다. 때때로 실수를 저지르지만, 한번 저지른 실수는 다신 저지르지 않는다며 앞으로 저지를 실수가 하나 줄었다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기도 했다. 개울, 숲 길, 화분 등에 감수성을 가득 담은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더욱 행복한 곳으로 바라봤다.


이토록 순수하고, 감수성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할 수 있다니.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과 조잘거리는 말들을 읽어보며 폭풍 힐링이 되었다.


유치할 줄 알았는데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야기일 줄이야.


유명한 빨강 머리 앤 짤


자신을 키워준 마릴라 아주머니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대학 장학금을 포기하고, 에이번리 마을의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빨강머리 앤이 말했다.


"아주머니. 일주일 동안 이 생각만 했어요. 여기서 최선을 다해 살면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리라 믿어요. 퀸스를 졸업할 땐 미래가 곧은길처럼 제 앞에 뻗어있는 것 같았어요. 그 길을 따라가면 중요한 이정표들을 수없이 만날 것 같았죠. 그런데 걷다 보니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길모퉁이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아주머니. 모퉁이 너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그림자가 기다릴지, 어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지,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과 마주칠지, 어떤 굽잇길과 언덕과 계곡들이 나타날지 말이에요."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해 성취하려던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긍정적인 것 같다. 길모퉁이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 너머의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하다.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지금 걸어가는 길 너머에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는 빨강 머리 앤. 

인생엔 직진보다 커브길이 많은데, 때로는 빨강 머리 앤이 되어 막연히 긍정적으로 살아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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