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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Feb 25. 2023

아들딸과 거리두기, 실패했다

쉽지 않은 각오

실패했다, 사실은. 아들딸과 거리두기. 그것을 하겠다고 선포한 지 얼마 안 돼서다. 무너진 사랑탑도 아니고 아들딸과 거리두기가 무너지고 실패한 것이니, 썩 잘못된 것은 아닐 터다. 내 속내를 모르는 아이들은 거리두기 선포 이후로도 별 변화가 없었다. 대놓고 거리두기 할 거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톡 안 하고, 전화 안 하고, 부르면 냉큼 달려가지 않기가 다였다. 실행했지만 어미가 바쁜가 보다, 그래서 전화도 않고 톡도 안 올리나보다 했나 보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무언가 선포했는데 반응이 없는 것보다 재미없는 건 없다. 선포하지도 않고 알아채주기를 바란 때부터 이미 실패를 잉태한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실패, 내 사전에 없는 단어인데 아들딸과 거리두기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다. 결국 알아봐 주지도 않고 지켜지지도 않을 것을,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격이다. 그런 걸 뭐라든가, 원맨쇼라고 하던가. 아무튼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이 실패하고 말았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그다지 살가운 어미가 아니었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아들딸은 이래도 저래도 다 바쁜 걸로 치부하고 만다. 또 뭔가 구상하고 있나 보다 한다. 아니면 집필에 집중하고 있는 줄 안다. 그도 아니면 여행 간 줄 안다. 어미가 그렇게 이름난 작가도 아닌데 무슨 집필을 그리 한다고. 또 고물가 시대에 어디 여행을 그리 간다고. 모두 자기들 방식으로 생각하고 이해한다. 그것도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다. 다정하고 헌신적이기만 한 어미가 아니었다는 게 원인이다. 


변명 아닌 이유를 댄다면, 딸이 아기들 봐달라면 정신없이 달려가지 않을 수 없고, 아픈데 아기들 때문에 병원에 못 가고 있다며 딸이 징징대면 또 달려갈 수밖에 없고, 온이 재롱잔치 하니 초대한다고 하면 역시 안 갈 수 없었다. 아들도 어느 날 전화해서 내게 사랑한다, 어쩐다 하면서 모성을 자극하니, 물감 값 후원을 안 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나도 본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글쎄, 거리두기라고 해봤자, 한 보름이나 했을까.


이제 ‘아들딸과 거리두기’는 유명무실해졌다. 아들딸은 하나도 불편해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말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말이라도 했다면 체면이 서지 않을 게 뻔했다. 혼자 한 다짐이었기 망정이지. 이쯤에서 다시 지난번 글을 읽어보았다. 혼잣말에 불과하다. 그래놓고 아들딸이 알아채주기를 바란다는 건 어리석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글에는 혼자 하는 다짐이라고 마무리 짓고 있었다. 우습다. 하여간에 나는 밑밥 까는데 선수다. 


실은 지금도 딸에게 어제 불려 와 딸의 집에 있다. 목 디스크 때문에 머리까지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두말도 않고 달려왔다. 두 아이들을 놓고 병원에 갈 수 없고, 직장에도 가야 하는데 어쩌느냐며, 특별한 일 없으면 와달란다. 자식이 아프다는데 안 갈 어미가 어디 있으랴. 내가 아무리 살갑지 못한 어미라 해도 모성을 가졌는데. 특별한 일, 있어도 없다. 어제 이야기 듣자마자 아침도 못 먹고 달려왔다. 


거리두기 방안 세 번째가 ‘딸이 불러도 냉큼 달려가지 않기’였다. 생각해 보니 이건 바로 무너졌다. 그날 이후 딸네 집에 온 게 벌써 몇 번째인가. 사실 부르기만 하면 냉큼 냉큼 달려왔다. 어떤 어미가 자식이 필요하다는데 달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애초에 실현 가능성 없었다. 말만 그럴듯했지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었다. 자식에게 지지 않을 부모는 없을 테니까. 


한번 거절한 적은 있다. 지난번에 여행 가면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을 때다. 그건 단칼에 거절했다. 사위와 2박 3일 함께 여행하는 것이 부담되었고, 내가 가면 온이가 평소대로 하지 않고 말을 안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딸 내외는 내 눈치 보느라 야단도 못 칠 거고, 나는 전전긍긍할 게 뻔하다. 온이는 나를 방패로 삼아 못해본 꾸러기 짓을 마음껏 할 테고. 그러면 여행이 아니라 영역 다툼이 될 것 같았다. 온이를 생각하면 가야 하는데, 나도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 온이가 전화해서 몇 번이고 간청했지만 그 속내를 아는 나는 들어줄 수 없었다. 


하룻밤 묵으며 생각해 보니, 어미가 아들딸과 거리두기 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망정, 부르면 달려가고 요청하면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아기 키우며 집안 살림하고, 거기다 직장까지 다니는 딸을 놓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가 싶다. 더구나 요즘엔 몸까지 성치 않은데. 아무리 누가 뭐라 해도 육아에도 조력할 수 있으면 하는 게 맞다. 경제적 도움도 줄 수 있으면 웬만큼은 해줘야 할 것 같다. 그럴 수 없는 형편인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부모 자식 간의 문제는 어떤 형태든 이미 승패가 결정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사랑을 자식이 넘어설 수 없기에, 부모가 질 수밖에 없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지는 것이므로. 왜 이제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어머니도 내게 수없이 져줬다는 사실을 이제 알다니. 내가 어미가 되어 보니 명징해지는 걸까. 누구든 겪어보지 않으면 다 알 수 없다. 그래도 이제 그것을 알다니, 늦돼도 한참 늦된 사람이다. 


다시는 승패가 결정된 일에 힘 빼고 싶지 않다. 자식 놓고 기싸움 그런 것도 하지 않으리라. 아들딸이 원하면 할 수 있는 한 조력해 주리라. 물질적인 것은 여유가 되는 범위 내서다. 그것만은 어쩔 수 없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결국 아들딸과 거리두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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