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실타래를 풀어 디자인하기
사람이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건 양자적인 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억들이 모이면 '경험'이 된다. 우리는 매일 경험하며 살아가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듯 자연스럽기 경험이라는 행위에 대해 망각하게 된다.
사용자 경험은 서비스의 성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요소이기에 많은 기업들이 갈수록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모호하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경험에 대해 분석하고 의도적으로 디자인해볼 수 있을까?
<경험 디자인>의 전반부에서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본질을 감각적, 판단적, 구성적 경험으로 분류하여 분석하고, 후반부에서는 여러 가지 서비스에 대해서 3가지 경험을 조절하는 요소(실재감, 기인점, 응집도)를 통해 분석한다.
실재감은 경험이 사람의 감각(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에 얼마나 사실감을 주는 지를 판별하는 요소이다. 높은 실재감을 필요로 하는 TV, 스크린 골프가 있고 오히려 낮은 실재감을 주는 라운지 음악(사람들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극적이지 않은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 있다.
기인점은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질지, 서비스에 맡길지(자동화)에 대한 척도이다. 요즘 모바일 게임에는 단순한 전투는 자동 전투 기능을 두어 기인점을 밖(서비스)에 두고,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퀘스트의 경우는 기인점을 안(사용자)에 둔다.
응집도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관계의 복잡도가 얼마나 응집되어있는 지를 나타낸다. SNS는 응집도가 높다. 처음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응집도를 높이는 방향을 추구했지만, 응집도가 너무 높아지게 되면 피로감이 들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실재감/기인점/응집도를 가질지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설계자가 의도한 균형점대로 사용자가 느끼도록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설계자와 사용자는 매우 자주 서비스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ㅠㅠ.. 서비스의 의도를 사용자에게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은 애석하지만 적어도 설계자는 사용자가 서비스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해해야 한다.)
지배적 디자인은 파괴적 혁신으로 시장을 장악해 표준이 된 디자인이다. 아이폰, 스카치테이프 같은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구성적 경험은 주로 관계의 응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되었으나, 어느 지점에서 응집도가 너무 높아지면 사람들은 사회문화적으로 이를 수용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갈등을 느껴 결국 관계의 응집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파괴적 혁신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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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무 섣부르게 파괴적 혁신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인지 부조화의 갈등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는 곧 대부분의 사용자가 현재의 지배적 디자인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지배적 디자인 범위 안에서 다른 기업과 경쟁적 차이를 줄이는 점진적 혁신에 주력해야 한다. 즉 현재의 지배적 디자인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에서 다른 경쟁 기업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나타내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러나 갈등이 충분히 커지고 갈망적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더 이상 기존의 지배적 디자인에 연연하지 말고 파괴적 혁신을 이룰 제품이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소셜 커머스 시장이 떠오른다. 티몬/위메프/쿠팡이 비등비등하게 치열했던 시절, 쿠팡은 자체 물류센터를 만들고 쿠팡맨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로켓배송에서 로켓프레시 등 점진적인 혁신을 이루고 있다. 이 혁신들이 조금씩 누적되어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점진적인 혁신으로 우위를 차지할 순 있지만 시장을 지배할 수는 없다. 파괴적인 혁신이 필요한데 이건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서비스에 대한 경험은 그에 대한 판단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족적과 앞뒤 경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저자가 경험에 대해 정리해놓은 사례를 읽으며 그간 무감했던 경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경험의 실타래를 풀어내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3가지 요소(실재감, 기인점, 관계의 응집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요소들을 이용해 경험을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서비스가 주고자 하는 경험이 3가지 요소를 어느 정도로 조율할지가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마주할 제품과 서비스를 바라볼 때는 사용자로서 그들이 어떤 경험을 의도했고, 나라는 사람이 그 의도대로 경험했는지 세심하게 학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의 실타래를 자세히 살펴보고 조금 더 예민해지고 싶다.
책을 읽고 획기적인 인사이트를 얻었기보다는 경험이라는 것에 대해 잘 정돈된 내용을 무난하게 읽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