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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Sep 18. 2022

숫기가 없는 사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좀처럼 하기 힘든 편

“제가 숫기가 많이 없는 편이라서요.”라고 말하면 깜짝 놀라거나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한다. 심지어 입담도 좋고 재치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늘 그 사람들도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거나 혹은 꼭 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겨 그들이 나를 경청해줄 거란 합의가 이루어져 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입금을 받았기에 그들을 위해 열심히 무슨 말을 할지 꼼꼼히 준비하고 머릿속으로 잘 정리해놓은 상태인 경우에만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1:1의 대화, 다수 중에 한 명이 되는 상황에서는 나 스스로가 당혹스러워질 정도로 숫기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런 걸까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요새 대충 이유를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흥미로워할까? 내가 이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나의 하잘 데기 없는 이야기들로 허비하게 만들어 버리진 않을까?”하는 심리적 공포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정말 못된 인간이다. 가끔 못된 정도가 조금 지나칠 때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누군가가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대뜸 내게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야, 넌 요새 명동 땅 1평에 얼마 하는지 알아?”


“아니? 내가 그걸 알아야 하는 거야?”


“너도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서는데 그 정도 상식은 알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너 주식은 해? 자산 관리는?”


“안 해. 아무것도.”


“너 요새 면목 아이파크가 얼마나 올랐는 줄은 알지? 진짜 장난 아니다. 그거. 역시 돈이 돈을 벌어오게 해야 되는 게 맞는 거야. 진짜.”


돈 얘기, 돈 얘기, 돈 얘기..

정말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주제로 술자리를 채워가려고 하는 그 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두 번 다시 이 친구랑은 술을 마실 일이 없겠구나.”라고 말이다.

20년 지기 친구에게도 그렇게 모질고 못 된 게 나란 인물이다.


그 외에도 축구, 농구 얘기, 아이돌, 연예인 이야기, 재밌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는 자신들의 연애 이야기.. 등등 나는 사람들이 내가 관심도 없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야기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면 “그 순간을 어떻게 도망쳐야 하나, 이 사람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덜 볼 수 있을까.” 그 궁리만 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런 못돼 쳐 먹은 인간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 굴레에 갇혀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타인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시달리고 마는 것이다. 웃기는 짬뽕이다.


사실 내가 브런치에 돈 한 푼도 되지 않는 글을 쓰는 이유는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나는 좀처럼 끄집어낼 자신이 없으니 굳이 읽고 싶은 사람만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나는 왜 자꾸 인류가 우주에 전파를 쏘아 보내는지 그 심리를 어느 정도는 알 것만 같다. 내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마음과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에 써진 글들을 보고 누군가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친해지면 대충 이런 대화들을 나누게 되겠구나. 뭐 친해져도 나쁘지 않겠다.”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램, 사실 오직 그것 하나 때문에 피곤을 무릅쓰고 새벽에 이런 걸 적어대는 것이다.


얼마 전 좀처럼 말수가 적은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말수가 적은 이유가 “내가 하는 말에 듣는 사람이 굳이 관심을 가져줄까 싶어 괜히 조심스러워 말을 아끼게 돼요.”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친구한테 “나는 너라면 얼마든 들어줄 용의가 있으니 무엇이든 네 얘기를 건내줘. 사실 나도 너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거든.”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말해주었나. 사실 술을 마시며 나눈 대화라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숫기가 없다.

내가 못된 탓도 있겠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또 다른 이유로는

어떠한 눈치 없는 말을 해도 사랑을 받을만한 매력을 갖추지도 혹은 타인이 흥미로워할 거리를 굳이 찾아내 그걸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갈 재주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나는 참 나의 아버지를 닮았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P.S 진짜 웃긴 게 이런 글을 쓰고 나면 내가 꼭 좋아하는 사람들만 “혹시 얼마 전에 쓴 글 나 저격해서 쓴 글이야?”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한다. 억울하다. 꼭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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