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가슴 서늘한 푸른빛

그리움

by 최명숙

5시 10분. 새벽이다. 눈 뜨면 창밖을 본다. 습관이다. 푸르스름하다. 새벽은 푸른빛으로 오는 듯하다. 비가 올 듯 하늘은 잔뜩 흐렸는데, 새벽 기운은 여전하다. 푸른빛은 신선하다. 서늘하기도 하다. 그날도 새벽은 푸른빛으로 다가왔다. 푸른빛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 그 기억은 나를 긴장하게 하고, 점검하게 한다. 실수하지 않도록.


여고 때였다. 1학기 기말고사 기간. 밤새워 시험공부를 하던 날이다. 그때 나는 직장에 다니며 어렵사리 학업을 잇고 있었다. 시험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밤샘공부를 하기로 했다. 결심과 달리 잠이 쏟아졌다. 잠이 오지 않는 약, 일명 각성제를 삼켰다. 약의 효력일까, 잠이 오지 않았다. 그것만 신기하게 여겼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깨웠다. 기척이 없다. 어쩌지 못해 혼자 밤을 새웠다.


시험공부를 마치고 나서 밖을 보았다. 푸르스름한 새벽 기운과 맞닥뜨렸다. 신선했다. 시험 준비를 했다는 게 그렇게 후련할 수 없었다. ‘준비’라는 단어에 가끔 그날의 푸른 새벽빛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날의 푸른빛은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밤을 새웠는데도 눈은 더 초롱초롱했다. 창밖을 내다볼 때, 책상에 엎드려 자던 친구도 깨어났다. 새벽 기운을 같이 맞았다. 초점 잃은 눈으로 무연히 밖을 보던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푸르지? 새벽은 푸른빛이야,라고.


학교에 갈 때 어지러웠다. 그래도 준비했다는 것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준비되었다는 것은 당당함을 불러온다. 결과가 기대되기도 했다. 시험은 시작되었고, 문제는 술술 풀렸다. 밤새워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1등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자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졌다. 어지럼증이 간헐적으로 왔지만 그것쯤 견딜 수 있었다. 부족한 잠 때문에 오는 증상으로 이해했으니까.


드디어 마지막 시험시간이 되었다. 과목은 한문이다. 가장 완벽하게 준비한 과목. 만점 받는 건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첫 문제부터 쉬웠다. 막힘없이 문제를 풀었다. 아니 풀었다고 믿었다. 기말고사 시험을 완벽하게 치렀으니 지켜온 자리는 확고할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선두자리를 고수하려 애썼는지 모른다. 욕심이리라. 그 욕심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일 테지만 어느 때는 그게 심해서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했다. 그 자리를 놓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던지.


누가 내 몸을 흔들었다. 답안지를 걷는 학우였다. 화들짝 놀라 문제지를 보았다. 삼분의 일밖에 풀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 황망함이라니. 모두 다 아는 문제들인데, 잠이 들고 말다니. 밤샘공부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제서 앞장 문제의 답만 얼른 표기했다. 학우는 성화를 부렸다. 빨리 내라고. 뒷장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까지는 손대지 못했다.


시험지를 빼앗기다시피 하고 망연히 앉았다. 허무함, 그래 그건 허무함의 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잠이 들다니. 어째서 잠이 왔던 걸까. 공연히 엎드려 있는 나를 깨우지 않은 선생님을 원망했다. 내가 문제를 풀다 잠들었다는 걸 나중에 안 선생님도 안타까워하셨다. 그렇다고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공평함, 그래 그건 공평하지 않은 거니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따지고 보면 그때까지 잠들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다. 정신력으로 견디긴 했지만 신체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문 중에도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 견디기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수면욕은 인간의 본능인데 그걸 억지로 막으려 했다니.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이었다. 학교에 올 때부터 어지러웠던 것은 잠이 부족해서 그랬을 것 같다. 그것을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마지막에는 긴장이 풀려 잠이 들고 말았던 것이리라.


그 사건은 내가 사는 지금까지 약이 되었다. 신체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것,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 이 세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그날 이후로 시험 치를 때 문제지의 뒷면을 꼭 확인한다. 아무리 준비가 덜 됐어도 밤을 새우지 않는다.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신체적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꼭 다시 점검한다. 긴장이 풀어져 실수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 글을 쓰는 동안 날은 훤히 밝았다. 푸른빛은 어느새 사라졌다. 새벽이 주는 그 푸른 기운은 옛날의 기억을 소환하며 나를 각성시킨다. 각성제를 삼키지 않아도 새벽이 나를 깨우치게 한다. 그런 실수는 그날로 끝이었다. 밤을 새우는 일이 간혹 있더라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때 선두 자리를 지켰는지 궁금한 독자가 계시다면, 미소가 답이 될는지. 새벽은 가슴 서늘한 푸른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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