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 커피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도 하루에 믹스커피 두 잔은 꼭 마셨다고 한다.
꾹 참았다가 아침 먹고 한잔, 점심 먹고 한잔. 그것도 혼자 마시지 않고 꼭 “자기도 커피 줄까?” “어머님 커피 드실래요?” 물어가며 평생 커피 란건 모르고 살았던 집안에 믹스커피를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많이 드셨다고 한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도 가끔 믹스커피가 생각나 찾아 타 마시곤 한다. 라테에 시럽을 아무리 넣어도 나지 않는 그런 맛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 몇 장이 있다.
나무에 물 싹이 오르기 시작하고 꽃씨가 날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실기실에 가만히 않아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너 나할 것 없이 물감이 덕지덕지 묻고 빨지 않아 더러워진 신발을 끌고 미대 건물 옆 벤치로 나온다. 자판기 커피를 하나씩 입에 물고, 삼삼오오 모여 실눈을 뜨고 광합성을 했다.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뜨거운 커피의 달달한 향과 봄 햇살의 노곤함이 아직도 그 계절이 돌아오면 슬며시 생각난다.
한 친구는 믹스커피를 마실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엄마가 이 힘으로 우리를 키웠다잖아.” 철없는 아빠가 무모하게 사업을 늘릴 때 뒷바라지 다 하며 삼 남매를 키워내신 엄마의 힘. 고단한 하루의 중간중간에 위로로 넘어갔을 그 달큼함. 그 친구에게 믹스커피는 엄마였다.
카페로 어떤 아저씨 아주머니가 들어온다. 아저씨 손에는 믹스커피 하나가 들려져 있다. 다짜고짜
“이것 좀 타 줘요” /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믹스커피 밖에 못 마셔서 그래.” / 집에서 타드세요. 여긴 카페 라구요.
“에이, 돈 주면 되잖아!!” / …
이 일화는 카페를 운영하며 가장 황당하던 베스트 중에 꼽힌다.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맛있어서’ ‘뭔가 허전해서’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지만, 생각해 보면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에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저렴한 값에 어디서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되는 단맛은 현재의 쓴맛을 중화시켜 준다. 적당한 카페인과 떨어진 당을 함께 보충할 수 있다. 물론 뒤이어 오는 텁텁함과 너무 많이 마실 때 오는 속 쓰림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전소영_sowha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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