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승원 Mar 29. 2022

Fuji X-Pro3를 샀다.

신난다.

얼마 전에 와이프와 애기를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문득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그 낡아빠진 말에 동감해서 카메라를 하나 사기로 마음먹었다. 기왕 사진을 찍을 거면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카메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번 주 한 없이 불편하고 제멋대로 찍히지만 멋진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X-Pro3를 샀다.

지난 10년 간을 헤어 메이크업으로 예쁘게 만들어 공간을 멋지게 세팅하고 멋진 조명을 써서 그럴싸한 내용이 있는 척 영상을 만드는 일에 너무나도 지쳐버렸기 때문에 취미로 찍는 사진만큼은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그 사진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진들이 하찮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그냥 하찮은 내 일상일 뿐이고 내 시선일 뿐이니까 말이다. 누가 돈 주고 맡긴 일도 아닌데 이것만큼이라도 내 맘대로 해도 되지 않을까?

사무실 창 밖으로 바라보는 하늘의 풍경

X-Pro3를 사서 Raw로 찍어 사진을 보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컬러 그레이딩을 하는 것이나 사진을 보정하는데 꽤나 자신 있어하는 편이지만 일상을 찍어서 보정을 한다? 나는 이게 무의미한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어도 X-Pro3로 찍는 사진만큼은 일절 보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약간의 크롭조차도 말이다. 나는 영상 수업을 진행할 때 “상업 영상은 ‘판타지’이다.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이 아닌 최대한 있는 힘껏 가공하고 꾸며서 장점은 없는 장점도 만들어내고 단점은 최대한 숨겨내는 것이다.”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일에 질려버린 것 같다. 다소 부족하고 가공되지 않고 미숙한 것들에 더 마음이 끌린다. 그런 것들을 맘껏 찍고 다녀서 즐거운 나날이다.

귀환이가 찍어준 내 모습

요즘은 내 얼굴의 생김에 대해 스스로 많이 애정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싫었던 내 얼굴인데 참 스스로 너무 가혹했던 것 같다. 꼭 티브이에 나오는 꽃미남처럼 생겨야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나는 리퀴파이로 사람 얼굴을 보정하는 것에 대해 꽤나 자신이 있는 편이다. 왜냐하면 25살부터 29살까지 여성 쇼핑몰에서 포토그래퍼로 일했던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하는 내내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에 시달렸던 것 같다. 보정된 그 모습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미의 기준을 제멋대로 강요하는 기분이 들어서 5년 동안 내내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 주변엔 현실의 모습과 인스타그램 속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몇 명 존재한다. 뭐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 다들 한 두 명씩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서 그렇게 까지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차마 사랑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왠지 모르게 조심스럽다.

사무실 앞 거리의 모습.

나는 해방촌에 사무실을 낸 지 햇수로 거의 5년 차가 되었다. 제2의 고향 같은 느낌이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이 모습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다 문득 “늙어서 일을 못하게 되면 이 풍경도 그리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한 컷 찍어두었다.

이제 나이 들 날만 기다리면 된다.

내 무릎에 머리를 얹고 티비를 보는 와이프

사람이 사람과 심리적인 장벽이 모두 허물어진 관계. 우리는 그런 사이다. 우리는 어쩌다 가끔 심하게 싸운다. 그러다 어느 날은 “이 사람이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밑도 끝도 없이 와이프에게 집착하게 된다. 와이프도 아마 내게 그런 듯하다. 우린 뭐 10년째 그런 사이로 지내고 있다.

삼층 사무실 문 앞에 천장에는 이런 유리창이 뚫어져 있다. 정말 신기한 구조다.
3층 창을 열어 엿보듯 사진을 찍는다.
이런 식으로
3층을 통해 창 바깥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추한 것과 추한 것, 그리고 또 추한 것, 그 너머에 추한 것이 서로 부둥켜 안은 듯 얽혀있는 모습이 제법 아름답다.
사무실 바깥에는 남산 타워가 이만하게 보인다. 왜 내가 남산필름이란 감독명으로 활동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사무실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 보이는 용산 중학교의 풍경.
우리 아들은 사진 좀 찍자고 하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에반게리온

나는 일주일에 1,2일 정도는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집도 너무 멀고 일이 늦게 끝나고 일찍 시작하는 날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소파에서 자고 있노라면 당연하게도 비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뭐하자고 이렇게 까지 살아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 슬프게도.

잠들고 일어나면 이렇게 베란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정겹다.
나는 밝은 환경이 너무 싫다. 딱 이 정도의 조도에서 살아가고 싶다. 늘.
3층 사무실 서재, 일단 나는 책을 꽂아두는 것을 좋아한다.

3층의 사무실은 나의 주서식지이다. 나는 여기서 시나리오를 쓰고 잠을 자고 수업을 하고 에세이를 쓰고 영상 작업 회의를 진행한다. 이곳은 정말이지 애증의 공간이다. 어쩔 땐 이 공간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진 둥지 혹은 보금자리처럼 느껴지다가도 “나는 이곳을 벗어나 단 한 달도 떠나 있을 수 없다.”라는 현실에 사로 잡혀버리면 이곳이 마냥 감옥 같이 느껴져 참을 수가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낄 때면 이곳에 나를 가둔 사람이 또 곧 나라는 아이러니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곤 한다.

최대한 감춘 사이를 비집고 기어코 세어 들어오는 볕이 좋다.
남들 다 하는 거울 셀카가 어색하다. 사람이 너무 찍어보고 싶어서 이 짓까지 해보았다.

카메라를 사니 사람을 찍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모델이나 배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셉트 화보나 일반인 모델들을 데려다 찍는 인스타 감성 사진 같은 것들은 찍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그런 것들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불특정 인물이 자신의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내 시선으로 담아내 주고 싶을 따름이다.

동완 & 혜련 부부
열심히 일하는 서정
핸드폰을 보는 지헌
담배 피는 귀환
아침부터 일어나 소란스러운 아들래미.
사진 찍히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우리 와이프.

우리 와이프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한다. 한 살이라도 젊고 예쁠 때 좀 찍어뒀으면 좋으련만 참 안타까운 일이다.

묘하게 고장난 네온이 더 보기 좋은 건 왜일까? 내가 좀 망가진 인간이라 그런 걸까?
카스틸리오니의 Frisbi 조명, 전시회에서 보자마자 이것만큼은 꼭 사고 싶었다.
두개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발뮤다의 The lantern
카스틸리오니의 Lampadina
Gubi Multilite
Anglepoise paul smith edition
카르텔 사의 배터리 램프, 나는 오렌지 색의 이 조명이 공간에 만들어내는 따뜻함과 빛이 번지는 형태가 너무 좋다.
아르떼미데 Nessino
Belid Felix Pendent
골제로 렌턴
카르텔 부지
카르텔 Take Lamp
Take Lamp의 빛 패턴은 늘 아름답다.

어두운 환경을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조명을 아주 좋아한다. 아름답고 기능적인 조명들은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마법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그 조명이 만들어 내는 공간의 분위기는 사람의 하루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사무실 삼층의 창과 조명

창가의 푸르스름한 빛과 전구색 조명이 만나는 순간은 늘 아름답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내가 이 순간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오랫동안 모닥불과 태양의 빛 둘 다에 의존해 살아온 인간종의 오랜 애착일 것이다. 모닥불만 못해도 2600k의 조명은 사람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무언가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건대 어딘가의 주차장
우리집 아파트 입구
스타필드 주차장
우리집 앞 풍경
사무실 문 앞

나는 조용한 풍경을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문득 조용한 곳에 닿으면 그곳의 모습을 담는 것이 좋다. 원래 사진에는 소리도 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죽어가는 아레카 야자, 나는 정말 아레카 야자 킬러다. 킬라.
베란다의 선반.
사무실 현관 입구.
간신히 살아있는 몬스테라. 자신이 조화가 아니란 것을 온몸으로 말하는 중.
우리 사무실 건물은 너무 오래되서 이렇게 영문모를 창문들이 많이 나 있다. 당연하게도 난 그것들을 너무 좋아하고.
전기줄, 현수막, 간판, 무분별한 색의 사용 같은 것들로부터 38년째 괴롭힘 당하고 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게 늘 신기하다.
사무실 앞 옷가게의 디스플레이.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전기줄 때문에 하늘은 몇 수십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버린다. 나처럼 먼 하늘 바라보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이에겐 재앙이다.
스타필드
사람과 가게 및 식당들, 온갖 물건들로 북적거리는 이곳에 눈을 쉬게 할 곳을 만들어 놓아줘서 다행이다.
나이스

글이 너무 길어졌다. 그래도 이번 글은 평소처럼 뭐가 너무나 “싫다.”, “혐오스럽다.”라는 말보다 “좋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유난히 많이 적어놓은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나도 마냥 싫은 것만 존재하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찍어봐야겠다. 굳이 남들이 많이 봐주지 않아도.


https://www.instagram.com/p/CbmTTvxuhxf/?utm_medium=copy_link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