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착각 사이

일상

by 최명숙


송해 선생님은 ‘국민오빠’로 불렸다. 그렇다면 나도 ‘국민누나’가 될 수 있을까. 진즉 그쪽으로 진출해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내가 물려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야 국민누나 되는 것이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생각만 하는 나는 아니다. 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많은 남자들이 쉽게 나를 누나로 불렀다. 핫! 이 글 읽는 독자님들, 웃기 없기. 지난번에 초등학생이 나에게 누나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예전부터 누나로 불린 적이 많았다. 언제 어디서나 그랬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러면서, 나에게는 누나라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학교에 있을 때였다. 스승의 날이나 원우회 모임이 있을 때면 교수들끼리 밥 먹고 음주도 한다. 수다도 떨고. 나는 술을 안 마시지만. 우리는 학과 특성상 음주가무에 능하다. 대부분이 음주(飮酒)는 물론이거니와 가(歌)도 웬만큼 한다. 그런데 무(舞)는 솔직히 별로다. 한다고 해봤자 고전무용 하듯 손만 조금 움직이고 무릎만 꼽짝꼽짝 할 정도라, 무(舞)라고 할 수 없다. 노래 자랑하는 초등학교 아이를 떠올리면 된다. 나는 가(歌)를 좋아해서 시키면 빼지 않고 부른다. 자발적으로는 좀 그렇고.


그 음주가무가 무르익으면, 남자 선생님들 몇이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아, 그들은 솔직히 나보다 선배다. 내가 학교에 늦게 들어갔기 때문에. 내 옆에 나보다 더 누나 같은 선생님한테는 안 그러고, 유독 나에게만. 누나, 물론 더할 수 없이 좋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명숙이누나’라고,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하면, 온몸에 소름이 오르르 돋는다. 간지러워서. 오해마시라. 싫어서가 절대 아니고, 이름이 너무 향토적이지 않은가.


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명숙이가 꼭 둘씩 있어, 사는 곳으로 윗말 명숙이 아랫말 명숙이, 또는 키를 보고 큰명숙이 작은명숙이, 심지어 공부 잘하는 명숙이 못하는 명숙이로 구분하지 않았던가. 휴, 내 이름을 한 번에 이렇게 많이 써보는 것, 태어나고 처음이다. 그때는 왜 그리 여자 이름에 ‘숙’을 많이 넣었는지. 맨 숙이다.


누나는 좋은데 제발 이름을 넣어 부르지 말라고 했다. 안된단다. 명숙이누나가 어울린단다. 누나는 꼭 명숙이누나여야 한단다. 참나 원, 안 그러면 내 이름이 도망이라도 가나. 그건 좀 그렇잖으냐고, 또 내 나이가 있는데 이름을 붙이는 건 별로라고. 그래도 안 된단다. 솔직히 친누나라 해도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고, 큰누나 작은누나 또는 사는 지역을 붙여 서울누나 부산누나 그러지 않는가. 아, 나는 친누나가 아니니까 그랬나. 아무튼 이름을 붙여 부르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그런 예의를 모르지 않는 선생님들인데, 막무가내로 나에게는 꼭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술이 깨고 나면 정중하게 ‘선생님’으로 불렀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는 퇴직했고, 그걸 이제야 물어본다는 것도 생뚱맞아 못한다. 그때도 말 안 했는데, 지금이라고 할까. 열없어 웃고 말겠지. 전에 동료에게 물어봤었다. 남자선생님들이 왜 나에게만 누나라고 하느냐고. 동료는 눈을 하얗게 흘겼다. 자기에게는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말도 안 건다고. 그게 뭐 눈 흘길 일인가. 예뻐서 그런 거라고 해주면 어디 덧나나. 이쯤에서 나를 한 대 패고 싶은 독자도 있으리라.


그전에 마흔 살의 나이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내 나이 꼭 반밖에 안된 동기생 남학생들이 선뜻 누나라고 불렀다. 아줌마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랬나 싶지만, 지금 생각하면 마흔 살은 누나가 틀림없다. 그렇게 누나라고 부르던 동기들이 군대 갔다 와서, 내 강의를 들었다. 나는 벌써 박사과정에 들어가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그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를 교수님으로 불렀다. 사석에서는 누나라고 했지만. 멋진 동기생들이다.


지금까지 장소가 학교니까 그랬다고 치자. 심지어 교회에서도 누나라고 하는 남자집사들이 있었다. 처음에 좀 의아했다. 나이로야 누나인 것은 틀림없지만, 부르기 좋은 직분이 있잖은가. 집사님, 권사님, 선생님, 자매님, 형제님 등. 내가 성가대 반주를 했는데, 그때 성가대원 중에 남자집사들이 몇 있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누나라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또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다. 좋았다. 집사나 권사로 불리는 것보다, 누나가.


이런 일화들이 있다 보니, 나도 국민누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 것이다. 무슨 말을 하거나 설득을 하려면 그럴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헛소리에 그치고 만다. 이만하면 내 말이 헛소리는 아니지 않나. 접때 초등학생들이 누나라고 부른 것 때문에, 나가도 너무 나가는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국민오빠인 송해 선생님 후임이 되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진즉에 그쪽으로 진출 안 한 게 한이 될 뿐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에 ‘전국 노래자랑’을 시청해 보니, 그건 솔직히 얼토당토않는 생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일요일의 막내딸’을 외치며 새 MC 맡은 재기 발랄한 ‘그녀’를 능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각도 못하랴! 생각은 자유인데. 물론 착각도 자유다. 커트라인 없는 자유. 나는 가당치도 않은 ‘국민누나’ 여부를 놓고, 생각과 착각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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