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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May 13. 2017

도시의 흙

그리움이라는 흙

 



그런 이유로 나는 화초를 기르고, 도시의 풀들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모양과 사연은 다르지만 집집마다 다들 그리움이라는 흙을 사다 나르고, 물을 주고 있는지도.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한 번은 상추랑 토마토를 키워 먹겠다고 모종을 사들였다. 

사람 살기도 좁은 집에서 키워봤자 두세 종류였지만 거리에 나뒹구는 생선 비린내가 나는 스티로폼 박스를 잘 씻어서 물구멍을 내주고 흙을 담아 작은 베란다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잘 자라주어 그 해에 고추 몇 개와 토마토 몇 알을 얻어먹었다. 

감질맛 나는 몇 알의 수확물은 시골생활에 대한 동경심을 부추긴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여기저기에 작은 화분들과 거기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들을 볼 수 있다. 

살림에 크게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기보다 작았던 키들이 자라나서 알알이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볼 때 맞보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흙에 대한 그리움은 그렇게 사람들의 DNA에 장착되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도시에서 자라 도시에서 컸다. 

지방이라고 해도 나름 시내 쪽에서 자랐기 때문에 논, 밭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조금이라도 자연을 맛볼 수 있었던 건 한 달에 한번씩 할머니 댁에 갔을 때였다. 




도시의 흙 . 2016. 종이위 수채화. 



할머니 댁이라 해도 시골집은 아니었고 지방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일층 주택이었다.

다만 파란 대문을 열면 넓은 앞마당이 있었고, 그 마당에 큰 닭장을 짓고, 포도나무를 심고, 꽃을 길렀다.

할아버지는 봄마다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를 병아리 같은 우리 손에 쥐어주셨다.

작고 보드라운 노란 솜털이 가득하고 콩알만 한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그 병아리를 조심스레 안았던 손끝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다. 

거실에는 항상 새장이 있었고 화려한 앵무새 부부나 재잘대는 카나리아가 푸드덕 거리며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배추를 심을 때마다 다섯 포기씩을 우리 남매에게 맡기셨다. 

할머니 댁은 나에게 그야말로 작은 체험 농장 이였던 것이다.


주말에는 근처의 산과 계곡으로 소풍을 갔다. 

봄에는 냉이며 취나물을 재미 삼아 캐어다 라면 끓여먹고, 여름에는 계곡에다 텐트를 쳐 놓고 다슬기 잡고 물놀이하며 놀았다. 

집에서 1시간씩 걸려 도착하여 만날 수 있는 이런 풍경들은 항상 날 숨 쉬게 했다. 

그나마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나에게 아주 큰 감촉으로 남아있지만, 조금씩 맛보았기 때문에 더 큰 그리움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나는 화초를 기르고, 도시의 풀들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모양과 사연은 다르지만 집집마다 다들 그리움이라는 흙을 사다 나르고, 물을 주고 있는지도.







전소영_sowha

그림그리는 사람.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BLOG / iris567.blog.me

I N S TAGRAM / @artist_so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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