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랑할머니
해설랑할머니는 굿을 좋아했다. 하도 자주 하다 보니 좋아한다고 믿었다. 정작 그 이유를 아는 이나 알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 말끝마다 해설랑 해설랑 해서, 별명이 ‘해설랑할머니’였다. 해설랑할머니는 조금만 아파도 굿을 했고, 집안에 무슨 일만 생겨도 굿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해설랑할머니가 굿을 좋아한다고 믿었다. 굿하는 날이면 어른애할 것 없이 그 집에 모여 구경했고 떡을 먹었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해설랑할머니는 아프면 무당과 상의해 굿할 날짜를 받는데, 날짜만 받아놓아도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게 참 희한한 일이라며 우리 집에 마실 온 동네 어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설렜다. 특별한 놀이 없이 늘 자치기, 오자미, 사방치기, 공기놀이만 하던 때였으니까. 일상이 되어버린 그 놀이들. 새로운 놀이나 다름없는 굿 구경하는 게 재미였다. 마을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어째서 굿 날만 받아놓아도 병이 낫는지 희한했다. 지금 생각하니 자식들의 관심을 끌려는 해설랑할머니 작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집안 일로 굿하는 날을 받았을 때는 달랐으니까. 바로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나 이때나 바쁜 자식들은 어머니를 엽엽하게 챙길 수 없다. 며느리도 자기 자식을 낳아 키우느라 바빴다. 아들을 다섯이나 낳아 큰 체하며 길렀건만, 장가들여놓으니 옛날과 다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해설랑할머니는 자주 마음의 병을 앓았고, 아들며느리가 신경 써 굿 날짜를 받으면, 슬며시 일어난 게 아닌가 싶다.
해설랑할머니는 아들만 다섯이었다. 위로 두 아들은 농사를 지었는데, 한 집에 데리고 살았다. 논도 많고 밭도 많았으며 방도 많았으니까. 아래로 아들 하나는 산판을 사서 벌목한 나무를 목재상에 팔았고, 하나는 기성품 소매상을 했으며, 하나는 국수를 뽑아 파는 국수공장을 했다. 위의 두 아들은 농토가 많아 살림이 제법 택택했다. 아래로 세 아들은 때로는 돈을 많이 벌었고 때로는 장사가 안 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해설랑할머니는 돈을 많이 벌어도 굿을 하고, 장사나 사업이 안 돼도 굿을 했다.
우리 집과 날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설랑할머니 집이 있었다.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옆집 상희네처럼 기와집이었다. 안채와 사랑채 방을 다 합치면 다섯 개의 방이 있고, 나무 대문이 두 짝이나 달린 큰 집이었다. 안마당 한쪽에는 신식으로 지은 화장실이 두 개나 있었는데, 문에 한자로 男과 女로 표시를 했다. 안채에는 널찍한 마루가 있었고 그 마루 밑에는 해설랑할머니를 닮은 작고 귀여운 누렁이가 살았다.
해설랑할머니도 누렁이처럼 키가 작고 덩치도 작았다. 노인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얼굴도 작고 올망졸망 귀염성 있었다. 말도 애교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쁜 소리를 절대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우리 마을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칭찬보다 타박이나 지청구를 더 많이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해설랑할머니는 달랐다. 네가 해설랑 이번에 분단장이 됐다며? 담에는 해설랑 반장해라, 넌 해설랑 머리를 예쁘게 빗었구나, 넌 해설랑 공부를 잘한다지? 그렇게.
우리들은 공기나 고무줄놀이를 하다 지루해지면 해설랑할머니 집에 놀러가곤 했다. 동네에서 살만한 축에 들어, 우리가 가면 식은 고구마나 아주아주 드물게 십리사탕 혹은 눈깔사탕도 하나 주었다. 니들 나랑 해설랑 화투칠래? 재수 보기를 하며 화투장을 떼던 할머니 말에, 우리는 달려들어 화투를 쳤다. 집에서는 화투장을 만지기만 해도 불호령이 내려 눈길조차 두지 못했는데. 민화투를 치고 뽕을 쳤으며 육백을 쳤다. 해설랑할머니는 우리와 놀며 깔깔거렸다. 해설랑할머니 손자 중에 우리 또래가 셋이나 있었는데, 우리가 가면 어느새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해설랑할머니는 일철에도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와 달리. 장날이면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장에 갔다. 읍에서 장사하는 아들들을 보러 가는 거였다. 아들며느리에게 점심 대접받고 용돈을 타 가지고 왔다. 그 돈으로 십리사탕이나 눈깔사탕을 사 와, 손자들에게 다락에서 하나씩 꺼내주었다. 우리 동네서 사탕을 물고 있는 애들은 모두 해설랑할머니 손자들이었다. 손자들은 해설랑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며느리들도 범강장달이 같은 남편들 따라다니며 들일 하기에 바빴다. 그래도 해설랑할머니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다섯이나 있는데 왜 일을 하느냐며.
해설랑할머니가 장에 가는 날이면, 꼭 우리 집을 거쳐서 갔다. 신고 온 흰 고무신이 우리 집으로 오는 날망을 넘을 때 진흙이 묻어 더럽혀졌다. 내가 얼른 씻어다 봉당 섬돌에 엎어 놓으면 금세 물이 빠져 말랐다. 해설랑할머니는 늘어지게 칭찬했다. 형님, 얘는 어쩜 이렇게 해설랑 엽엽하대요? 형님 닮았나 봐요. 우리 집엔 요런 손녀딸 하나 없고 머스마들만 있어설랑 잔재미는 없다우. 우리 할머니는 해설랑할머니의 치레에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도 머스마들이니 든든하잖어. 해설랑할머니는 앞으로 딸이 우대받게 될 거니 두고 보라며, 씻어놓은 고무신을 신고 장에 갔다.
지금은 해설랑할머니 말대로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 굿을 자주 하더니 통찰력 아니 신통력이 생겼던 걸까. 우리 할머니는 굿을 하면 귀신을 불러들인다며 구경도 못 가게 했는데. 그래도 초저녁잠이 많은 할머니가 잠들면 나와 동생은 몰래 날망을 넘어 굿 구경을 갔다. 우리 할머니는 항상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때는 좋은 생각이 무엇인가 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보면, 두 할머니 말이 다 맞다. 딸이 우대받는 세상이 될 거라는 해설랑할머니 말도, 좋은 생각이 좋은 일을 불러온다는 우리 할머니 말도. 할머니가 되면 그런 지혜가 생기는 걸까. 나이로만 할머니가 되었다고 지혜가 생기진 않을 텐데. 어느 날 불쑥, 기억의 저편을 헤적이다 생각난 해설랑할머니, 하늘에서 우리 할머니와 또 이러쿵 저러쿵 해설랑 해설랑하며 이야기 끝없이 늘어지겠다.