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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Apr 21. 2019

떨림과 울림

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는 법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프롤로그에서 발췌한 문구이다. 과학적인 현상을 이토록 낭만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니. 그러한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다만.. 전자과 출신인 나에게도.. 너무나 많은 과학 지식은 조금의 피로도를 일으켰다..)


진동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 현상이다. 물질은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뉘며 이는 쿼크로 되어있다. 결국 인간이라는 것이,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이, 생명체의 성질을 좌우한다는 DNA라는 것조차 나누고 나누면 그저 양자들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초끈이론을 소개하는데, 초끈이론에 따르면 결국 물질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끈으로 되어있는데 이 끈을 어떤 진동으로 튕기냐에 따라 특성이 결정된다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진동이다.



우리는 원자 하나에서 우주를 느낀다.

우리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에 있는 탄소 원자 하나는 먼 옛날 우주 어느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졌다. 그 탄소는 우주를 떠돌다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 내려앉아, 사이노박테리아, 이산화탄소, 삼엽충, 트리케라톱스, 원시고래, 사과를 거쳐 내 몸에 들어와 포도당의 일부로 몸속을 떠돌다, 손가락에 난 상처를 메우려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부 세포의 일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 하나에서 우주를 느낀다.

우리는 태초의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를 둘러싼 공간이 아닌 우리 손끝에서도 우주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를, 우리 주변의 사물을 한없이 쪼개다 보면 문득 허망하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진동뿐인 어떤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집합체인 걸까.

너라는 존재는 그저 과학의 우연의 산물로 이루어진 원자들의 모음인 것일까.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과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사물에 존재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경이롭다.


시간의 화살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왜냐하면, 그러한 확률이 훨씬 크니까.

여러 가지 내용 중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시간은 그저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큐브를 돌리는 과정이 시간이 흐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큐브를 돌리는 방향에 제약은 없다. 

'큐브의 색이 맞아 있던 상태'가 과거이고, '큐브의 색이 흐트러진 상태'가 미래라고 하면 된다. 큐브를 무작위로 돌리면 과거에서 미래로만 가며, 그 반대 과정을 일어나지 않는다. 

운이 어마어마하게 좋아 색이 저절로 맞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시간이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큐브를 70억 개쯤 준비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 이들이 모두 무작위로 큐브를 돌렸을 때 70억 개의 큐브가 한꺼번에 색이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실 시간이 반대 방향으로 흐를 확률은 이보다 훨씬 낮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단지 그렇게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라니.

색이 맞은 상태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하지만 색이 흐트러지는 것은 정말 수없이 많은 경우가 가능하다. 

과거에서 미래로 간다는 것은 결국 상태를 이루는 경우의 수가 작은 상황에서 많은 상황으로 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경우의 수에 '엔트로피'라는 이상한 이름을 주면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라는 멋진 문장으로 바뀐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려면 과거의 엔트로피가 작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점점 엔트로피가 작아져서 결국에는 엔트로피 0의 상태, 단 하나의 가능성만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빅뱅이다. 빅뱅은 천문학적인 관측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엔트로피와 시간의 방향을 생각해보면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다. 빅뱅이 왜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빅뱅이 없었으면 시간이 미래로 흐를 수 없다.


엔트로피가 0인 상태, 빅뱅이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이미 빅뱅은 발생했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엔트로피는 계속해서 증가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더욱 무작위한 방향으로 팽창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안에 몸을 맡겼다. 


우리의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며, 우리를 둘러싼 현상들조차 어떤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다만, 이 안에서 의지와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차가운 과학으로 둘러쌓인 세상에 낭만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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