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아픔

그리움

by 최명숙


달 없는 산골의 밤은 칠흑 같았다. 한 발자국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한 밤, 더듬더듬. 변소에 가려면 닭장을 지나야 했다. 횃대에 앉아 잠자던 닭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덕거렸다. 어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멈칫. 괜찮여, 어여 가. 뒤따라오는 할머니 목소리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변소에 있을 때, 할머니는 닭을 향해 빌었다. 다시는 밤에 변소 출입하지 않도록. 할머니가 닭에게 빌던 기도가 효험이 있었던 것일까. 이상했다. 다음날 밤은 변소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도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다시는 밤에 변소 오지 않겠다고. 그걸 예상하고 할머니는 닭에게 빌었던 걸까. 세속에 전해오는 미신이었을 거다. 창피했다. 내 문제를 놓고 저까짓 닭에게 할머니가 그렇게 정성스레 빈다는 것이.


아침에 꼬꼬댁거리는 소리에 닭장에 가보면, 암탉은 알을 낳아놓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는 나를 주눅 들게 할 만했다. 그렇게 모은 달걀을 우리가 먹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 꾸러미가 되면 할머니는 장에 가서 팔아 학용품이나 생필품을 사 오셨다. 가끔 삼촌이 날달걀을 먹었는데, 할머니는 내용물이 비어진 껍데기 안에 불린 쌀을 넣어 달걀밥을 해 주셨다.


달걀밥이 익을 때까지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은 우리는 할머니가 들어가라 해도 마다하고 지켰다. 언제 익을까 기다리는 것도 재미였다. 딱히 놀 거리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솔가리 땐 밥솥 아궁이에서 달걀밥이 익어가고, 타다닥 타다닥 밥 잦혀지는 소리가 들리면, 먹기도 전에 우리 입은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달걀밥이 딱히 맛있던 기억은 없다. 그냥 다 재미였다. 할머니는 동생들에게 먼저 떼어주고 내게 주셨는데, 항상 내 것이 가장 컸다. 그러면 봉당으로 와서 내 것을 동생들에게 또 나누어 주었다. 동생들이 짜금짜금 맛있는 소리를 내며 먹는 모습을, 나는 흐뭇하게 쳐다보곤 했다.


닭은 배춧잎이나 무 잎사귀를 잘 쪼아 먹었다. 어머니가 김칫거리를 다듬고 나면, 그 잎사귀들을 모아 닭장에 뿌려주었다. 할머니가 하시던 걸 어느 날부터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가끔 닭장 문을 열어주면 대여섯 마리 크고 작은 닭들이 나와서, 뒤란으로 안마당으로 다니며 헤집고 난리를 쳤다. 어느 날은 이웃집 닭까지 합세하여 정신을 빼놓곤 했다. 우리는 웬만하면 가두어 길렀는데, 아주 가끔씩만 내놓았다가 다시 닭장으로 몰아넣었다.


봄이 되면 병아리들이 태어났다. 어미닭이 알을 품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우리들이 닭장 곁에 자주 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어느 날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걸 보았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때도 눈물이 날 것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그게 바로 감동이라는 감정일 것 같다. 따스한 봄볕에 어미닭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걷는 병아리들의 모습은 평화로움의 극치였다.


그렇게 봄내 여름내 자란 닭들 중 몇 마리는 우리의 식용이 되었다. 잔인하게도. 하지만 그런 용도로 키운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이상했는데, 모처럼 맛보는 고기 맛에 홀려 금세 잊곤 했다. 할머니는 우리들 얼굴에 버짐이 피면 닭을 잡았다. 단백질 공급원이 여의치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닭 잡을 때 할머니는 우리들이 못 보게, 혼자 개울에 가서 손질해 오셨다. 따라가려면 집에 있으라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말은 법이었다.


닭백숙은 언제나 깊은 밤중에야 먹을 수 있었다. 기다리다 잠이 들었을 때, 할머니가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 상이 차려지고, 등피가 거뭇하게 그을린 호야등이 봉당 기둥에 걸렸다. 어느 때는 호야등보다 달이 더 밝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닭국을 먹을 때, 매캐한 모깃불이 마당 한쪽에서 타올랐다. 늦은 저녁을 먹고 우리는 그대로 픽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게 한여름 복달임으로 해먹은 특식이었다. 그러고 나면 우리 얼굴과 남동생 머리에 있던 버짐이 없어졌다.


지금 나는 여름에도 삼계탕을 즐기지 않는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백숙도 좋아하지 않는다. 지인들이 먹자고 하면 장난스럽게 말한다. 동족상잔의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나는 닭띠다. 그래서 닭과 나는 동족이라는 우스갯말이다. 어렸을 때 우리가 기른 닭을 잡아먹은 잔인성에 대한 거부감이,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맛을 잃는 것으로 표출된 것일까. 기른 닭 잡아먹은 게 우리뿐이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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