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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pr 26. 2017

카페 이야기

망원동 로마니


아침에 무거운 눈 비비고
멍하게 거울을 바라보네
밤새 내린 빗방울을
지붕 아래 고양인 올려보네

고요한 새벽을 위한 노래
해 뜨는 언덕을 위한 노래
굽어진 골목길 따라서
달려가는 자전거의 노래

계절을 실은 바람에
피고 지는 꽃을 위한 노래

           
그 꽃을 기억하기 위한 노래
지금의 너를 위한 노래
우리를 위해 부르는 노래
그건 나를 위한 노래


-어쿠스틱 밴드 신나는 섬 ‘위로의 노래’ 중







 2012. 여름

 오후 3시쯤 한 무리의 손님들이 왁자 지껄 들어온다. 점심 손님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조금 한가한 시간이다. 여느 때처럼 각자 다른 음료를 주문한다. 아메리카노요. 딸기 바나나 셰이크요. 미숫가루 라테요. 음.. 전 민트 초코요. 사실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뭘 마실지 다 알고는 있다. 요즘 들어 거의 매일 오는 단골이기 때문이다. 숍의 안쪽 테이블은 단 하나, 무거운 통나무를 어딘가에서 주워다 사포질과 마감칠을 하고 다리를 만들어 준 빈티지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수다 겸 회의를 시작한다. 아직 한 멤버가 오지 않았다. 조금 뒤 나머지 한 멤버가 들어오며 자기 음료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민다. “계산해 주세요” 처음에는 총무 역할을 하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들끼리 지각 벌칙금을 음료 계산으로 하고 있음을 알았다. 음료를 받아 들고 다 모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대부분 어제 뭘 했다든지, 앨범 작업에 관한 의견 교환이었던 거 같다. 어렴풋이 이들이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정도를 알게 되었다. 카페를 하며 생긴 능력 중 하나는, 내가 필요할 때 귀를 닫게 되는 능력이다. 하루에도 수 십 명의 손님들이 와서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가기 때문에 우리에겐 그 대화 소리가 거의 듣지 않는 배경 음악소리처럼 흘러갈 때가 많다. (때로는 음악소리조차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또 손님들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궁금해하지 않고, 과도하게 친절하지 않는 게 서비스업의 스트레스로부터 우릴 지켜주었고, 그들도 이 공간을 편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어느 날 그분들이 수줍게 앨범을 하나 들고 와 내밀었다. 

 그렇게 나온 앨범은 유달리 가깝고 친근하게 들렸다. 전체를 가로지르는 섬세한 바이올린과 유쾌하지만 어딘지 쓸쓸한 아코디언, 그리고 따뜻한 젬베, 자유로운 클래식과 어쿠스틱 기타 소리 들이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조화롭게 흘러가는 음악. 그들과 닮아 있었다. 서로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고 가까이 지낸 것은 두 번째 가게를 오픈하고 나서부터 였다. 그렇게 닿은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가끔 옛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긴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서툰 발걸음 속에 용기와 즐거움이 있었던 그 시절을 공유하는, 그리고 앞으로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술잔. 화려한 무대보다 동네 길가 어딘가에서 하는 친근한 연주가 더 잘 어울리는 그들은 우리가 카페를 하며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는 것에 쓸데없는 회의감이 들고, 조심스러워지는데 그 와중에 받은 사람 선물은 그래서 더 소중하기 그지없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오전 시간, 

카페 오픈 준비를 하며 ‘망원동 로마니’를 크게 틀어놓고 바닥을 닦는다. 

어제 마신 와인 때문에 아직 머리가 멍하다. 

잠이 덜 깬듯한 어떤 남자가 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가져간다. 

마저 남은 걸레질을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콧노래로 주문을 걸어본다.

‘오늘도 힘을 내 보자. 오늘도 잘 살아보자.’ 

나에게 이 노래들은 그 안에 어쩌다 흘러 들어간 망원동과 과거의 우리가 함께 담겨 있는,

어떻게 살아질지 모를 오늘과 내일의 나를 위한 ‘위로의 노래’ 이기도 하다. 





                                                                                                                                                          






전소영_sowha

그림그리는 사람.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BLOG / iris567.blog.me

I N S TAGRAM / @artist_so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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