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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20. 2022

나는 아들딸과 거리두기 중이다

구체적 방안 몇 가지

  


요즘 나는 아들딸과 거리두기 중이다. 애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자기들 일이 바쁘니, 어미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관심이 없나,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들이 먼저 내게 거리두기를 한 것일까. 그것도 모르고 뒷북치는 걸까. 그러거나 저러거나 다 상관없다. 아들딸 생각보다 내 생각이 중요하니까. 어쨌든 요즘 나는 아들딸과 거리두기 중이다. 


거리두기의 구체적 방안 첫째, 내가 먼저 가족 단톡방에 문자 올리지 않기. 애들은 나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은가보다. 내가 가족 단톡방에 글을 올리기 전에 안부를 묻는 문자가 올라오는 일 거의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는 것인지, 아무튼. 워낙 왕씩씩이로 사는 어미니까 믿거라 하는지. 모두 별일 없니? 문자를 해도 한참 후에 아주 짧게 마미도? 아니면 엄마 바쁘시죠? 정도다. 바쁘긴 개뿔, 내가 바쁘면 좋은가보네. 귀찮게 안 하니. 속으로 중얼중얼하다 더 짧게 좀 바쁘네 하고 만다. 이제 먼저 문자 보내지 않을 거다. 오늘 단톡방에 한 건도 안 올라왔다. 내가 올리지 않으니까, 애들도 글자는커녕 점 하나도 안 찍는다.


언젠가 하도 문자 하나 뜨는 게 없어, 내가 먼저 점만 하나 콕 찍어 놓았다. 아들이 마지못해 무슨 일 있으세요했다. 다시 점 두 개 콕콕 찍었더니, 심심하세요? 한다. 다시 세 개 콕콕콕 찍었더니, 쉬세요라고 했다. 내가 쉬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아나, 귀찮으면 다 쉬란다. 한참 후 딸이 보고 두 분 뭐하세요? 하며 키득거렸다. 이제 점 하나도 내가 먼저 안 찍을 거다. 아, 본질은 이게 아닌데. 다음. 


거리두기의 구체적 방안 둘째,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기. 애들은 내가 전화 안하면 먼저 하는 법이 없다. 궁금하고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를 하면, 딸은 안 받기 일쑤요, 아들은 작업 잘되는데 왜요하니, 맥 빠진다. 그래, 세상에 널리 알릴 명작 못 그리기만 해봐라.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하고 전화 끊고 혼잣말 중얼중얼. 이러다 난 복화술사가 되거나 독백 전문 연극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딸은 보통 세 번 전화해야 한 번 받거나 걸거나 한다. 아들은 전화를 받는데 시간이 길어야 20초. 이제 절대로 먼저 전화하지 않을 거다. 


거리두기의 구체적 방안 셋째, 딸이 불러도 냉큼 달려가지 않기. 지금까지는 부르기만 하면 만사 제쳐놓고 갔는데, 이제 생각해봐야겠다. 어미는 늘 부르기만 하면 냉큼 냉큼 달려가는 존재인가. 손자들이 눈에 삼삼해도 좀 뜸을 들인 후에, 간절히 원하면 못 이기는 척 가리라. 이 어미도 바쁜 몸이야, 이거 왜 이래. 또 언제나 대기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하리라. 딸은 분명히 손자들을 동원해 나로 하여금 냉큼 달려가게 하는 작전을 쓸 것이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미 딸의 작전을 알기에 넘어가지 않을 거다. 


거리두기의 구체적 방안 넷째, 내 삶에 충실하기. 외손자가 생기면서 솔직히 내 삶에 충실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기 봐달라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육아에 동참했다. ‘손주 봐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고 도움 요청하면 달려갔다. 셋째 방안과 약간 겹치는 부분이기는 한데, 그러다 보니 내 삶에 충실하지 못했다. 약속이 있더라도 육아에 문제가 생기면 내 약속을 파기했다. 일주일에 많으면 4일까지도 육아에 조력하느라 내 일은 뒷전일 때도 있었다. 이제 내 삶에 충실하리라. 독서, 운동, 글쓰기, 사람 만나기 등. 


거리두기의 구체적 방안 다섯째,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기. 내 자식이 시행착오 겪지 않고 세상살이 이치를 터득하도록 해주고 싶은 게 어미 마음이다. 그런데 그걸 간섭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수밖에. 누구 말처럼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걸까. 나는 안다. 천 번 흔들리는 것의 아픔과 힘듦을. 그래서 내 아이들이 그 아픔과 힘듦을 겪지 않도록 이것저것 간섭 아닌 간여를 해왔는데, 이미 어른이 다 된 것처럼 구니. 에라, 두어라 말아라. 


거리두기의 구체적 방안 여섯째, 아이들에게 잔소리하지 않기. 성인이 되어가면서 깨달았다. 아이들이 잘못하는 것 같아 말해봤자 관계만 나빠진다는 것을. 나는 가르친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들리게 마련인 듯하다. 기꺼워하지 않는 빛이 역력한 걸 보면. 그래서 웬만해서는 잔소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미의 잔소리는 순전히 애정의 발로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는 애들에게 말해봤자 관계만 나빠지는 잔소리, 그만두기로 했다. 


써놓고 보니 많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거리두기를 하는 이유는 서로 편하자는 의도에서다. 절대로, 먼저 거리두기를 한 아들딸에게 섭섭해서가 아니다. 내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인식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지나고 보면 내 뜻보다 아이들 뜻대로 하는 게 결과가 나을 때 있었다는 걸 떠올리기 싫어서도 아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밀착돼 있으면 다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서 거리두기를 선언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 홀로 하는 다짐 내지 깨달음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독립적인 아들딸에게 고마운 일이다. 먼저 거리두기를 해준 것이. 아, 혹시, 나의 아들딸이 불효막심한가보다 지레짐작 마시라. 더할 수 없는 효자효녀인 것을 자타가 공인하니까. 아무튼 나는 요즘 아들딸과 거리두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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