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연말에 교회에서 구역장들에게 똑같은 가방을 하나씩 사주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일꾼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베이지색과 카키색이 섞인 체크무늬. 성경책과 공과나 넣고 다닐 가방인데 생각 외로 커서 놀랐다. 예쁘지도 않았다. 실용성을 위주로 선택한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받은 선물에 모두 좋아했다. 그 체크무늬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구역장인 셈이다. 물론 나도.
구역장 모임이 있던 날이다. 모두 새 가방을 가지고 참석했다. 똑같은 가방을 앞에 놓고 동그랗게 앉은 모습을 보자, 갑자기 장난기가 일어 견딜 수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가방을 바꿔 놓기로 했다. 모임 끝날 마지막 시간, 소리 내어 통성 기도하는 때였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죄다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기도 소리 때문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아무도 몰랐다. 통성기도가 끝날 무렵,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스무 개나 되는 가방을 쥐도 새도 모르게 바꿔놓느라 얼마나 가슴 졸이고 바빴던가. 누구라도 눈을 뜨게 되면 낭패였으니. 거기다 절대 소리 나면 안 되므로,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 살짝살짝 바꿔놓아야 했다. 기도시간에 왜 그런 짓을 하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장난만 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성공했다. 완전범죄다. 아무도 알지 못했고, 기도가 끝났을 때 나는 내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으니까.
모임이 끝나고 모두 자기 앞에 놓인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나도 천연덕스럽게 전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웃음이 터지는 걸 참느라 혀를 깨물어야 했다. 혹시라도 누가 가방을 열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완전 범죄를 꿈꾸며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한 시간쯤 후, 이 집사가 전화를 했다. 가방이 바뀌었단다. 가방에 이름이 쓰이지 않았고 안에 든 성경책에도 이름이 없단다. 누군지 알 수 없다며 자기가 정신없는 짓을 저질렀단다. 나이 먹으니 이렇게 정신이 없어진다며 자책했다.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왕 벌인 일이니 시치미를 떼야한다. 옆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 집사는 우측의 사람은 생각나는데, 좌측에 앉은 사람을 모르겠단다. 그럼 우측에 앉은 김 집사에게 전화해 보라고 했다. 집에 없는지 전화를 안 받는단다. 휴대전화를 쓰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리 쉽게 풀릴 일이 아니란 걸 난 잘 안다. 재미가 덜할 것 같아, 두 사람 건너 또는 대각선으로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수화기를 놓고 웃음이 터져 한참 웃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며 스스로 만족스럽기도 했다. 악취미라고 눈 흘기지 마시라. 그때는 지금처럼 바쁜 시대가 아니었고, 재밌는 일도 별반 없이 아주 평범하고 나른하게 살던 시절이니까.
그렇게 웃다가 갑자기 퍼뜩 떠오르는 생각. 나만 아무런 말이 없다면 나를 범인으로 지목할 것 같았다. 좀 전의 이 집사에게 다시 전화했다. 보니까 나도 가방이 바뀌었다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누가 장난친 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 집사는 혹시 모두의 가방이 바뀌었다면 내용물을 보고 주인을 찾아야 하는데, 일일이 전화해 볼 수도 없고 큰일이라고 했다.
“큰일일 게 뭐예요. 기도회 또 하면 되죠. 모입시다. 그리고 범인을 색출하자고요.” 내 말에 이 집사는 그래야겠다며 아무래도 윤 집사가 그런 것 같단다. 그 사람 말고 그런 짓 할 사람이 없다며. 우리 둘이 나눠서 전화로 알리자고 했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모이기로. 전화를 해보니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하긴 교회 가방을 누가 그리 열어보겠는가. 내 말에 혹시나 하여 가방을 열어보고 그제야 바뀌었다며 웃었다.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화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마음이 천사 같아서 그랬는지, 바쁜 일이 별로 없이 살던 때라 여유가 있어 그랬는지, 나른한 날들 속에 그것도 하나의 재밋거리라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난감해 하긴 해도 대부분 웃으며 누구의 장난인지만 궁금해했다. 대부분 윤 집사를 지목했다. 내가 그랬으리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 나도 맞장구쳤다. 그 장난꾸러기 밝혀지면 우리 등을 한 대씩 패주자며.
다음날 오전 10시, 내가 갔을까. 안 갔다. 내 것만 바뀌지 않았는데 갔다간 그 자리에서 탄로 나고, 등을 한 대씩 때렸다면 감당 못했을 테니까. 우리 집 창가에 서면 교회가 빤히 보였다. 하나 둘 교회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킬킬 웃음이 나왔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가방 속의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며 임자를 찾았으리라. 그리고 누가 범인인지 금세 드러났으리라.
10시 30분쯤 우리 집 전화벨이 울렸다. 받지 않았다. 창으로 보니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이 집사가 우리 집 쪽으로 오는 것도 보였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열지 않았다. 몇 번 더 울리다 돌아갔다. 이제 공은 나에게 넘어온 셈이다. 주일날 교회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에게 눈을 흘길까. 등을 한 대 팰까. 내 옆구리를 간질일까. 앞에 앉아 피아노 반주하고 있는 나에게 무슨 짓을 하지는 못할 게 뻔하다. 반주자 자리가 방패였다.
그다음부터 구역장들은 설교 시간이나 기도 시간에 내가 옆에 앉으면 가방끈을 꼭 쥐고 있곤 했다. 내가 또 누구 것과 바꿀까 봐서. 아무튼 완전범죄는 꿈일 뿐이었다. 그때 내 가방도 바꾸었어야 했는데. 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까. 몇십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건 두고두고 아쉽다. 그랬으면 완전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