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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Jun 21. 2020

외롭지 않을 권리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다
화장실에서 넘어졌을 때 구급차를 불러줄 사람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은가. 돌봄은 좁은 의미의 간호나 가사노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험난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바쁜 친구와 밖에서 만나 얘기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일의 건강한 출근을 위해서 오늘 털고 가야 할 이야기도 있다. 치킨을 주문하거나 라면을 끓일 핑계가 되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눈송이만한 외로움이 밤새 몸을 굴려 눈사태가 되지 않도록 그저 누군가의 잠자는 숨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다. 학교, 직장 또는 다른 사정으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들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구는 4인 가구가 아닌 1인 가구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4인 가구가 가장 보편적이에요'라고 배웠지만 지금 초등학교에서는 '1인 가구가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가구 형태예요'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을까.


매스컴에서는 혼족을 낭만적으로 표현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2030도 사실은 외로울 때가 있다. 혼족에는 전형적인 표본으로 그려지는 2030만 있는 게 아니라 중년과 노년도 많다. 청년층에서 보다 중년층과 노년층에서 1인 가구가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혼자 사는 건 비싸고, 때론 외롭다.

주거공간, 생활에 필수적인 가전과 가구들은 혼자여도 둘이어도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때, 화장실에서 미끄러질 뻔하여 가슴을 쓸어내릴 때엔 혼자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시적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들은 많지만, '나는 아무도 필요 없어. 나는 평생 오롯이 혼자 살아가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당분간은 혼자 살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혼자'살지 않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 산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한다. 10년 넘게 우정을 기반한 신뢰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친구, 배우자와 사별한 후 서로를 돌보기 위해 함께 사는 노인들, 상속 등의 복잡한 관계 때문에 재혼을 하진 않지만 함께 살아가는 노인 커플,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기에 혼인할 수 없는 동성 커플, 신체적 장애로 인해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장애인들 등 세상에는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관계가 존재한다. 현재는 상대방이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 동거인은 아무런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가족과 다름없으나 가족이라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급하게 찾아간 응급실에서도 보호자 역할을 할 수도 없고, 상대가 사망했을 때 시신을 인수받을 권리도 없다.


<외롭지 않을 권리>는 이를 위해서 생활동반자 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생활동반자 관계'는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민법상 가족이 아닌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삶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다. '생활동반자 법'은 이런 생활 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국가에 등록하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혜택 등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아가 생활동반자로 살고, 또 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둘 사이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절차에 대한 법이기도 하다. 


혼인 신고를 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수많은 법적인 권리를 나누고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혼인 또는 혈연관계가 아니라면 상대방과 얼마나 친밀한 지와 관계없이 법적으론 철저한 타인이 되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할 수도 나눠줄 수도 없다. 책에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우리나라의 현행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개인의 다양한 관계와 그 형태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가족보다 개인을 중심으로 여러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세상에 서로를 돌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실감했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게 됐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아니어도 동반자라면 집에 대한 채무와 권리를 함께 나눌 수 있고, 서로의 생활에 대한 기여 또는 실책에 대해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들의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또는 결혼 생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정서적, 생활적인 변화에 대해서만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법적으로도 혼인이 얼마나 많고 무거운 권리를 나누는 것인지에 대해 이 책을 통해서 실감하게 됐다. 


세상의 수많은 관계를 포용하기엔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좁고 작은 가. 서로의 돌봄을 인정해주고, 이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준다면 사람들이 조금은 덜 쓸쓸하고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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