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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May 09. 2017

도시의 흙

팥 수확









 카페 외부에 공사하다 남은 방부목으로 큰 화분을 만들었는데, 팥빙수 팥을 수우다 남은 것을 심어 다음 해에 팥을 수확했다. 그냥 불려서 심었을 뿐인데 덩굴을 만들기 시작해 지지대를 세워줬더니 알알이 팥이 여무는 거였다. 그때 처음 실감했다.  ‘시골에 가서 살아도 굶어 죽진 않겠구나. 뭐라도 일을 하면 자연이 우리를 굶기지는 않겠구나.’


흙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용력 있고 관대하다. 도시의 한 평짜리흙이지만 작은 낱알 하나를 이렇게 키워내 몇 배는 뻥튀기로 되돌려 주니 인디언들이 이야기한 ‘어머니와 같은 대지’라는 말이 정말 낱알의 신비로와 닿았다. 이렇게 작은 씨앗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니. 


사실 살다 보면 별거 아닌 거에 감동받을 때가 많다. 나에겐 그 감동 중 하나가 화초들이다. 분갈이해주면 새집 생겼다고 신나서 다리를 쭉쭉 뻗는 식물들, 화분이지만 매년 어기지 않고 귀여운 새싹을 보여준다. 햇빛 좋아하면 볕 바른 데에 놓아주고, 바람 좋아하면 콧바람 잘 쐬어주고 하면 가끔 꽃도 보여준다. 


이런 조막만 한 흙에서도 감동받는데 나중에 조그만 마당이라도 갖게 되면 나날이 감동에 취해 헤어 나오질 못하겠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누군가 나보고 너랑 살려면 돈 많아야겠다. 그랬는데 사실 내 꿈은 작은 시골집이라도 정원 딸린 집이다. 오래된 집은 고치면 되고, 거친 흙이라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라도 갈아서 그럴듯하게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러면 꼭 라일락도 심고, 작약도 심고, 상추도 심고, 무도 심고, 라벤더 도 심어야지. 



2013 가을








전소영_sowha

그림그리는 사람.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BLOG / iris567.blog.me

I N S TAGRAM / @artist_so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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