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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죽음만큼 확실한 미래는 없다. <죽음 카탈로그>

by 퐝지

몇 주 전 외할머니를 보내드렸다.

할머니가 아프시고, 가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할 때쯤 이 책을 샀다.

읽다가, 끝까지 읽으면 정말 그 일이 일어나버릴 것 같아서 책장 구석에 꽂아두었다.


그러다가 할머니를 보냈다.

당신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옆에서 보며, 붙잡을 수 없기에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불꽃으로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면서

두 눈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죽음'을 목도했다.


죽음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자 이 책을 다시 펼쳤다.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얻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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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죽음의 형태와 그 이유, 문화와 역사별로 죽음의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 등이 작가의 삽화들을 통해 나열된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진 않는다. 제목 그대로 죽음에 대한 형태를 가볍게 나열한다.

가볍기 때문에,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이 사실은 내 곁에 존재한다는 실재감을 거북하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죽음에 관한 사색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에피타이저라고 해야 할까.


책의 결론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지금 갑자기 지진 해일처럼 몰려오면 압사당해 죽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오늘은 카레가 맛있게 됐다', '이 성공은 그때의 실패 덕분이었다'하는 식으로 생활 속에서 일어난 일을 잘게 바수고 연결해 자기 방식대로 차곡차곡 개어가는 정도가 아닐까.


매일 조금씩 개어 정리해둔다.


그리고 가끔씩 죽음의 편에서 지금의 자신을 돌아본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이 짓눌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똑바로 죽음을 향해 매일의 삶을 차곡차곡 개어간다.

별 것 아니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사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죽음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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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삶을 조금씩 개어 죽음을 준비한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어놓는 것처럼, 매일매일 조금씩.

그동안 죽음을 그저 먼 이야기로만 치부했었다.

하지만 죽음은 확실한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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