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선택하고, 미로 밖으로 나가기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꼬마인간 헴과 허는 치즈창고 옆에 행복하게 살아갔다.
하지만 별안간 창고가 비어버렸고, 허는 새로운 치즈를 찾기 위해 떠난다.
허는 치즈를 찾아 미로 속을 헤매며 변화에 대한 값진 교훈을 얻는다.
헴은 홀로 남아 창고를 지킨다. 헴은 어떻게 되었을까?
변화에 당황하여 어찌할지 모르는 헴의 모습은 보통의 우리의 모습과 가장 맞닿아있다.
변화를 믿지 않고, 예전의 신념에 매달렸던 헴은 결국 "치즈를 찾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헴도 치즈를 찾기 위해 창고를 떠나고 그 과정에 호프라는 새로운 꼬마인간을 만난다. 호프와 함께 치즈 창고를 찾는 것에 지나지 않고, 미로 밖으로 나아간다. (헴의 신념과 생각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호프의 공로가 지대하다)
과거의 신념은 우리를 새 치즈로 이끌지 않는다.
신념은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선택하는 장본인이다.
믿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때로는 볼 수 있기 전에 믿어야 한다.
우리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간직한 '신념'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그 신념을 의심해보라고 말한다.
치즈는 왜 미로 속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꼬마인간들은 왜 미로 안에서 치즈를 먹으며 살아가는 것인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그 프레임을 의심하고, 그 의심이 합리적이라면 새로운 신념을 선택해야 한다.
어릴 적에는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야 하고, 졸업 후에는 좋은 직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너무나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또한 신념일 뿐이었다. 오롯이 존재하는 하나의 정답인 줄 알았던 삶의 방식은 그저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로 인해 나를 미로 안으로 밀어 넣었을 뿐이다.
미로 밖을 나가야 하는 것인가.
이 안에서 나는 충분한 치즈를 먹으며 행복한 것인가.
언젠가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다. 미로 속 작은 치즈 창고 속에서 안주할 것인지, 없을지도 모르는 출구를 찾아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
적어도 신념을 의심하고 있다는 건 좋은 신호이다.
운동화 끈을 동여맬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