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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05. 2023

달은 알고 있다, 나의 모든 것을

그 남자

    

오후 산책 길, 푸른 하늘에 낮달이 떴다. 낮달은 나보다 먼저 산책 나온 것 같다. 벌써 남쪽을 향해 가고 있으니. 엊그제 초승달을 본 것 같은데, 어느새 둥그러지고 있다. 세월처럼 빠른 게 또 있을까. 달은 희망처럼 높이 떠있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달을 보며 걷는다. 달은 나보다 앞서 간다, 마치 안내자처럼. 반환점을 돌았다. 달을 뒤로하고 걷다 궁금하여 돌아보니, 여전히 나를 따라오고 있다.     


어머니 등에 업혔던 날이 있었다. 일곱 살 때쯤, 아랫마을 큰고모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달 밝은 밤길이었다. 아가, 니 아버지 저기 저 산 아래 있지? 내가 듣든지 말든지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웅얼댔다. 어머니 등에 업혀서도 아버지가 묻힌 산자락이 보였다. 달이 환했기 때문이다.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든 줄 알았는지, 훌쩍훌쩍 울며 걸었다. 어머니 등에 엎드린 채 곁눈질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이 따라오고 있었다. 아버지 같았다, 우리를 보호하는. 


집에 와 어머니 등에서 내릴 때도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척. 어머니의 눈물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렸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얼른 크는 거였다. 할머니도, 동네 어른들도,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똑같았다. 어서어서 쑥쑥 크거라. 의미를 몰랐지만 어서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애늙은이로 자랐다. 마음이 먼저 쑥쑥 자랐으니까. 


맏이인 나는 크기도 전에 식구들의 보호자가 되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미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할머니가 밥을 지으면 꼭 내 밥을 먼저 퍼주셨다. 나는 여자라고 층하받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를 나와 상의했다. 심지어 빚을 내러 갈 때도 나를 데리고 가셨다. 묵묵히 감당했다. 일곱 살 때 어머니 눈물을 외면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이. 그 때문이었다, 묵묵히 감당한 이유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우리들 학비와 양식을 구하기 위해 건넌 마을 부잣집으로 빚을 얻으러 가셨다. 언제나처럼 나를 데리고. 그날도 달이 밝았다. 함께 가자는 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했다. 달 밝은 밤길을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별 말은 없었다. 나도 역시. 나는 다하지 못한 숙제만 부담되었다. 그날도 달은 우리와 함께였다. 가을을 재촉하는 밤바람은 약간 으스스했다. 코스모스 늘어선 길을 따라 걷다 개울을 건넜다. 앞서 징검다리를 건너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이 밤바람에 날렸다. 


건넌 마을 부자는 어머니의 사정 이야기를 다 듣고도 흔쾌히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받기 힘들 텐데 누가 기꺼이 빌려주겠는가. 어머니가 결심한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애가 공부를 잘해요. 이제 중학교만 졸업하면 돈을 벌 거예요. 내가 공부 잘하는 것과 돈 빌리는 게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꼬옥 쥐었다. 어머니는 속으로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만 보았다. 콩댐으로 반질대는 노란 방바닥만. 


나를 보다 천장 쳐다보기를 반복하던 부자는 돈을 빌려주었다.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그 부자도 말했다. 어서어서 크거라. 나중에 알았는데, 그 부자는 아버지의 옛 친구였다. 부자의 지시로 아주머니가 보리쌀 한 말을 주었다. 어머니는 고마웠던 그날 이야기를 가끔 하신다. 오죽하면 그 집에 갔겠느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염치고 뭐고 없더라고. 신발을 신는데 건넌방에서 문을 조금 열고 나를 쳐다보는 눈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 그 집 아들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모르지 않았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 나를 응시하던 그를. 그게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도, 예민한 나는 모르지 않았다. 단지 모른 척 외면했을 뿐이다. 우리 형편에 누구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으니까. 더구나 그 집에서 빚까지 내다니. 어린 마음에도 모멸감과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것이 뭉뚱그려진 복잡하면서도 묘한 감정을 느꼈다. 재빨리 그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머니는 보리쌀을 머리에 이고, 빌린 돈을 가슴에 품었다. 집으로 오며 말이 없었다. 중천에 떠 있는 달이 나와 어머니를 굽어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잠든 산자락을 한 번씩 쳐다보며 걸었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어머니가 입을 뗐다. 니 아버지만 살았어도, 이런 일은 안 겪고 살았을 텐데. 일곱 살 그때처럼 또 웅얼대듯 말했다. 나는 그날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낸 빚으로 어머니는 우리들의 등록금을 냈고, 보리쌀은 요긴한 양식이 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 객지생활을 하다 집에 왔을 때, 건넌 마을 부잣집 아들 그가 쪽지를 보냈다. 만나자고. 나갔다. 마을 어귀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로. 무슨 노래 가사 같다.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뭐 그 노래. 아무튼 버드나무 아래서 만났을 때도, 달이 동쪽 하늘에서 돋아나고 있었다. 그는 고3이었다. 노래 제목처럼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내게 정식으로 사귀고 싶다고 했다. 거절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유를 묻는 그에게, 그쪽은 부자고 우리는 가난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자기 부모님도 안다고, 사귀자고 했다. 끝내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다 차지 않은 열사흘 달을 보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몇 년 세월이 더 흘렀을 때, 내게 중매가 들어왔다. 상대는 그였다. 어머니는 살만한 집이니 마음에 있는 듯했다. 나는 거절했다. 우리가 돈을 빌리러 갔던 그날 밤의 풍경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라 수치스러웠다. 가난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낸 궁핍한 현실이 자존심 상했다. 그가 싫었던 건 아니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중매쟁이가 돌아간 후,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낮달이 동쪽 하늘에 떠있었다. 하얀 낮달은 내 마음을 아는 듯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낮달에게 말을 건다. 내가 외로울까 봐 먼저 나와 기다렸냐고. 그렇다는 듯 빙긋 웃는다. 크게 웃지 않아 더 곱다. 얼굴에 부딪치던 찬바람도 잠잠하다. 달은 안심이라는 듯 활짝 웃는다. 이래도 저래도 웃기만 하는 달,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리라. 내 삶의 골짜기마다 묻어 있는 슬픔, 아픔, 안타까움, 수치, 모멸, 희망, 모든 것을. 그 비밀한 것을. 달이 또 웃는다. 나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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