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를 읽고 반성합니다.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는 얼핏 역설적으로 들린다. 이기적인 직원이라고 하면 일은 조금 하고, 돈은 많이 받는 월급 루팡 같은 직원들을 말하는 걸까? 이런 직원들은 회사를 망하게 하는데, 그렇다면 이기적인 직원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서 이기적인 직원들은 회사보다 내가 우선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월급 루팡과는 반대로 엄청난 업무 효율을 발휘할 수 있다.
이기적인 직원은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커리어를 위해 회사를 다닌다. 현 회사에서 만들어낸 성과가 자신의 커리어가 된다. 회사에 헌신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결과물이 자신의 커리어가 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모두 커리어를 위해서 일하지,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나는 이전에 근무하던 트위터 사를 사랑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는 않았다.
더 좋은 기회를 맞아 에어비앤비로 이직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에어비앤비를 좋아하고 지금의 일을 사랑하지만, 에어비앤비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헌신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뛰어난 엔지니어로 성장해서 또 다른 곳에서 멋지게 쓰이거나 사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마인드는 아래의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실력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고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 연봉은 연차대로 오르고, 이직은 쉽지 않고,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시키는 대로 일해야) 성과를 잘 받는다. 실리콘 밸리와 우리나라 회사들은 무엇이 다른 걸까?
커리어 중심의 사고를 위해서는 역할 조직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역할 조직은 팀 구성원 개개인이 전문가로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협업하는 형태이다. 탑다운으로 위에서 아래로 명령을 내리고, 그에 맞춰 세분화된 일을 나누어 분담하는 형태와 다르다.
역할 조직에서는 개개인의 전문성이 중요하고, 개개인의 판단이 결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로 인한 결과물은 오롯이 자신의 책임이 된다. 반면, 위계 조직의 경우에는 위에서 결정한 대로 수행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결과물은 내 것 같지도 않으며(월급을 받기 위한 행위를 수행한다는 느낌뿐) 책임도 윗사람이 진다.
역할 조직에서는 의사 결정할 때 회사의 미션과 가치에 맞는 방향으로 구성원이 토의를 통해 결정해나간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경우, 자신의 집을 내어주는 호스타가 인종차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수 있다.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지만, 자기 집을 내어주는 호스트가 손님을 선택하는 것이 '호스트의 권리'라고 볼 수도 있다. 목적과 가치관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논쟁은 끊임없는 소모적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위계 조직에서는 윗사람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한다.
반면 역할 조직에서는 의사결정에 충돌이 생길 경우 회사의 미션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미션은 ‘Belong Anywhere 어디서든 내 집처럼 편안하게’인데, 세계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내 집처럼 느끼게 하자는 이 미션에서 인종차별은 큰 걸림돌이 된다. 또한 에어비앤비의 미션은 사유재산 보호가 아니라 공유에 있으므로, 모든 직원들이 윗사람의 관여 없이도 미션에 충실한 결정을 쉽고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위계 조직에서는 분쟁을 중재할 윗사람이 중요하지만, 역할 조직에서는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의 기준점이 될 ‘미션’과 ‘핵심가치’가 중요하다.
위계 조직의 경우, 소수의 개인이 결정을 하다 보니 그러한 결정이 잘못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러나 역할 조직의 경우 회사의 미션 아래에 다수가 토의를 통해 결정을 하니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애자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애자일의 본질은 번 아웃되지 않고 사용자 스토리를 중심으로 제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워터폴 방법론처럼 1년 뒤 출시일을 위해 3개월 기획 6개월 개발 3개월 테스트 이런 식으로 일정을 분해하는 것이 아니다.
애자일의 목표는 높은 퀄리티의 소프트 웨어를 예상 가능한 속도로 만들어내고 장기적으로 유연하게 변화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기존 제조업 방식의 단기성으로 데드라인이나 스펙에 맞추어 작동하게 만드는 방식과는 추구하는 지점이 정반대이다.
사용자 중심의 제품을 위해, 스토리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능만 구현하다가 제품의 본질이 산으로 가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기능을 기한 내에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속도로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팀원들이 모여 스토리 포인트를 산정하고,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것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의 속도를 측정하고 다음 스프린트에 적당한 속도로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이다. 즉, 번 아웃되지 않고 끊임없이 제품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다.
역할 조직에서는 구체적인 데드라인과 업무 지시가 아니라 ‘미션’이 주어진다. “우리 회사에 결제 시스템이 필요해요. 전문가로서 당신이 만들어주세요.” 정도의 미션이다. 이러한 미션을 가지고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정보를 모아 일을 해나가야 한다.
역할 조직에서는 내가 지금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나타내 주는 ‘코드 리뷰를 최고로 잘하는 엔지니어’, ‘스마트폰 전문 디자이너’, ‘코드를 빨리 쓰는 엔지니어’, ‘최신 기술을 잘 아는 엔지니어’, ‘설계를 잘하는 엔지니어’ 등의 개인 브랜딩이 중요하다.
역할 조직에서는 실수를 절대로 비난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과 공포는 이성을 압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가 비난을 받고 감정을 상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면, 포스트모르템을 통해 실수를 공유하는 것을 지양하게 되고 그렇다면 실수를 통해 발전하거나 학습하는 과정이 유실된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다양성은 글로벌한 제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획일화된 제품에서 벗어나 유일무이한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유리하다. 다양성은 개인의 아이디어와 정체성을 존중해주는 개념이고, 대세보다는 개성을 중시하는 개념이다. 기존의 획일화되고 검증된 방식을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은 다양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은 창의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설계하는 첫걸음이고, 다양성 없이는 그러한 방향으로 신개념의 제품을 만들어갈 수 없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자신의 전문영역만 잘하는 사람은 역할 조직에서는 최고의 인재다.
역할 조직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결정권자로서, 복잡하고 다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종합적인 판단능력과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항상 질문하고, 의견을 내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리콘 밸리를 그리다>의 저자 중 한 명이 역할 조직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이다. 역할 조직에 대해 중복된 내용이 나오지만 복습하는 차원에서 좋았다. 무엇보다 아래의 구절에서 스스로 큰 반성을 했다.
단순 노동자는 자신만의 커리어를 기대하기 힘들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시장가치가 올라갈 확률이 적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현재 직장의 월급과 복지가 중요하다. ‘일을 얼마나 적게 하고, 돈을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하지만 마케터,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디자이너, 펀드 매니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경험을 쌓으면서 커리어를 만들 수 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보상은 커리어를 통해 최종 몸값을 올리는 것이다.
나는 전문가로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때때로 단순 노동자처럼 일하지 않았나.
회사에 있는 순간만큼은 이기적은 직원으로 나의 성장을 통해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이를 커리어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또한, 개인 브랜딩의 관점에서 개발자로서 내가 어떤 특장점을 가졌는지 돌아보고 브랜딩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