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하루에 7,000보 이상 걷기로 했다. 3년 전에 정했는데 지금까지 대부분 지키고 있다. 내가 잘하는 것은 그런 거다. 한 번 정하거나 결심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대로 이행한다. 어떤 때는 내가 꼭 로봇 같다. 그래도 걷고 나면 과제를 마친 것처럼 후련하다. 낮에 걷지 못하면 밤에라도 걷는다. 밤 12시 전까지 꼭 7,000보를 채운다. 처음 1년은 10,000보였는데, 운동 효과로 볼 때 7,000보가 적당하다는 말을 듣고 줄였다.
어제는 저녁 산책을 했다. 저녁 안개가 하늘을 덮고 있다. 날씨는 추운데, 이제 겨울의 시작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봄기운을 느낀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그렇다. 절기로만 본다면 동지쯤이니까, 새해가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봄기운을 느끼는 게 이상할 것은 없다. 집안에 있을 수 없었다. 그 기운이 나를 밖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천변 산책로를 걷는다. 거무스름하게 퇴색한 갈대숲. 쓸쓸하다 못해 삭막하다. 자귀나무는 물가에 외롭게 서 있다, 지난여름 화려하게 꽃피던 시절을 잊은 듯. 원추리 군락지는 꽃대조차 보이지 않게 사그라졌다. 물은 거의 얼어 있다. 하얀 얼음이 제법 두터워 보인다. 두루미 한 마리가 얼지 않은 한쪽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서있다. 그러다 두 날개를 펴고 저녁 안개 자욱한 물 위를 난다. 잠시 쳐다보다 다시 걷는다. 산책로는 낮에 녹았던 눈이 다시 얼기 시작한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는다. 자꾸 눈길을 끄는 꽁꽁 얼어가고 있는 개울물.
저런 개울에서 이맘때면 썰매를 탔다. 삼촌이 만들어준 썰매를 남동생이 여동생을 태우고. 동생들이 지쳐 그만둘 때라야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러다 얼음 위에서 팽이를 치고, 자치기를 했다. 우리는 얼음 위에서 무슨 놀이든 다 했다. 마을 앞에 있는 큰 개울에서였다. 여름에는 멱을 감으며 놀았고, 겨울에는 꽁꽁 언 그곳에서 갖은 놀이를 다 했다. 우리를 키운 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팔 할이 저와 같은 개울이었다.
몇몇 산책하는 이들이 저만큼 보인다. 부부, 남녀, 홀로. 달음박질하는 남자도 있다. 나도 사십 대 때는 곧잘 달렸다. 바빠서 그랬다. 일하랴, 공부하랴, 살림하랴, 일 분 일 초도 아껴가며 사느라 달렸다. 하긴 과거에 달리기 선수였으니까, 달리는 게 이상할 것 없다. 얼마 하지 못하고 그만둔 것인데, 굳이 달리기 선수였다는 걸 상기한다.
그만두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내가 학교 대표 육상 선수라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학교로 쫓아오셨다.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데 뜀박질을 시키면 어떡하느냐고 당장 빼달라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렇게 나는 달리기 선수에서 빠졌다. 딱 한 번 면내 대회에서 학교 대표로 참가해 뛰어본 적 있다. 그것으로 그만이니 달리기 선수였다는 말도 무색하다. 아무튼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내 인생에 어머니가 끼어들어 길을 바꾸었다. 앗! 글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오래전에 남해에 가느라 사천을 지나게 되었다. 내비게이션을 쓰지 않던 때여서 길을 잘못 들었다. 차를 세우고 지나는 남자에게 남해 가는 길을 물었더니, 이대로 가면 삼천포란다. 그때 알았다. 삼천포가 정말로 있다는 것을. 그 삼천포 못미처에서 다시 차를 돌려 무사히 남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유턴했듯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내가 목적했던 곳까지 가면 4,000보쯤 된다. 저만큼에 보인다. 사위는 어두워졌지만 산책로는 환하다. 가로등이 어둠을 몰아냈다. 그믐이 가까워진 하늘을 여전히 저녁 안개가 덮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로등 같은 사람이 있었던가. 외로움이 밀려온다. 그래도 꿋꿋하게 걷는다. 생각해보면 동네 아이들을 키운 게 저 개울을 비롯한 자연이듯,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도 주위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다. 가끔 잊을 때 있지만 분명히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누구의 도움과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으랴.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집을 향해서 걷는다. 춥지 않다. 고모가 전화를 하셨다. 고모에게 물었다. 옛날의 겨울은 무척 추웠는데, 지금은 별로 춥지 않은 이유를. 옷이 따뜻하고 신발이 따뜻한데 추울 게 뭐야. 고모의 대답은 명쾌하다.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을. 고무신 신은 발이 어찌 시리지 않았겠으며, 시원찮은 입성이 어찌 춥지 않았으랴. 그러고 보면 지금 부족한 게 무엇인가. 없다. 전혀 없다. 그때는 결핍된 게 많아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웠기에 불만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어른들의 보호 아래 있었으니까. 이제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섰다. 어귀의 큰 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돼 있다. 반짝이는 불빛이 따사롭다. 7,683걸음. 호젓한 저녁 산책이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현재보다 과거의 추억을 건져 올려 가만히 회상에 젖어보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호젓한. 그것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