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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Jun 17. 2022

사진 근황

일상의 조각을 모아서.

1. 최근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한강과 가까워졌다.

나 스스로는 요새 조금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조금 더 젊은 시절에는 내 좁디좁은 마음속에 비루한 나 자신이 너무 가득 들어차 있어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지 좀처럼 알아차리기 힘들었었다.

38살이 되고 나서야 하늘과 구름, 물, 볕과 나무 같은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게 제법 재밌다.


한강의 풍경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각별히 아름답지 않지만 각박하고 답답한 서울 살이를 조금은 달래줄 수 있을 만큼은 제법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그런 한강이 제법 좋아졌다.

2. 자전거를 탈 때엔 Sony 사의 RX100M4를 안장 가방에 챙겨 나간다. 요새는 핸드폰 카메라도 엄청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이런 사진은 그래도 아직은 핸드폰 카메라로 흉내 낼 수 없다.

중고로 20만 원 정도를 주고 구매한 카메라인데 아주 작고 가볍고 납득할 수 있는 이미지를 기록해준다. 매우 추천한다.

자전거를 타고 멍하니 달려가다가 문득 아름다운 풍경과 빛을 마주쳤을 때 잠시 멈춰서 내가 바라보는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가는 그 행위가 요즘의 낙이다.

카메라로 사랑하는 무언가를 담아낸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일로써 그것을 10년 이상 해오며 그 본질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얼마 전의 상업 촬영은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물론 돈을 받았으니 사업자 달고 영상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있는 힘껏 최선은 다해야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회의감만 잔뜩 몰려왔다. 지루하고 내용 없는 이야기, 있는 힘껏 꾸며댔지만 아름답지 않은 피사체와 배경들까지.. 이걸 왜 억대 규모의 장비를 써가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찍고 있는 것인지 웃기는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갈 순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지만 가끔은 그 괴리의 정도가 너무 심해 한없이 속상해질 때가 있다.

자신이 꿈꾸고 좋아하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했던 젊은 날의 꿈으로 시작한 일인데 그게 나의 돈이든 명예와 성공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궤도가 애매하게 틀어져 버려 조금씩 잘 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나는 자살 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게 바로 작년 일인데 지금은 조금씩 추슬러가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유명하고 돈 잘 벌고 성공한 감독이 되는 것, 사람들에게 능력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는 것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 정말이다. 그저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는 것,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삶을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게 영화가 되든, 글이 되든, 사진이 되었든 간에 그게 나답기만 할 수 있다면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몇 억짜리 장비들과 수십 명의 전문화된 스태프들, 누구나 알만한 톱스타들을 데려다 촬영을 하는 것보다 20만 원짜리 카메라를 들고나가 내 눈앞에 놓인 일상을 찍는 것이 더 매력적이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참 돈 벌기엔 글러 먹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3. 쉬는 날에는 와이프와 함께 자전거에 간단하게 의자와 테이블, 스피커를 담아 서울숲에 가보기도 했다.

자전거 물통에는 와이프가 좋아하는 그라데이션 카페의 커피를 담아서 말이다. 우리 와이프는 커피 맛에 있어서 만큼은 엄청난 유난을 부리는 편이다. 어디의 카페는 기계를 몇천만 원짜리를 쓰고 원두를 어느 나라에 어떤 거를 써서 맛이 어떻다든지 사장이 커피를 잘 내리는 사람이라는 둥 어쨌다는 둥 참 말이 많다. 하여튼 유별난 편이다. 솔직히 내 입에는 스타벅스든 메가커피든 블루보틀이든 이디야든 프릳츠 커피든 어디든 간에 다 거기서 거기로 느껴진다. 아니 사실 각자가 다 다르고 커피의 맛에도 급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는 있지만 그걸 그닥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와이프의 유난스럽고 고달픈 카페 투어에 동참을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커피 한잔 마시겠다고 매번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의 카페를 가야 하는 일은 꽤나 고달픈 일이다. 게다가 그놈의 숨은 카페 맛집은 왜 늘 차가 긁힐까 무서울 정도로 비좁은 골목길에만 있는 것인지, 왜 주변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몇 없는 와이프의 취미이기에 되도록이면 군말 없이 8년째 맞춰나가는 중이다. 왜냐하면 유별난 것으로는 나도 어딜 가도 딱히 지지 않는 인간이기에 와이프는 아마도 나의 그런 유별남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그런 나조차도 “아, 이곳의 커피는 그 수고스러움을 견뎌서라도 마실만한 맛이구나.”라고 느끼는 곳이 있긴 있다. 그라데이션 카페와 커피 리브레, 이 두 곳은 정말이지 맛있다고 느끼는 편이다.

4. 마샬의 스피커는 만듦새가 좋고 참 예쁘다. 하지만 마샬의 스피커가 가격에 비해 딱히 사운드가 좋다고는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예전에 기타 앰프의 제왕이었던 마샬이 작곡 프로그램인 DAW와 오디오 인터페이스의 등장으로 망할 뻔했다가 요새 블루투스 스피커로 간신히 다시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조금 서글펐다.

나는 예전 밴드 음악을 좋아하고 직접 레코딩된 악기의 소리가 나오던 시대의 음악들을 더욱 사랑한다. 물론 요새는 가상악기가 너무 좋아져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말이다.

한때 기라성 같은 기타리스트들의 음악을 표현하는 일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마샬이 이제는 세월에 떠밀려 옛 영광과 추억을 팔아 블루투스 스피커로 먹고살고 있다는 건 왠지 내가 사랑하던 시절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괜히 조금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이렇게 라도 영민하게 시대에 발맞추어 살아남아있다는 게 왠지 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복잡 미묘하다.

나는 마샬 스피커를 스톡웰2, 엠버튼 이렇게 가지고 있는데 몇몇 사람들은 “얘, 진짜 가격은 너무 비싼데 성능은 제 값을 좀 못하기로 유명한데.. 이 돈이면 다른 거 좀 사지.”라는 종종 말을 하고들 한다.

물론 동감 못하는 바도 아니지만 나는 역시나 마샬이 좋다. 사실 더 저 가격대, 저 크기의 스피커가 더 좋아봤자 얼마나 어떻게 좋은 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5. 서울숲은 참 한적하고 조용했다. 책을 한 권 가져왔으면 좋았으련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다음에는 책 한 권을 가져와 천천히 읽다 가면 좋을 것 같다.

6. 서울숲은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요즘 캠핑장에서 너무 좋은 경치를 보며 지내온 나로서는 오히려 그 풍경들과 비교가 되는 바람에 되려 보는 내내 답답하고 성에 차지 않는 기분이었다.

7. 당일 우리는 이태원에 위치한 쏭타이도 가보았다. 맛있다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어본 기억이 있어. 꽤나 기대하고 들어갔다. 올라가는 길에 일간 이슬아라는 에세이로 유명한 이슬아 작가의 사인도 걸려 있었다.

뭐 실내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테라스에서 보는 풍경은 어쩔 수 없이 이 모양이지만 또 이것 또한 이태원의 감성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와이프는 태국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이다.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맛이라나. 나도 가끔은 태국 음식점을 잘못 선정하면 전혀 입에 대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나 똠양꿍이 그렇다. 어떨 때엔 이렇게 맛있는 게 다 있나 싶다가도 입에 맞지 않는 곳에 가서 먹게 되면 한 입도 먹지 못하고 나올 때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쏭타이의 똠얌꿍은 꽤나 맛있었다. 와이프는 여전히 도전에 실패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위해 태국 음식점에 잠자코 따라와 주는 와이프가 새삼 고마웠다.

좋은 부부 관계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 나는 고단한 커피 투어를 참아내고 와이프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맛을 견뎌보는 그런 것 말이다. 잘 생각해보면 그건 꽤나 근사한 일이다.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이 이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8. 이번 주 초, 내가 운영하는 영상 클래스의 수강생들과 MT를 다녀왔다. 말이 수강생이지 대부분이 형, 동생 하는 사이들인지라 왁자지껄 즐거웠다.

캠핑장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차에서 내리자마자 천국이 있다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랄까?

캠핑장은 사이트가 4개밖에 없었다. 아무도 예약한 손님이 없어서 우리는 4개 사이트를 전부 예약해서 전세 캠핑을 즐겼다. 음악을 크게 틀어도 되고 밤늦게 떠들어도 눈치 볼 일이 없어서 무척이나 좋았다.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환상적이었다.

요즘같이 LED 조명이 잘 나오는 시대에 굳이 쓸데없이 등유 랜턴을 들고 다니는 이유가 다 있다. 저 앙증맞은 작은 불꽃이 안에서 이글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기분이 차분해진다.

타프 안에 좋은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 순간은 참으로 즐겁다.

이 좋은 순간이 모두에게 특별하게 기억되기를.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조금 걱정했는데 되려 시원해서 좋았다.

열심히 준비한 와인과 음식들을 다들 좋아해 줘서 다행이었다. 전날 밤부터 닭을 양념에 재우고 와인 한 병 한병 세심하게 고른 보람이 있었다랄까.

브런치에 몇 번 정도 적어놓은 이야기지만 나는 요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대접해 먹이는 걸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그럴 기회가 잘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캠핑을 가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을 재워야 했기에 노나돔에 베드룸까지 챙겨갔다. 이렇게 세팅을 해놓으면 성인 남자 5명이 꽤나 쾌적하고 여유롭게 잘 수가 있다. 물론 텐트 자체의 멋짐은 덤이고 말이다. 노나 타프까지 더한 노나돔 풀세팅의 웅장함은 사진으로는 알 수가 없다. 직접 눈으로 보면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구성이다.

캠핑장 주인이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가 먹을 걸 얻어먹고 싶어서인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여태 캠핑을 다니면서 캠냥이는 많이 봤는데 캠멍이는 처음이었다. 꽤나 잘생긴 녀석이라 사람들한테 이쁨 받는  태생적으로 익숙한  보였다.  녀석은 우리에게서 두둑하게 삼겹살을 얻어먹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어슬렁거리며 저녁까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앉아 근사한 강물 앞에서 물멍을 때리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나는 내 호피바지가 저렇게 까지 부담스러울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끼우고 있으니 진짜 ppap 아저씨 같다. 서글프다.

낮 4시부터 밤 12시까지 끊임없이 먹고 노느라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못했다. 그게 좀 아쉽다.

달이 이렇게나 밝아서 한밤중에도 구름이 다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음에 또 와야겠다.

나의 사진 근황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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